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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주 Jan 31. 2022

"저의 부캐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에 신청한 사연이 당첨되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퇴근하고 자취방에 들어온 나는 불을 켜고

옷을 갈아입으며 모바일 앱으로 라디오를 틀었다.


자취 생활 1년 반에 접어들면서 생긴 습관 중 하나이다.

적막함이 크게 다가올 때는 무언가를 틀어놓고 할 일을 본다.

최근 라디오 '푸른밤'의 DJ는 옥상달빛의 김윤주님과 박세진님이 진행을 맡아주고 계신데,

두 분의 티키타카 마치 식당에 혼자 앉아 엿듣는

옆 테이블 언니들의 수다처럼, 유쾌하면서도 진솔하다. (그중에서도, 김겨울 작가님이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인 코너를 자주 듣는다.)


하루는 출근을 해서 바쁘게 번역 업무를 하던 중이었는데,

방송국으로부터 갑작스러운 (?) 문자를 한통 받았다.

안녕하세요. ㅇㅇㅇ당첨자님. MBC 라디오 <푸른밤>......

읽다 보니 불현듯 기억이 났다.

'나 여기에 사연을 신청하긴 했었, 근데... 몇 달 전인 것 같은데...?'

설레는 마음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을 하며

머릿속 조각들을 맞춰보니,

신청 해놓고서는 아무 기대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당첨된 것도 모른 채 방송을 지나쳤던 것 같다.

상품이라고 써져 있는 '5만원 상당의 수저 세트'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선물처럼 느껴졌다.

'오예!'


사연을 쓴 당시는 퇴근 후 녹초가 된 어느 날

마음속에 음악적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쌓여가던 시기였다. 왠조급함으로 번아웃이 왔는지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때 내가 신청했던 사연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직장 생활한 지 1년 좀 넘은 사회초년생입니다. 제조업 회사에서 중국어 통번역 일을 하고 있고요. 부캐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통번역 업무도 내 적성에 맞고 잘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해서 선택한 길이지만, 사실 음악에 너무도 진심이었던 대학생 시절이 있었다. 무언가에 미쳐 있었던 시간들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내가 음악을 대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색깔의 기억이다. 좀 더 붉은색을 띠었었던 것 같다.

항상 음악에 대한 욕심 큰 만큼, 회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하루하루 음악적 실력이 정체된 느낌이 서글펐다.

그래서 일종의 푸념과 하소연을 보냈던 거였는데, 라디오에 이렇게 본격적으로 사연을 써서 보낸 적도 별로 없었다.


내 글은 가수 하림님이 고정 게스트로 참여하시는 코너에서 소개되었다. 뒤늦게 다시 듣기로 나는 옥디스크 달쟈키쟈키(김윤주님과 박세진님의 별명) DJ와 하림님의 목소리에서 위로를 받았다. 바로 눈앞에서 말씀해주시는 기분이었다.


특히, 하림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기억에 남는다.

싱어송라이터를 부캐라고 소개하셨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하고 있다면 뮤지션인 거고, 둘 다 ㅇㅇ님의 본캐이신 거죠.  
그리고, 너무 스타가 되려고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치킨집을 할 때 꼭 대형 기업일 필요는 없잖아요? '동네 치킨집'을 꾸리며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인하우스 통번역사로서의 꿈은 이뤘고, 현재도 최선을 다해 성장해나가는 중이다. 이 외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아직 많다. 싱어송라이터로서도 역량을 키워보고 싶고, 책을 좋아해서 출판사 취직을 알아볼 정도로 편집자와 출판 번역가에 대한 동경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성취해나가는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다.


더 이상 무엇이 본캐고, 무엇이 부캐라서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다. 모두 다 나의 본캐이고, 나는 실제로 그 일들에 마음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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