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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석 Oct 28. 2024

저 세상 어둠 속으로..

글쓰기 연습 3

어릴 적 크게 아플 일 없이 튼튼하게 커왔다고 생각한다. 운동도 좋아하고 밖을 돌아다니다 보니 튼튼한 몸을 가졌다는 것에 감사하고 즐겁게 살았다.


군 훈련소에 입소해 훈련을 받는 쌀쌀했던 3월 어느 날 야간 행군을 하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숨 쉬기가 힘들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에 흠뻑 젖을 정도였다. 꾹 참고 몇 시간을 걷다 보니 조금 편해져서 날이 쌀쌀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다음 날도 답답함에 힘이 들었는데, 아픈 사람은 의무실로 오라는 방송에 달려가 숨이 쉬기 힘들다고 말했다. 사실 듣는 입장에서도 숨 쉬기 힘들다는데 의무실에 일하는 사병이 뭘 알겠냐 하는 생각보다는 하소연 같은 걸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약을 받아 돌아오는 길에 다른 훈련병이 응가를 하는데 피가 난다는 얘길 했다. 저런 얼마나 힘들면 피가 나냐.. 했는데 나랑 같은 약을 받아오더라.

 약은 그냥 먹긴 했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차라리 몰랐으면 플라시보 효과라도 봤을 텐데.


 상근으로 병 생활을 해야 해서 훈련소를 나와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 했다. 6주간 강제 금연을 했으니 바로 근처 슈퍼마켓으로 가서 담배를 사다 태웠다. 같이 간 친구들은 오래간만에 펴서 우오~ 하면서 담배 연기를 깊게 끌어당기며 눈을 감고 자유의 맛을 느끼는 동안 나는 심한 기침에 담배를 끊고 싶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때 끊었어야 했다.


 군 생활을 하며 봄이 올 때면 심한 기침에 담배를 잠시 끊고 그 시기가 지나면 또 담배를 찾았다. 죽을 만큼 아프지 않아서였나..


대학에 복또 찾아온 봄철에 기침이 심하게  병원을 찾았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천식이란다. 알러지성 천식.

그러곤 흡입기를 받아왔다. 기도가 좁아지니 확장을 하기 위해 기침이 나는 것이다. 그때 흡입기를 사용하면 많이 편해졌다. 3월 말 4월 초가 되면 숨 쉬기 힘들어 잠을 자다가도 목을 조르는 느낌에 잠이 깬다. 땀도 흠뻑 났고, 왜 그랬을까 그렇게 아프면서 담배는 왜 끊지 못했을까.


 담배를 끊어보는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계피 나무 막대를 하루 종일 씹어서 담배를 잊어보려고도 하고 박하향이 나는 스틱을 하루종일 담배 피우듯이 흡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술을 마시게 되면 또 담배가 그리 생각났다. 그 유혹을 뿌리칠 수도 없었고 하루 이틀 참다 피면 더 맛이 났다. 가끔 영화 채널에서 신세계 영화가 나오면 그것도 곤욕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담배 맛이 느껴지는 듯하다. 브라더가 어찌나 맛있게 피는지.


 직장을 옮겨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담배도 많이 피고 여러 가지로 몸이 약해진 시점이었다. 일은 전 직장보다 편하고 자유로웠다. 운동도 많이 하고 주말엔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스트레스는 그것과는 별개였으니까. 그땐 주말에 일을 하는 것보다 아이들 보는 것이 더 힘들어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도 약해졌던 것 같다.


 어느 날, 회사서 저녁에 다 같이 모여 다과를 먹고 사업 방향에 대해 설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날 맥주를 한 캔 먹은 게 문제인지 알레르기가 극에 달했다. 계속되는 기침에 주변에서도 걱정하는 눈치였다. 봄이니 또 그렇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 하지만 맥주도 마시고 싶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이 나질 않았다. 조금은 이상하단 느낌이 들긴 했지만 크게 심려치 않았다.


 그런 상태로 퇴근 지하철을 탔다. 군자역에서 환승을 했어야 했는데, 거기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는 게 높은 산을 오르다 거의 정상에 가까웠을 때 부족한 산소로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내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반쯤 올랐을 때 구석 공터에서 상체를 90도 구부려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배도 뭔가 가득 차서 더 이상 숨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 그렇게 10분가를 불편한 자세로 있었는데, 조금씩 호흡이 괜찮아지는 것이다. 이봐~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네~

 많은 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병원에 가야겠다고 도와달라고 했어야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고 대게는 괜찮아졌었기에 괜찮다고 하고 감사의 재스쳐를 보냈다. 20분쯤 지났을 때 환승 지하철로 가는 계단 20개 정도를 등반하기로 마음먹었다.


 또다시 한 칸 한 칸 오르는데 이번엔 뭔가 좀 달랐다. 숨이 빠지는데 답답함과 가슴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말이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숨 쉬기 바빠져 더 이상 이렇게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어 지나가는 사람의 손을 잡았다. 도와달라는 말을 못 하고 눈을 쳐다봤는데 그냥 부딪힌 걸로 알았는지 잠깐 눈이 마주친 뒤에 바쁜 걸음을 옮기셨다. 다음 사람에게는 강하게 얘기해야 한다. 아저씨의 팔을 붙잡고 쇤소리로 도와달라 했다.


"구.. 하악 후우 급.. 차 좀.. 불러 하악하악 주세요!!"


 숨을 계속 몰아지는 나를 보시더니 바로 119에 전화를 하셨다. 얘길 하면서 상태를 설명해 주셨는데 나는

"천식.. 이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고는 나에게 필요한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애를 썼다. 이상하게 기침은 나질 않았고 크게 숨을 쉬고는 있는데 내 몸속으로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약간 정신도 흐릿해진다.


서서 잠시 잠이 든 것 같이 주변 상황이 기억나질 않았다. 주변에 몇 분이 걱정되어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봉지를 주며 숨을 쉬어보란다. 받아 들고 후 욱 후 욱 불어보는데 계속 숨통이 조여왔다. 서서히 죽어간단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아프고 무서웠다. 지하철 역장님도 보인다. 플랫폼에 겨우 올라온 지 몇 분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혹시 몰라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쳤다. 멀리서 구급 대원들이 오신다. 이제 눈앞이 조금 흐릿해진다. 고통은 극에 달해 들것에 실렸을  영화에서 살인자가 목을 졸라 죽임을 당하는 사람처럼 몸이 고통에 난리를 쳤다. 구급대원은 재빠르게 나를 들것에 고정시켰다. 그리곤 천식 흡기를 내 입에 대고 뿌려주었다. 이미 많이 해봤습니다. 선생님..라는 생각이 들 때쯤에 갑자기 아프지 않고 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엘리베이터에는 퇴근 시간 많은 사람으로 긴 줄이 있었고 그 틈을 헤집어 엘리베이터를 태우고 구급대원은 나의 의식을 확인했다. 그리곤 나는 마지막으로 힘겹게 한마디 했다.


"살려주세요.."


 의식을 얼마나 잃었는지 모르겠다. 잠을 자고 일어난 느낌 하고는 많이 달랐다. 눈 주위에 느낌이 났다. 눈을 뜬 것 같은데 앞이 보이지 않았고, 몸이 없는 것 같았다. 영혼의 상태인가? 생각을 하다 보니 얼굴 주변이 느껴졌다. 이제 눈에 내 몸이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했다. 내 가슴엔 피멍이 들어있었고 전자기기들이 붙어있었다. 몸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하지만 움직일 순 없다. 마치 내 영혼이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 억지스럽게 움직이려고 애쓰는 것처럼..

 갑자기 공기가 몸에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피멍이 든 가슴은 느낌도 없다.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게 이상하단 느낌이다.

 그렇게 깨어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분들이 근처로 왔다는 게 느껴진 시점에 기분이 막 좋아졌다. 살아서 기뻐 좋아진 기분이 아니다. 죽음의 고통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몸에서 바삐 모르핀과 같은 호르몬을 과도하게 생산한 게 아닐까? 아프지 말라고..

 기분이 너무 좋아 노래를 했다. 노래라기보다는 타령이다. 나만의 타령.. 오래전 기억이라 대충 기억해 보면,

"나는야하~ 간다~ 어룰루루~ 헤에이~"

주변 간호사들이 웃는다. 의사 선생님은 원래 이렇게 된다 설명하고 내가 간다~ 하면 어딜 가냐고 그런 소리 말라고도 해주신다. 혼내는 말투이다. 어딜 갈 생각 하냐고..  그러고 나서 한참을 노랠 불렀다. 의사든 간호사든 안심하는 듯했다. 그래도 일어나서 노래 같은 걸 부르니 말이다.


 그렇게 온몸에 피가 돌아 조금씩 느껴질 때쯤 응급실 문을 열고 급하게 들어온 와이프 얼굴이 보였다. 시뻘게진 눈 주위를 보니 얼마나 놀랬을까 싶다. 그 모습이 아직도 잊히질 않았다. 나도 약간 울컥했다. 이제야 큰일이 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세상 덧없다..


 이리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꿈도 꾸지 않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한 기분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을 남긴다. 극한에 고통 속에 그 고통을 잊게 해 줄 몸속 메커니즘 덕분에 깊은 어둠이란 물속에 담겨 꺼내어진 듯한 느낌.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느낌도 없었다. 어둠에서 꺼내어질 때 나의 의식이 내 잠든 몸 구석구석에 방문해 일어나라 속삭인 것 같다.


 죽음이란 그런 걸까 싶다. 컴퓨터 전원이 꺼지듯 그냥 이 몸뚱이를 움직이게도 어떤 생각도 들지 않게 되는 깊은 어둠 속으로 뒤돌아 가버리는 것이 아닐까..


 여분의 삶을 갖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병원에 있으면서 지하철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생각이 났다. 구급대원 분들도 생각이 났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찾아보려고 하진 못했다. 계속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 보니.. 미안했던 친구에게 사과한 마디 못하고 평생을 잊고 지내버린 것 마냥 마음 한편에서 길을 걷다가 혹은 밥을 먹다가 생각이 난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걱정이 많아진 세상살이에 조금은 쉽게 털어내며 나의 여분이 된 삶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위에 구급차들이 가는 걸 보면 오늘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고생하시는 분들이 생각나고 길 위에 많은 사람은 바쁘게 살면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 보이지만 마음 한구석 따뜻하고 상대를 도와주는 따뜻한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제가 된 건 천식으로 기도가 좁아진 곳에 담배를 피워 가래가 생기다 보니 기도가 막힌 거란다. 당연히 담배를 끊고 오랜 시간을 두려움에 살았다. 조금만 숨이 차도 겁나서 더 이상 운동을 진행하지 못할 정도로.. 지금은 마라톤 대회도 다니며 불어난 살과의 전쟁을 하는 중이다.


 가끔 짜증이 나고 힘이 들 때면 그때의 아픔을 한 번씩 돌이켜 보았다. 그렇다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하고 살고 싶지는 않다. 그냥 하루하루 별일 없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걱정이 있어도 오래가져가지 않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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