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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디 Jan 21. 2020

디자이너는 원래 힘든 거 아닌가요?

디자이너 인생 고찰

디자이너는 무릇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사람인데 왜 그들의 삶은 투박할까.





시간이 생길 때마다 참여하고 있는 영어 회화 모임이 있다.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언제나 뉴비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기소개 시간을 가진다. 처음에는 영어 이름을 주고받고, 진부한 나이 소개는 외국에서 1년 이상 살았다는 사람은 스킵한다. 그다음으로 단골 질문은 '어떤 일 하세요?'이다.


"패션 디자이너예요."

대답에 일제히 눈이 동그래져서 내가 입은 옷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감탄은 몇 초도 안돼서 연민으로 변한다.

"거긴 박봉이죠?"

그 대답에 장단을 맞춰주기에는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업계 평균보다 처우가 좋다. 그래서 지레짐작하는 박봉과 워라밸 수준에 열심히 반박하다 보면 현타가 온다. 한국 디자이너들은 이렇게 힘들게 산다.






다른 업계 못지않게 상당히 많은 테크닉과 업무 능력을 요구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의류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할 때부터 제약이 많고 트렌드에 무척 예민하다. 나는 Producing도 어느 정도 겸임하고 있는데, 협력하는 업체가 많아 세심하게 챙기지 않으면 사고는 꼭 터진다. 세심하게 챙기더라도 사고는 랜덤으로 터진다. 수습은 내 몫이고 이제 잔잔한 사건에는 스트레스받지 않는 부처 마인드를 장착했다.



디자이너는 왜 3D 인력일 수밖에 없는지, 사회는 왜 이런 고충을 몰라주는지에 대한 생각에는 신물이 난다. 그래서 나는 참다 참다 결심했다. 나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니까 내 삶도 내가 디자인하기로. 사회 틀에 박힌 디자이너의 삶이 아니라 '내가 디자인한 디자이너의 '을 살기로.


그러려면 내 삶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회사부터 이상적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지금의 회사를 다니기 전 미국에 있는 한인 회사에서 일했다. 미국 디자이너로서의 삶은 편안할 거라 생각했던 나는, 시즌마다 밤 10시까지 야근했고 쥐꼬리 박봉을 받으며 살았다. 오히려 척박한 한국 취업 시장에서 지금의 회사를 만났다. 처음으로 삶을 내 입맛에 따라 디자인해본 것이다.



미국에서는 남성복 디자이너로서 일할 때 데스크의 모습. 디자이너의 책상은 항상 시끄럽다.



점차 변하고 있는 인식의 흐름에 참여한 회사가 있다. 나는 당신이 그런 회사와 일했으면 좋겠다. 길어지는 취준 기간에 초조하여 성급하게 회사를 선택하기보다 잘 따져 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취준 하는 동안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년 반이라는 긴 취준 생활이 있었고 마치 빛도 없는 축축한 동굴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잡플래닛 평점 2점이 안 되는 회사에 면접도 보러 갔었다. '사람 때문에 힘든데 연봉 때문에 더 힘듦.' 고약한 평가가 적혀 있는 회사들도 많았는데 '디자인하면 다 그렇지 뭐.' 라며 정신승리를 했었다. 그렇게 낮추어 갔던 회사도 나를 튕겼다. 하지만 씁쓸했던 몇 번의 불합격 통지를 회고해보면 참 고마운 일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 거절당했어야 있는 것이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취준 생활 동안, 이런 내 삶도 사랑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무의식적으로라도 면접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당신의 삶을 더 존중하고 회사도 그런 당신을 더 존중하면 좋겠다.



'아름답다'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라고 나온다. 매일 '아름다움'을 구상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치열하게 살아간다. 잠시 디자인 전쟁터에서 눈을 돌려 생각해보자. 정작 내 삶은 '아름다운지.'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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