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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디 Feb 10. 2022

서른 살인데 아직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니요.

직장 다니는 어른이에게 찾아온 인생 설정 방황기





 서른한 살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을 때만큼의 감흥은 없다. 작년 이맘때, 막 서른이 되었을 때는 머리에 돌덩어리 하나가 얹힌 느낌이었다. 그 덩어리는 직업적 책임감, 나만의 취향과 같은 내 정체성에 대한 물음표를 뭉쳐놓은 어떤 것이었다. 언젠가 정리해야지 하고 생각은 했지만 현생을 바삐 산다는 핑계로 한편에 짱박아두었던 것이다. 이제는 나에 대해 알만큼 알 나이라고 확신하며 쌓아두었던 질문들에 간단하게 답을 적기 위해 메모장을 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이 물음은 1년이 지나 서른한 살이 된 지금도 답변하지 못하고 있는 난제가 되었다. 가장 쉬울 줄 알았던 질문에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답을 쉽게 찾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고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나는 나를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상 나는 내가 아닌 타인으로 살아왔고 나를 타인처럼 대하고 있었다. 내 옆을 지나가는 낯선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몰랐다.






언제부터 내 정체성이 모호했나 생각해보기 위해 인생에 큰 갈림길이 되었던 전공 선택부터 살펴보았다. 디자인과를 선택한 것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생으로서 전공에 관한 경험이 미미했을뿐더러 사색할 기회도 없었다. 당시에는 그냥 멋져'보이니까' 선택했던 것 같다. 타인이 보기에 괜찮은 직업이면 나도 괜찮은 줄 알았다. 음식 취향도 전공 선택과 비슷하게 정해졌다.'나는 커피를 안 마시면 아침이 시작 되질 않더라' 라며 아픈 머리를 짚던 옆자리 친구의 말에 평소 잘 먹던 주스 대신 아메리카노를 먹어보았다. 다들 먹으니까 먹기 시작한 것 같다. 이제야 내 취향에 대해 사색하며 깨닫게 된 것은 나는 아메리카노를 많이 먹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든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듯 온전히 내 판단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려면 왜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해 이유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좋아.'라는 숭늉 같이 맹숭맹숭한 답변을 하기에 나는 수십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는 경험들을 해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는 '커피를 왜 좋아하세요?'라는 간단한 질문에도 입을 뗄 수 없었다. 모호한 내 취향과 생각들이 혼란스러워 한동안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애썼다. 깊이 파고들자 인간의 심리에 관해서도 찾아보게 되었고, '자기 효능감'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물음표만 가득했던 내 머릿속에 느낌표 하나가 띵-하고 울렸다.






자기 효능감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을 말한다.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있고,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삶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반면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자신의 통제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낮은 자기 효능감은 과제가 실제보다 더 어렵다고 믿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과제 계획을 잘 못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증가시킬 수 있다.







낮은 자기 효능감을 가지게 되는 요인은 다양하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과한 기대를 받았거나,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운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을 경우에 자기 효능감이 낮아질 수 있다. 다양한 경우가 있겠지만 나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가졌던 1년간의 취준 생활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물이 달라져 그런지 온 몸과 얼굴에 빨간 두드러기가 났고 그런 상태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것조차 무서웠다. 그때 나는 작은 것들조차 도전 같았고 두려웠고 무능했다.



그렇게 여린 내 모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감춰둘 수 있었고 스타트업 브랜드에 입사하게 되었다. 디자인업계는 여타 다른 분야처럼 데이터에 따라 Yes or No로 확실하게 말할 수 없기에, 의견을 피력할 때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이 굉장히 중요하다.

자기주장이 확고한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업계였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디자인 회사에서 기획 미팅을 할 때였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기 전에 두려움부터 덥석 찾아왔다. '내 의견이 맞을까? 틀리면 어쩌지? 정답은 나보다 전문가인 사람들이 알고 있지 않을까?' 헤드 디자이너로서 3년 동안 사수 없이 일을 해나가고 있는 나는 누구보다 괜찮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떼기를 망설였다. 그 사이에 1년 차 동료가 아이디어를 무심코 툭 던졌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물안개 속에서 한 치 앞이 안 보여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내 앞으로 불도저가 하이라이트를 비추며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당장은 자기 효능감을 올리기 어렵다. 누구는 '나는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내일부터는 달라질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짜잔 하고 성장하는 사람은 없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워서 10분 동안 자아성찰을 열심히 했다 하더라도 나머지 23시간 50분 동안 의식 없이 살아간다면 처음에 다짐했던 의지도 결심도 소용이 없어진다. 잠시 사색하는 것으로 자아 찾기를 끝낼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깨어 있는 습관을 들여서 '진짜 나'를 찾아다녀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아는 것을 얘기한다. 평소처럼 순간에 드는 감정과 생각에 대해 대충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어제 살았던 나로서 그냥 다시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동이다.







 깨어있기 위해 작은 습관부터 만들고 싶다면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에 집중하기'이다. 나는 오늘 에어팟을 끼지 않고 출근을 해보았다. 매일 지나치던 어린이집에 눈길이 갔고 문 앞에서 아이가 신발을 벗으려 발을 꿈찔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말 오전이면 들리던 새소리가 출근길에도 들린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게 현재에 집중해보니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조금씩 보였다. 



최근에 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1년 넘게 글을 쓰지 않았는데 무심코 킨 브런치에서 한 줄 한 줄 '공들여 쓰고 있는 나'를 관찰하게 되었다. 나는 글을 다듬는 과정을 즐기고,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깨어있지 않았다면 '창작은 고통이다'라는 통념이 이유 없이 머릿속에 맴돌아 창을 꺼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차근차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가다 보면 언젠가 '진짜 나'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토독토독거리는 키보드 소리와 내가 적어 내려가고 싶은 정제된 생각들을 의식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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