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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Oct 30. 2022

EPILOGUE ; 쇼핑중독 논문은 현재진행 중

쇼핑중독에서 거짓 중독까지 애나 델비 스토리

지도교수는 쇼핑중독을 논문 주제로 승인한 이후 나만큼이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듯하다. 내가 마구잡이로 긁어모은 논문과 책 등의 자료 더미에 열중하며 나의 길을 잡아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고마움과 죄송함이 교차한다.    


그렇지만 논문 주제를 잡고 연구 모형 설계를 위해 2개월 여간 고민 끝에 대충 방향을 설정했다. 아직 연구 모형정확하게 나온 것은 아니지만, 자기애에서 강박 구매로 이어지는 경로에 SNS 통한 자기표현을 매개로 주입하고,  경로 과정에서 자기애자들의 결핍된 욕구, 이에 따른 자기불일치의 영향을 살펴본다는  틀을 잡았다. 그러나 대상 설정과 연구 정확성을 위해 자기애를 독립변인에서 제외하는 것을 고려하는 중이다.


지도 교수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내 가설에 대해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되고 말로는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이게 연구 결과로 나올지가 문제죠. 이런 복잡한 모형은 리서치도 쉽지 않지만, 나중에 변인 간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쉽지 않아요.”라며 쇼핑중독의 연구로 복잡하게 뒤엉킨 내 생각이 정리돼야 할 명확한 필요를 설명해줬다.


내가 쇼핑중독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면서 포기할  없는 변인이 자기불일치다. 이상적 자기와 현실적 자기의 간극이 클수록 이상적 자기가 되기 위해 아득바득 애쓰게 되고  과정에서 쇼핑중독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한 초기 가설이다. 여기서 논리적 맥락을 잡아가면서 변인이 더해지고, 빠지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중요한  핵심 변인은 고수할 것이다.


자기불일치로 인해 쇼핑중독이 되고 결국 파국적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애나 델비(Anna Delvey)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 Delvey)‘다. 애나 델비는 지금까지 내가 써 내려간 탐색의 모든 것이 담긴 쇼핑중독의 완벽한 모델이다.  


독일인 상속녀 애나 델비가 사기죄로 수감돼 재판받으면서 그의 행적이 낱낱이 드러난다. 재판 과정에서 미국 사교계가 사실이라 믿었던 애나 델비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이 밝혀진다.


애나 델비의 시작도 역시 패션 소비 중독이었다. 러시아에서 이민 온 16살 애나는 세련된 옷차림으로 아이들의 무시 어린 차가운 냉대를 호기심 어린 관심을 뒤바꾸는 데 성공했다. 당시 그와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패션에 푹 빠진 후로 누구보다 옷을 잘 입고 다니면서 패션 폴리스가 됐거든요.”라며 소외 받는 소수자에서 주류로 수직상승한 과거 그의 행적을 증언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좁은 방 안에서 럭셔리 패션 잡지를 보며 자신의 야망을 키웠다.


애나는 자살 시도를 한 후 입원한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한 거의 모든 말이 거짓이었지만, “잡지를 읽었어요. 제 방에 숨어서 이런 걸 봤죠. 보그, 보그 도이치, 베네티 페어, 하퍼스 바자. 모든 걸 배우고 싶었어요. 뭐든지 될 수 있게요. 왜냐면, 전 여전히 밝은 미래를 믿었거든요.”라며 자신의 꿈 꿨던 야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떠난 건 뭔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군요.”라는 질문에 “아뇨 뭔가를 향해 간 거예요. 잡지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세계요.”라고 답한다. 이어 그 세계는 실재 하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에 애나는 “아뇨, 실재해요.”라며 강력하게 항변했다.   


애나가 자살 기도를  병원에 들어가고 정신과의사에게 상담을 받는,  과정이 모두 그의 철저하게 계산된 의도된 계획이었지만, 의사와 주고받은 대화   부분은 애나가 만들어낸 픽션이 아닌 팩트다.


야망은 그를 중독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했다. 애나는 이상적 자기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패션 소비 중독은 사교계 VIP들과의 ’관계 중독 동반했고, 여기서 무너지는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허세 중독 따라왔고, 결국에는 거짓이 거짓을 낳는 ’거짓 중독까지 중독의 넓이와 깊이가 더해지면서 자신을 빠져나올  없는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는 A. Mueller가 정의한 강박 구매 병리적 결말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애나 델비의 강박 구매는 정신적, 사회적, 직업적 문제에 이어 법적 문제로 귀결됐다. 그리고 그의 병리적 중독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사람들이 네 과거로 널 재단하게 두지 마라, 네가 만들어가는 밝은 미래를 보여줘라.” 애나 델비의 말은 정말이지 유혹적이다. 그러나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만큼이나 정말 허망하기 그지없는 프로파간다 식 선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의문이 든다. 만약 애나가 이상화된 거짓 자기인 독일인 상속녀 델비가 아니라 현실 자기인 러시아 이민자 소로킨으로 살았다면 그의 삶이 건강했을까.      


* A. Mueller, et, al. in Encyclopedia of Behavioral Neuroscience, 2010  

사진 ;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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