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이 쌓인 곳.
어떤 50대의 여성이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저는 30대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이 키우면서 정신없이 회사 다녔거든요?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저의 30대는 통으로 없어졌어요.
나보다 10년을 먼저 가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30대를 생각해 보았다.
맞네...
나의 30대도 그러네...
29세에 출산을 하고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 주은이와 맞이한
나의 30대.
들끓는 모성애를 경험하면서도 한편으로 나를 찾고 싶었던,
아이와 나라는 존재 사이에서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어
양쪽을 부지런히 오갔던.
그렇게 오가느라 내가 부서지는 줄도 몰랐던,
나의 30대.
그렇게 진심을 다해 열심히 살았는데
눈에 보이는 또렷한 결과가 없다.
그때의 기억마저 통으로 없어졌다.
그저 많이 아팠고 많이 힘들었던,
마음 한편에 시리도록 차가운 시절의 희미한 느낌만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엄마가 된 30대의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그때의 나를 마주하는 듯.
그들 마음 안에서부터 불어오는 약하지만 시린 바람이 느껴진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따스하게 안아주고 싶다.
손 닿으면 데일 듯 그렇게 차가웠던 30대를 지나고
조금씩 온기를 되찾는 40대의 내가.
홀로 온기를 되찾고 있는 게 아님이 분명하기에.
나른한 일요일.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편안한 거실에 앉아있다.
어제의 시끌벅적했던 동네 가을 축제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조용하다 못해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 적막함이 느껴지는 바깥 풍경.
서늘한 바람과 낙엽만이 연신 가을을 알리고 있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아이가 내 옆에서 고개를 파묻고 책을 읽고 있다.
길고 윤기가 흐르는 풍성한 머릿결.
아직 아기 피부같이 보드라운 살결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제 신발이며 옷을 공유할 수 있게 된,
내 키만큼 자란 아이의 키.
문득 거기서 발견한다.
나의 30대를.
없어진 줄만 알았는데...
눈에 보이는 또렷한 결과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에 보이는 또렷한 결과가 내 눈앞에 있다.
나의 30대가 저기 있었구나.
내 소중한 아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품고 있었구나.
현재, 엄마로 살고 있는 30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이 안에 당신의 찬란한 30대가 쌓이고 있다고.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