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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네 Apr 04. 2024

계절 과자 도감

開春, 시작하는 봄

#. 냉이,딸기 그리고 바닐라



차가운 바람, 적막한 공기

흐릿한 하늘과 짙은 구름

앙상한 나무와 마른땅 위 물든

바랜 풀에 익숙해졌을 무렵

어느 틈엔가 연한 몽우리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흐릿하고 먹먹한 풍경 속에

고요한 적막을 깨고 돋아난 작은 풀.


바래지고 무감각해져 있는 틈 사이

아주 작게 돋아난 여린 녹빛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계속될 것만 같은 적막한 순간은

아주 작고 작은 초록을 마주하고 나서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숨 쉬고  있었다는 것을

새로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고독하고 적막한 시간 속에서

차갑고 외로운 순간을 마주할 때,

흐릿한 시선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이 있다.


무엇이 맞는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가 하고 있는 것, 나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씨앗이 고독함과 적막한 단단한 땅에

덮여 버렸을 때,

왠지 모르게 영원히 이 고요함을

뚫고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을 견디고

얼어붙은 땅의 단단함을 뚫고 나와

흐릿한 풍경의 적막을 제일 먼저 깨는 건

아주 작은 여린 녹빛이다.


그 작은 초록 주위로 해가 모이고

바람이 모여 어느 순간 마른땅을

생기를 담은 푸르른 녹빛으로 물들인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고요와 적막함으로  덮여버린

씨앗은 결국 그 순간을

견디고 그 안에서 뿌리내려

결국 여린 녹빛으로 뚫고 나온다.


어렵고 추운 시간을 견디고

받아들여야만 씨앗이 자라날 수 있다.

영원히 흐릴 것만 같지만

결국은

고요가 끝나고 봄이 왔다.


이번 과자를 준비하면서

보네에서 첫겨울을 보내면서

많은 고민과 생각이 많았다.


지금까지 많은 겨울을 지나왔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짙었다.

그만큼 어려웠고 불안했고 먹먹했다.

왠지 모르게 영원히 이 시간 속에

있을 것만 같아서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겨울은 끝나고

봄이 왔다. 이번의 적막함을,

유난히 길었던 밤을 잘 견뎌냈고

다시 돋아난 초록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런 순간을 지나오면서 내가 느꼈던

초록을, 견뎌낼 수 있었던

녹빛을 담은 과자를 만들어

보네에 오시는 분들의 새로운 봄을,

우리의 초록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은 과자를 만들고 싶었다.


짙은 고요를 잘 견디고 뚫고 나온 우리를

기특해하며, 다시 맞이하는 봄을 ,

생기로 가득해질 풍경을 기대하는

마음을 담은 과자를 만들자 하고

제일 먼저 떠올린 건 ,


얼어붙은 땅 위를 뚫고 나오는

초록, 냉이였다.





단단한 땅 아래 꾸준히 뿌리를 내리고

추운 순간을 견디어 자라나는

모습이 마치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여린 녹빛을 냉이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냉이 특유의 은은한 단맛이

과자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언제나 풀 종류와의 조합에선

풀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과일이나 다른 재료를 도와주는

정도를 생각하며 작업한다.


이번에도 냉이를 사용했지만

딸기와 바닐라의 사이를

은은하게 이어주는 ,


상큼한 딸기와 달콤한 바닐라크림

그리고 뒷맛에 은은히 맴도는 냉이의 향의 조화를

상상하며 형태를 잡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 과자는 정말로 어려워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테스트를

한 끝에 완성할 수 있었다.


냉이의 향이 강하면 부담스러워

원하는 형태의 과자가 아니었고

그걸 조절하려 하다 보면

향이 느껴지지 않게 나오길 반복이었다.

나올 듯 말듯한 지지부진한 기간을 지나와

완성한 냉이프레지에

나의 겨울이 담겨있는 과자.




비스퀴는 경남에서 재배한 우리밀로 작업하고

부드럽고 퐁신한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가을에 작업한 몽블랑 같이

튀지 않은 부드러운 식감의 과자가

어울릴 것 같아서 열심히 작업한 비스퀴.


냉이크림은 태안에서 재배한 노지냉이를

사용해서 만들었다.

은은한 향을 위해 몇 번을 만들었던 크림.

냉이 특유의 단맛과

산뜻한 뒷맛을 떠올리며 작업했다.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마음에 들게 나와준

이번 크림.


위에 올라간 마지팬은

아몬드 비율을 높여 더 고소하게 만들고

그랑마르니에를 소량 넣어 향을 더했다.


부드러운 비스퀴에 딸기시럽,

은은한 냉이크림,

상큼한 국산딸기와

냉이와 딸기를 넣어만든 젤리,

타히티바닐라빈을 사용해 만든

달콤한 디플로마와 가나슈크림,

마무리로 마지팬을 올려 마무리.


위에 올라간 데코는

봄꽃 물망초와 잔잔한 꽃이 매력인

딜꽃을 사용했는데

단순히 올려두지 않고 땅을 뚫고 올라오는

꽃을 표현하고 싶어

마지팬을 일일이 구멍 내 꽂아 완성했다.


계절그릇 사이드로 준비한

냉이피스타치오 타르트도

은근히 보이는 피스타치오 가나슈가

봄의 들판같이 그 위에 올린 딜꽃은

그 들판에 자라난 꽃같이 느껴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형태를 짰다.


——- ——-



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최대한 이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

우리의 순간을, 반짝이는 풍경을

잘 담아내고 싶다 ‘ 되뇌면서 작업한

보네의 첫겨울과 초봄.


냉이프레지에, 냉이피스타치오타르트, 레몬유자젤리

나의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될

시작하는 봄을 담아 작업한 계절과자.













춥고 고요한 시간 속 얼어붙은 땅 아래

꾸준히 뿌리를 내리고

단단한 마른땅 위를 뚫고 나오는

여리지만 강인한 녹빛.


고요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봄

: 開春 , 시작하는 봄

- 냉이 딸기 프레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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