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의 품격

품격있는 혼술을 위하여

by 해사

술이 생각나는 날이 있다.


유독 기분이 좋지 않은 날, 혹은 좋은 날.

몸이 고단한 날, 아님 마음이 고단한 날.

가만 있어도 흥이 올라 웃음이 자꾸 새어 나오는 날.

그것도 아니면, 저녁 메뉴가 안주로 딱 좋은 날.


술을 자주 먹는 편은 아니지만, 한 달의 몇 번은 '아, 오늘이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혼자 마시는 술은 보통 와인이나 맥주다.

와인은 맛도 좋지만 멋도 있어 혼술에 제격이고,

무더운날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면 세상 시원한 계곡이 따로 없다.


술은 보통 남편이나 동네 친구와 먹지만, 때로는 그저 혼자가 좋은 날도 있다.

그런 날은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조용히 딱 한잔만. 아니 두잔까지만.

혼자 고주망태로 취하는 모습은 싫으니까.

나는 혼술의 우아함을 지키고자 부지런히 노력하는 품격있는 혼술인이다.


혼술의 품격은 그릇에 있다.

안주가 기가 막힌 날은 안주 자체로도 훌륭한 한 상이 완성되고,

그렇지 않은 날은 내가 좋아하는 그릇들을 꺼내든다.

소박한 안주에 정성을 입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혼술의 품격이고, 나에대한 예의니까.


기분이 좋은 날 허접한 술상이라니 격이 맞지 않다.

기분이 안좋은 날은 그럴수록 더 예쁘게 먹어야 한다. 화가 치솟는 마음을 내가 달래야 하니까.

몸이 고단한 날, 마음까지 주저앉을 순 없으니 그릇을 꺼내고

마음이 힘든 날, 스스로를 위로하듯 상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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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회는 까맣고 납작한 접시에 담는다. 색의 대비가 주는 멋이 있다.

빨간 육회나 닭발은 하얀 접시에 담아야지.

선명한 빨강과 깨끗한 흰색이 만나면 빨강의 매력이 돋보인다.

계란찜은 마치 일식집처럼 도자기 컵에 근사하게 담아본다.

이것도 저것도 없는 날에도 과자라도 뜯어 어떤 그릇이 어울릴까 이리 저리 맞춰보다 하나를 고른다.

가끔은 유난이다 싶기도 하지만, 내가 좋으니 됐지 뭐.


그렇게 마시는 술은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내 이유없는 즐거움도 공감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이 접시는 이래서, 저 그릇은 저래서라며 저마다의 이유를 붙여 꺼낸 그릇들이

오늘도 나의 혼술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 혼자 예쁘게 치얼스.




** 오늘의 그릇 **

- 솔솔푸른솔 타원 통굽접시 :

굽이 있어 식탁에 입체감을 준다.

음식을 담는 부분의 오목한 정도가 앞뒤로 달라 양면으로도 사용 가능

정육점에서 산 육회에 함께준 소스로 버무리고 집에 있는 쪽파로 색을 더했다.



- 코스트코에서 산 이름 모를 와인잔 :

입이 크게 벌어져 있어 향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식탁에 화려함을 챙기는데 일등 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