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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Jul 04. 2024

작가님의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2024년 절반이 지났다

'작가님의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라는 브런치스토리 [글 발행 안내] 재촉(?) 알림이 뜰 때마다 무진장 찔렸다. 밖에 나가서는 '매일 씁시다! 잘 쓰려는 것보다 꾸준히 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를 외쳐대면서 정작 나는 몇 달째 실행에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브런치의 글 발행에 관한 나의 부채감에 관한 것이고 글벗들과 함께 하는 1000일 글쓰기는 매일 빠지지 않고 글을 채우고 있다. 어제까지 913번째의 글을 썼으니깐 1000번째 글을 쓸 날도 머지않았다. 



종종 매일 글쓰기에서 썼던 글을 브런치스토리에 옮겨 발행하기도 했다. 발행할 글을 어떤 기준에 의해 선정했던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글을 쓴 후의 만족감과 7명 글벗들  외에도 내 글을 다수에게 공개하고픈 욕구가 불쑥 얼굴을 내밀 때 망설임 없이 글을 옮겼었다. 그렇다면 지난 몇 달 동안은 왜 브런치를 떠났던가? 하는 반문을 피할 수 없는데... 어스름하게 머릿속을 스치는 이유는 글을 쓸 때 자꾸 힘을 들여 쓰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힘이 들어가면 당연히 글쓰기도 힘들다. 한 문장 쓰는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완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힘겹게 겨우 썼는데 내가 쓴 단어와 표현에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렇지 않아도 고칠 게 많을 텐데, 첫 술부터 탐탁지 않으니 발행까지 가닿을 리 없었다. 



"일단 글 먼저 발행하시고 이후 글 수정하셔도 돼요.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에 너무 부담을 느끼지 마세요." 얼마 전까지 평생학습관에서 성인 대상으로 '브런치 작가 되기' 수업을 이끌었던 강사였던 내가 수강생에게 한 말이다. 말을 하면서 정작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멋쩍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그랬던 내가 오랜(!)만에 브런치스토리 '글쓰기' 창을 열었다. 더 이상 브런치 외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Feel에 입각해 적절한 타이밍을 맞은 것이다. (뭘 또 이렇게까지 에둘러 말하냐, 없어 보이게.) 한 마디로 '그냥 다시 쓰고 싶어서'가 아닌가. 





2024년의 절반이 지났다. 자연스럽게 반년 동안 있었던 일을 돌아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시간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하루하루는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하게 흘렀으나 달별, 분기별, 상반기로 나눠서 보면 평범한 날들만 있었던 것 아니다. 



책방에서 책을 파는 사람이 되어봤고, 읽고 쓰기 관한 유료 모임을 운영했다. 그중 어떤 모임은 계속해서 이끄는 중이다. 평생학습관의 글쓰기 수업 강사를 맡아 나처럼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을 도와 작가 배출이라는 성과를 만들기도 했다. 엄청난 자랑거리 일만큼 대단한 결과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유일한 '나'라는 사람이 지나고 있을 지금의 일과 인생에서 지나고 있는 행적을 주의 깊게 살핀다면 올해 상반기는 작년 이맘때쯤과는 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시작하지 않은 일에 대해 마지막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고 상상한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을 가장 먼저 떠올린 후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서는 지레 겁을 먹는다. 그리고서 시작하는 것을 망설인다. 이 생각의 고리가 지난 10년 동안 나를 꽉 붙잡았다. 더는 버티기 힘들겠다 싶었을 때 스스로 그곳에서부터 벗어났다. 처음에는 올가미에서 벗어난 것처럼 해방감이 몰려왔다. 가빠진 숨을 고르고, 내 호흡 속도를 찾고 맞추다 보면 번아웃을 겪으며 불안장애로 자리매김하려는 나쁜 기운을 스스로 몰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되고 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가면 나도 모르게 가빠졌던 숨이 언젠가부터 다시 편하게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1시간 남짓 걸리는 제주행 비행기를 타려거든 꼭 비즈니스 좌석에 앉아야만 했던 내가 이코노믹 좌석에 앉아도 비행 중에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지 않게 됐다. 주어진 일을 맡았을 때 무조건 완벽하게 잘 해내서 인정받아야겠다는 욕심을 앞세우지 않게 됐다. 협업도 좋아하지만 혼자서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것을 즐긴다는 걸 알게 됐다. 말투와 표정이 직설적인 모양새와는 거리가 멀고 타인의 시선에 의식을 많이 했던 터라 내 생각을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반대쪽에 가까워졌다. 오히려 불편함을 감추려고 표정관리하는 게 더 어렵다. 아무리 원하고 바라던 것을 이루게 되어도 걱정, 불안, 불만, 아쉬움은 늘 다른 모습으로 내 곁에 맴돈다는 진실을 믿게 됐다. 이것을 알고 있어도 거센물살처럼 몰아치는 걱정과 불안을 잠재우기 어려울 때만 갑자기 책장에 있는 책들을 바꿔 본다던가, 중구난망으로 어질러있는 서랍장을 뒤엎든 집 안에서도 잘하지 않는 엉뚱한 일을 찾아 헤맨다. 스스로 구제하는 법을 어떡해서든 터득해 보는 거다. 



누구나 성공을 원하고 원하는 대로 결과가 주어지기를 기대하지만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나도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맞다. '장담', 나는 자주 장담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에 장담하는 것만큼 쓸데없이 힘 쏟는 일도 없는 것 같다.



남은 절반 2024년도 스스로 터득하며 잘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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