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두려움

번아웃의 발현(1)

by 임다희

해외 출장이 잦았던 5년 전 일이다. 신규 매장 오픈 준비를 위해 현지답사와 디자인 협의 차 1박 2일 일정으로 말레이시아로 출장을 갔다. 비행 스케줄과 공항을 오고 가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매장을 돌고 미팅을 끝내고 나니 저녁 6시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자정에 뜨는 스케줄이었지만 차가 엄청 막힌다는 얘기를 현지인에게 듣고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탔다.



교통체증은 예상대로였다. 대형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차들은 도로 위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휴대폰에 구글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도로 상황을 확인하니 빨간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도착 예정 시간이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점점 초조해져 갔다.



공항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이 비좁은 택시 안에 얼마 동안 있어야 할까?



그러나 나의 불안이 증폭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급한 마음에 아무 택시나 골라 탔던 게 화근이었다. 택시 기사는 우리가 가야 하는 국제공항이 아니라 국내선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가 잘못됐다고 택시기사에게 묻자 오히려 우리(나와 동료)더러 목적지를 잘못 얘기한 탓이라고 우겨댔다. 그러면서 국제공항으로 가 줄 테니 택시비를 더 내라고 했다. 낯선 나라 도로 한 복판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속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생각에 나의 불안함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가슴이 조여 오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갑갑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졌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야 했고, 바지 버클이라도 풀어야 했다. 당장 이 택시에서 뛰쳐 내리고 싶었다. 비좁은 택시가 감옥 같았다. 꼼짝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든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버텨야만 한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까 싶어 밖을 내다봐도 칠흑 같은 어둠만 있었다. 처음 느끼는 낯선 공포감에 눈물이 흘렀다.




이 날 이후, 나는 사방이 막힌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있거나, 갑자기 몰리는 상황이면 의식적으로 피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의 뇌는 두려움을 느꼈던 그때의 불안감을 정확히 기억했다. 공기든 사람이든 순환이 되지 않고 꽉 막혀있다는 답답함을 감지하면 나의 감각은 공포심을 불러왔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공포와 불안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내가 만든 가짜 두려움에게 나의 일부를 빼앗긴 것만 같았다.



일상생활에 없던 제약이 많이 생겼다. 복잡하고 번잡한 시간대에 지하철 타지 않기, 낡아 보이는 승강기는 피하고 계단으로 이동하기, 비행기 타지 않기, 광역버스 타지 않기, 불가피하게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면 앞자리에 앉기. 등등 예전에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들로 바뀌었다.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