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에 관하여(2)
원망이 한 움큼 들어간 한탄 섞인 글 제목부터 썼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돌아오는 대답이 ‘각자도생’이라니. 필요할 때는 요리조리 살펴 어렵게 뽑아서 열심히 써먹더니, 이제 단물은 다 빠졌나 보다. 단물 다 빠진 껌은 빨리 뱉어내고 싶겠지.
단물이었던 시절, 소싯적 잘 나가던 ‘라테’ 시절을 그냥 지날 칠 수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K-뷰티가 열풍이던 5-6년 전이 떠오른다. K-뷰티 트렌드를 선두 하는 화장품 회사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는 나는 일이 넘쳐났다. 국내, 중국, 동남아시아에 매장을 오픈해야 하는 일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본사 디자이너로 일하는 나는 매장이 오픈하는 단계까지 디자인 검수를 위해 동남아시아의 국가들과 중국의 여러 도시들로 수도 없이 출장을 다녔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비행기를 타고 지사 관계자와 현지 업체 사람들과 미팅을 하며 매장을 뚝딱 만들어 내곤 했다.
회사는 업계에서 선두두자의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최초, 최고’를 강하게 밀어 붙었다. 오프라인 매장은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고 고객과의 신뢰를 쌓는 실제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공간 역할을 잘 해내야 했다.
회사는 멋있고 특별하게 보이기 위해 디자인 개발에도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덕에 우리는 해외 유명한 디자이너와의 협업도 다양하게 진행했다. 글로벌 고객들의 관심과 주목을 얻기 위해, ‘잘’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일하느라 과한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그래서 힘들어도 성취감과 뿌듯함으로 자발적인 보상이 되던 때였다. 그야말로 오프라인의 황금기였던 시절이었다.
좋았던 때를 회상하며 그때의 기분을 자꾸 들춰보다 보니, 그 열정의 불꽃이 다시 생길 수 있을까 싶다. 소멸된 불꽃. 생성과 소멸의 연관관계까지 들먹이며 이 생경한 감정에 의미를 부여해본다. 백세 시대에 절반도 살지 못했으면서 마흔셋에 이렇게 까지 구구절절한지 참 보잘것이 없다. 토해내듯 쓰는 글에 찌질함이 너무 묻어날까 봐 걱정이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것은 이 찌질함 조차 나의 일부일 테니까.
아무 맛도 안 나는 껌 같은 존재에 대한 생각은 없길 바랐는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상사의 입으로 그런 뉘앙스의 말들을 듣고 나니, 몹쓸 병 같은 열패감이 나를 몰아세웠다. 개인의 능력 부재 관점에서 들여다볼 치부도 아니고, 시대가 변했으니 자연스레 변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였을 뿐인데 그 파장은 주변으로 퍼져서 옅어지고 묽어졌으면 좋겠는데 계속 그 자리를 맴돈다.
5-6년 전 같았으면 다시 힘을 내고, 잠자고 있던 열정까지 깨워서 박차를 가했을 것이다. 파내고 또 파내도 끊임없이 샘솟을 줄 알았던 30대의 열정은 수명을 다했다. 자신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진 삶을 사느라 애쓰고 열 일했다. 40대에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것은 대단한 착각이었고 또다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무슨 열정을 찾아야 할지 아직 감도 잡히지 않지만, 뭐라도 두들기면 뭐라도 잡히겠지.
그러니 새 출발을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