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의 발현(2)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 가짜 두려움 (번아웃의 발현(1)) 글 중에서
내가 탄생시킨 존재, 이 생경한 두려움이 내 안에 또렷하게 자리 잡고 말았다.
그러나,
가짜 두려움에게 나의 삶을 그대로 내어줘서는 안 된다는 결의와 이것을 거부할수록 더욱 나의 일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차렸을 때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두려움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아내야 했다.
당장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 심리 상담을 찾았다. 일 때문에 출장을 가야 하면 병원에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손에 쥐고 비행기를 탔다. 병의 원인을 찾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테지만 당장 도움을 받을 곳이 있다는 게 엄청난 위안이었다. 그만큼 여태껏 살면서 이 정도로 불편한 감정은 처음이었다. 두려움이라는 핵의 한가운데에서 빠져나올 때쯤 그동안 보지 않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30살 신입
조급하게 시작한 직장인
유학은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 나이 서른이었다. 나이 많은 신입을 반겨주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직장은 하루 건너 야근을 해야 했고 밤샘 작업도 자주 했다. 그나마 일하는 동료들 덕분에 첫 직장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대학교 때 못해봤던 캠퍼스 연애를 직장에서 비밀리에 연애도 해보고, 술은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마셔야 제 맛!이라는 것도 배웠으니까.
하지만 유학까지 다녀온 늦깎이 신입인 나는 조급했다. 직급과 연봉을 빨리빨리 경신해야 했고, 나를 아는 사람들 앞에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나의 회사 이름이 나의 신분이자 사회적 지위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시절. 더 안정된 회사에서 떳떳하게 일하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이라도 믿었던 시절. 회사의 평판과 나의 위치, 두둑해진 월급이 나를 증명해줄 거라는 착각 속에 30대를 보냈다.
가끔 의심이 생기는 일에도 ‘일은 원래 다 그래. 인생은 다 그런 거야. 너무 애쓰지 마. 그러려니 해.’ 하며 안일하게 안주하며 받아 들렸던 것 같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로 만 알았으니까. 경쟁은 싫어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배웠으므로 경쟁이 싫다고 포기라도 하면 ‘루저’가 될까 봐 그냥 버텼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성공의 길에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럴싸한 남들 얘기를 내 얘기처럼 혀를 내둘렸다.
자체적 결함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 결함의 구멍들이 점점 커져서 나에게 공허함으로 돌아왔다. 공허감이 몰려올수록 나의 노력만큼 적절한 보상을 받고 있는가,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로 나를 평가하고 있는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높은 산을 향해 쏘아 올린 화살이 되돌아 나로 향하는 느낌. 무엇을 믿고 있어 왔다는 신념에게 얻은 배신감. 나는 무엇을 위해 일했던가, 나는 누구였더라 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바라볼수록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던 내가 보였다. 조급하고 남들과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압박으로 나의 결합의 구멍을 감추려고만 했다. 무엇으로 메꿔야 하는가 보다 채워지느라 급급했던 구멍은 되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말았다. 끝내 커진 구멍은 공황발작, 광장 공포증으로 발현되었을 뿐이었다.
괜찮다. 그럴 수 있는 거다.
40이 넘어서 인생의 중심점이 엉뚱한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더 늦었다면 그 충격의 여파는 더 오래 지속될지도 모른다. 아직도 헤매는 삶이고 언제쯤 괜찮아 질지 알 수 없지만 괜찮다. 다만 나의 구멍을 어떻게 채울까?를 생각한다. 바늘과 실로 한 땀 한 땀 잘 여미고, 바늘 땀이 엇나가지 않게 바늘과 실의 방향을 잘 가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