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이게 뭐라고

퇴사를 결심한 용기(1)

by 임다희

매너리즘 온 걸까?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다고 결심한 또 다른 배경에는 10년 넘게 해오던 ‘디자인’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흔히 디자이너라고 하면 ‘창작’의 영역에 있는,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직업으로 떠올린다. 이것이 보편적인 생각인 이유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디자인이라는 학문이 보이는 것들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고, 삶의 일정 부분을 유택하게 만드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그래픽, 제품, 공간, 패션 등 이 모든 것을 사용하는 사람, 즉 사용자 중심에서 필요한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창조 과정이다.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다."



이렇게 멋진 의미를 가진 학문을 배우고, 10년 넘게 업(業)으로 삼았다. 그러나 연차가 쌓일수록 내가 하는 일이 디자인일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 배후에는 성과에 대한 조급함과 의사결정자의 안위가 깔려 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디자이너가 있지만, 특히 기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꺼라 의심치 않는다.



디자인 결과물은 정성적 평가로 대부분의 결과물 찬반(贊反)을 가리고, 때에 따라서는 매출이라는 ‘수치’에 기반해서 정성 평가가 이뤄진다. 모든 디자인의 결과물이 이와 같지는 않겠지만 냉소적으로 본다면, 의사결정자의 한 마디에 디자이너의 노력과 수고가 극찬을 받기도 하고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줄 알면서도 상상한 것을 그려내고 만들어 낸다는 것에 희열과 뿌듯함을 느끼고, 그로 인한 성취감으로 힘들어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자생적으로 얻곤 했다. 좋아하고 재미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는 더는 못할 것 같다. 의사 결정의 번복과 또 번복될지 모를 설득의 과정, 복잡한 보고 라인과 방향 상실한 디자인 수정에 지쳐버렸다. '숫자'를 중요시하는 기업에서는 '디자인'이란 가십거리처럼 만만한 존재에 불과하다. 나의 작은 손길로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나이브함에 지나지 않다고 (설령 그러할지라도) 스스로 폄하한 순간, 이 일에 감흥도 잃고, 의미까지 상실해버렸다.




몇 년 전 디자인 콘퍼런스에서 (그 당시) 주목받던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토크를 들은 적이 있다. 디자이너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질의 시간으로 이어졌는데, 그중 기억나는 게 있다. 관객 중 한 명이 왜 유명한 기업과 협업을 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했다. 질문을 받은 디자이너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의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를 위해 클라이언트와 일을 골라서 합니다."



그때 나는 그의 대답이 참 거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유명한 것도 아니면서 최근에 좀 잘 나간다고 잘난 척하나 싶었다.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한다는 말에 나는 그를 오만한 디자이너로 바라봤던 거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의 대답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고 장치화 해서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 디자이너 역시 그 대답을 하기 앞서 수많은 삽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하는 것이 디자인인가라고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