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심한 용기(2)
회사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지난 7년간의 흔적이 차곡차곡 채워져 있었다. 이직을 위한 퇴사였다면 아마도 파일들을 일일이 열어 보며 지우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직장, 새 출발에 더 신경을 쏟느라, 과거를 대충 정리했을 게 뻔하다. 앞으로 달리는 게 더 중요했었으므로, 지난 발자취는 이미 내 안 어딘가 축적되어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으로 쓸데없는데 시간을 쓸 필요가 없었다. 여유 없었던 퇴사. 먼저 했던 퇴사들이 그랬다.
이번 퇴사는 이전과 다르므로 마무리도 다르게 하고 싶었다.
내가 했던 일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고 어떤 경험이 내게 남았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연도별로 정리해놓은 업무 폴더를 하나씩 열어봤다. 연도별 하위 폴더에는 프로젝트별로 폴더가 나뉘어있다. 최근 순으로 하나씩 열었다. 받은 자료, 보낸 자료, 진행 중, 보고자료, 비용, 일정, 참고자료…… 폴더 안에도 여럿 파일들이 저장되어 있다. 그 일을 했을 당시에는 파일 하나하나가 모두 귀중한 자료였는데, 이제는 쓸모없는 파일들이다. 그럼에도, 다시 열어보지 않을 파일들인데도 휴지통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내가 당장 삭제하지 않더라도 내 사 번이 존재하지 않는 날에 모두 사라지게 될 텐데,
그럼 굳이 지금 삭제를 해야 할까?
나의 피땀 눈물이 보고자료 장표 글자마다, 설계도면마다 , 스케치 하나하나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최종 버전을 만들 때까지 수많은 삽질로 일궈낸 결과물이었지만,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생소한 이름이 붙여진 파일이라도 막상 열면 그때 했던 일들이 되살아났다. 일이었음에도 웃고, 울고, 화내고, 불평하고, 기뻤던 7년의 시간을 들춰 보다 보니 정말 오만 감정이 다 올라왔다. 기 센 동료에게 눌리기 싫어서 방어막 치던 시절, 오픈하는 날 멀쩡했던 가구가 어이없이 무너지던 순간, 상사에게 시원하게 대들었던 장면, 나이 마흔에 상사 앞에서 엉엉 울었던 일 등 의외로 좋았던 기억보다 힘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삭제 이게 뭐라고!
파일 하나 지우는 대로 뭐 이리 감상적이며 궁상인가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퇴사도 이별이다. 이별에 서툰 나라서 어쩔 수 없는 거다. 괜찮아도 기억 어딘가 묻어 있던 여린 감정과 흥분이 자꾸 올라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파일을 열지 않는 편이 나았을까?
그동안 나에게 내가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이것도 그리 쉽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