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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사라지는 추억을 기억하는 방법

목욕탕, 여관, 시민회관 그리고 당신의 집

우리 주변에 사라지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나타나는 하늘로 우뚝 솟은 굴뚝이 있는 목욕탕은 이제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건축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집에 목욕탕이 없어서 특별한 날이 되면 동네 사람들 모두 대중목욕탕에 가 발가벗고 어깨를 부딪히며 몸을 씻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졌습니다. 뜨거운 물이 가득한 탕은 사람으로 가득 차 눈치를 보다가 재빨리 들어가야 했고, 목욕을 하기 싫었지만 엄마 손에 이끌려 여탕에서 목욕을 하다 동네 여자 친구나 학교 여자 동창을 만나면 부끄러움에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왜 그 시절에 아빠는 아들을 데리고 목욕을 다니지 않으셨던 건지...  

산지천갤러리로 변신한 금호장 굴뚝

시간이 무척 많이 지나서 이제는 집마다 방이 두세 개씩 있고, 화장실도 하나로 부족해 두 개가 있는 집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샤워를 하게 되었고, 또 사우나라는 이름의 고급진 목욕탕이 생겨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주던 대중목욕탕은 쓸모가 다한 건축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깨끗하게 리모델링을 해서 명맥을 유지하는 목욕탕이 보이긴 하지만 주된 이용객은 어르신들이어서 세대가 지나면 가장 먼저 사라질 건축물입니다. 쓸모가 다하면 철거를 하든지 다른 목적으로 이용해야 하는데, 주변 건물보다 높은 굴뚝을 철거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철거도 여의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간을 꼭 철거해야 할까요? 대중목욕탕은 굴뚝이 있어야 하고, 여러 사람이 목욕할 수 있는 큰 공간을 기본으로 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굴뚝은 도시의 상징처럼 보이고, 큰 공간은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니 다른 쓸모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시장이 될 수도 있고, 소통의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산의 예술공간인 대안공간 반디가 목욕탕을 이용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꽤 오래전이고,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운영하는 산지천갤러리는 목욕탕을 가진 두 개의 여관을 리모델링해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제주시의 리듬앤블루스라는 곳도 태평탕이라는 목욕탕의 내부 구조를 그대로 살려서 카페로 운영되고 있고, 서울 계동에서는 젠틀몬스터가 목욕탕을 쇼룸으로 만든 일도 있습니다. 목욕탕은 여러 개의 방이 연속되는 여관과는 달리 큰 공간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매력적인 연출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서울 통의동의 보안여관은 개별적인 방에 전시를 하는 방식으로 멋진 전시 공간을 찾기는 했지만 큰 공간과는 이용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산지천갤러리와 리듬앤블루스
통의동 보안여관

우리 주변에는 생활 방식의 변화로 쓸모가 다해 사라져 가는, 단일 목적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참 많습니다. 목욕탕도, 여관도, 시민회관도 그러합니다. 멀티플렉스가 대세가 되어 단관 극장도 전국에 몇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서울의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대한극장, 단성사 등이 멀티플렉스로 바뀌었고, 지역으로 가더라도 남아 있는 단관극장이 몇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제주에서도 이미 쓸모가 다해 비어있던 제주 최초의 극장인 현대극장이 철거되는 일이 있었고, 서귀포의 관광극장은 지붕도 날아간 채 방치되다가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겨우 사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역에서 공적으로 수많은 행사가 진행됐던 읍민관, 시민회관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서귀포 관광극장과 철거된 제주시 현대극장

예전 극장을 리모델링해서 뮤지엄으로 만든 좋은 사례로 있습니다. 제주시 탑동에 있던 탑동시네마가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라는 멋진 전시공간으로 바뀐 것입니다. 세계적인 미술 콜렉터 중 한 분이신 아라리오 그룹 김창일 회장께서 소장품을 전시할 공간으로 극장이었던 공간을 선택하셨는데 커다란 작품도 전시할 수 있는 극장의 구조가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극장, 시민회관 등이 원체 큰 공간들이다 보니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뭔가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철거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하지만 새로이 만드는 일과 더불어 이러한 건축물을 그대로 뒀을 때의 장점도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큰 건축물이기 때문에  주변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이 건축물이 도시 밀도를 낮춰 도시를 쾌적하게 만들어주며, 지역의 기억을 축적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저층의 건축물을 고층으로 개발할 경우 유동인구가 늘어나는 장점도 있지만 오픈 스페이스가 줄어들어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민간 건축물인 경우는 이래라저래라 하기 어렵지만 공공의 건축물인 경우에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귀포시 시민회관은 이미 철거가 되어 새로운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제주시 시민회관은 철거가 결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철거가 예정된 제주시민회관과 도시건축 전시

이 공간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목표를 정할 수만 있다면, 철거하지 않고도 이 공간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서, 조금이라도 더 사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철거 후에 더 좋은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만든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목욕탕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쳤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우리 주변에 쓸모가 다 한 것처럼 보이는 건축물들을 둘러보고 새로운 용도를 찾아보는 운동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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