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이렇게 절정이라도 치닿게 되면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을 축복이라도 하려는 듯 여행을 따나고 픈 마음이 든다.
한 시절을 마무리하고 동면을 취하는 나무를 아름답다 감탄하는 건 잔인한 생각이지만, 책거리를 하듯 올 한 해도 수고했다 노고를 치하하는 순방길 정도로 치부해본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가을도 이토록 아름답길 바라는 염원의 순례길인지 모르겠다.
보통 휴가 혹은 여행은 재충전의 시간이라 하지만, 무엇을 위한 재충전이란 말인가? 주 40시간 이상의 밥벌이를 위해 내 몸과 마음을 달래야 하다니. 아무리 먹고사는 게 고된 일이라지만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무엇을 위해 휴식이 있어야 하는가?
내 일을 위해 쉬는 것인가?
여행의 쉼은 내 행복과 무관한 일인가?
한 숨 고르러 간 서해의 일몰을 보며, 서글프다 싶으면서도 이제 밤이 오니 '그만 됐다.', '그 노곤한 몸은 이제 쉴 수 있어 다행이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르겠는 생각을 뱉게 된다.
차라리 여행을 가지 않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보고 듣고 먹고 마시며, 우린 속에 담아둔 좌절과 고민을 외면해버리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우린 그런 소모적인 것들을 여행지에 버려두고 온다. 그리고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것들이 기어코 나를 다시 찾아오면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버리고 만다.
그렇게 나를 외면하기만 할 거라면 차라리 처절하게 맞서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