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눈에 띄는 아이었다. 어딜 가나 주목을 받았고 모두의 시선을 훔쳤다. 잠시 훑고 가는 것일지언정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너를 돌아보았다. 놀이공원에서 무더기로 몰려있는 색색의 헬륨 풍선 다발을 어쩔 수 없이 흘끗 보게 되는 심리와 비슷했다.
풍선 다발이라. 그래, 너는 취향 다발이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대충 골라 걸친 것 하나 없이 세심하게 고르고 꼼꼼하게 배치한 너의 차림새.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라고 외치는 자기 주장 강한 입성. 겉모습만으로 자신을 그토록 강렬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기에 그만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미친 사람처럼 입으로는 실실 웃으면서 눈으로는 계속 너를 쫓았다. 신기한 생물을 보듯 경탄을 금치 못하며.
이끝에 네가 있다면 저끝에는 내가 있었다. 무색무취, 아무런 특이점도 없는 나. 사람들은 나를 잘 기억하지 못했고 종종 나의 존재를 잊었다. 그러면서도 결핍의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아서 내가 시야에 들어오면 저도 모르게 꺼리며 외면했다. 차라리 고고했으면 좋으련만. 필연적인 외로움 앞에 나는 자주 비굴해졌고 잔뜩 굶은 개마냥 부스러기 관심이라도 받고 싶어서 헐떡였다.
그러나 제 부모의 관심조차 얻지 못한 이가 무슨 수로 타인의 관심을 얻겠는가. 나는 그저 낳아졌고, 길러졌다. 그 과정에 어떠한 애정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 부모는 내게 의무를 다 했다. 굶기지 않았고 헐벗게 두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를 들여다봐준 적은 없었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게 두지도 않았다. 어떤 음식이 맛있냐고 묻지 않았고 어떤 옷을 입고 싶으냐고 묻지 않았다. 음식은 무엇이 주어지든 감사하게 먹어야 하는 것이었고, 옷은 일 년에 한두 번 보따리째로 얻어오는 옷더미에서 몸에 맞는 것이 있으면 고맙게 입어야 하는 것이었다. 장난감이 됐든 학용품이 됐든 없어서 곤란했던 적은 없었다. 다만 그 중 단 하나라도 내가 고른 것 또한 없었다.
어떻게 원망할 수 있을까. 내 부모는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어쩌다보니 건사할 자식이 넷이나 되어, 중간에 낀 조용한 자식에게 별다른 관심을 줄 수 없었을 뿐이다. 나뿐만 아니라 그들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볼 겨를 없이 살았다. 그런 건 그냥, 사치였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그게 정말 사치였을까. 내가 나에 대해 안다는 게, 알고 싶어한다는 게 사치인 걸까.
딱 한번 욕심을 부린 적이 있다. 늘 무채색에 밋밋하기만 했던 옷 무더기에서 파스텔톤 니트 조끼를 발견했을 때였다. 연한 핑크색에 목선을 따라 붉은 잔꽃이 수놓인 조끼를 보자마자 어쩐지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옷더미를 헤집는 언니와 여동생의 손을 피해 조끼를 슬쩍 집어들고 가만히 몸 앞에 대어보았다. 조금 작은 듯 싶었지만 입자면 못 입을 것도 없을 듯했다. 밑단을 벌리고 막 머리 위로 뒤집어써보려는 찰나 누군가 그것을 훽 낚아챘다. 엄마였다. 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건조한 얼굴로, 내게서 낚아챈 조끼를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무감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셋째한테 맞겠다.
그 말을 들은 여동생이 냉큼 머리를 들이밀었다. 나는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조끼 목을 통과해 나온 여동생의 머리채를 잡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로 억세게 휘감아 당겼다. 동생의 새된 비명소리가 귓속을 파고드는 순간, 철썩. 눈앞이 번쩍하더니 뺨이 얼얼해졌다.
엄마는, 방바닥을 기어가는 벌레를 때려잡을 때와 같은 손놀림으로 내 뺨을 치고는 여전히 피로한 음색으로 중얼거렸다.
-이기적인 년.
눈물이 고였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조끼가 결국 누구 것이 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오돌도톨한 조끼의 촉감과 붉은 색 잔꽃 무늬가 여전히 생생하다. 무언가를 욕망하였으나 철저히 좌절 당한 순간, 그 순간과 함께 박제된 연분홍색 니트 조끼.
그러고 보니 네게도 그런 조끼가 있었다. 보자마자 아랫배가 간질거리는, 어여뿐 연분홍 니트 조끼가. 어린 시절 나에게 이기적인 년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게 한 그 조끼를 입고 너는 세상 천진하게 웃었다. 괜히 목이 메여 한참을 바라보다 예쁘다,라고 간신히 한 마디 뱉은 나에게 너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런 조끼 많다고. 이런 것쯤, 일주일에 하나씩도 뜰 수 있다고.
새삼스레 너를 보았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찬찬히 곱씹듯 보았다. 모든 것이 너의 취향이었다. 네가 원치 않은 것은 설령 아주 작은 귀걸이 한 짝이라도 네게 붙어있지 않았다. 아아, 사치스러워라. 어쩐지 눈부셔서 눈을 가늘게 뜨며 네가 듣지 못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치스럽기도 하지, 너의 모든 것.
너를 만나고 온 날이면 몇 시간이고 거울 앞에 오도카니 앉아 나를 보았다. 눈도 코도 입도 귀도 다 그 자리에 있는데 아무 것도 제자리에 있지 않은 듯했다. 길을 가다 마주치면 나조차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너의 집을 다녀온 날이면 방 한가운데 서서 나를 닮아 밋밋한 공간을 구석구석 노려봤다. 만약 내가 죽고 누군가 이 방을 정리하러 들어온다면 여기서 수 년을 살았던 이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려나. 여성이라는 것, 아마도 20대 어쩌면 30대, 남겨진 옷가지로 추측할 수 있는 신체 사이즈 정도일까.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나도 모르니까. 단지 필요에 의해 그 자리에 있을 뿐인 사물에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마트에서 삼만구천구백원을 주고 산 앉은뱅이 책상과 다이소에서 손에 잡힌대로 산 천원짜리 물컵, 원룸에 원래부터 딸려있던 이인용 식탁 위 먼지 앉은 각티슈와 청구서 고지서 따위를 대충 던져둔 플라스틱 바구니. 그 모든 것이 무채색이고 무개성할 뿐인데.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너의 방을 떠올린다. 나뭇결이 선명한 식탁에는 무엇이 있었더라. 아아, 그래. 법랑 주전자에 풍성하게 꽂아둔 안개꽃이 있었지. 그 아래 면직 테이블보의 반복된 무늬도 떠오른다. 너의 집은 너를 닮아 다채롭고 오밀조밀하며 아늑했다. 동화에 나올 법한 알록달록한 방에서 네가 내어주는 달콤한 녹차를 마시며 나는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과 영원히 머물고 싶은 갈망 사이에서 휘청였다. 아주 오래 잊고 있던 마음이, 억지로 눌러넣어 있는지조차 몰랐던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분노처럼, 혹은 설움처럼.
나는 너를 부러워 하는 걸까, 질투하는 걸까. 너를 좋아하는 걸까, 미워하는 걸까. 취향을 갖는 것이 곧 죄악이었던 나와 달리 자신만의 취향을 잔뜩 가지라는 다정한 응원을 받고 살아온 너. 그런 너를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단 하나 분명한 욕망은, 나는 네가 되고 싶었다. 가질 수 있다면 갖고 싶었다. 누가 뭐라든 어떻게 보든 상관 않는 너의 단단함을. 나는 이게 좋아 저건 싫어 라고 말할 수 있는 너의 오만함을. 원하는 것을 골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너의 삶을.
부풀어오른 욕망이 내안을 가득 채워 욕심껏 불어댄 풍선마냥 끝내 터져버릴 것 같던 어느 밤, 나는 얄팍한 이부자리에 누워 담요를 끌어안고 고열에 시달리며 신음처럼 기도했다. 한번만 원하는 대로 하면 안될까요, 한번만 바라는 대로 살면 안될까요, 비루한 내 인생에서, 한번만이라도. 밤을 새운 기도가 끝자락에 다다랐을 무렵 커튼조차 걸려있지 않은 살풍경한 창으로 희붐하니 새벽이 찾아들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창가에 기대어 푸르스름한 하늘을 올려다보자, 아직 새벽빛에 밀려나지 않은 별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붉게 반짝였다. 문득 네 왼손 약지 손톱 위에 늘 반짝이던 빨간 별이 떠올랐다. 저것은 계시인가. 잔열감에 먹먹한 머리로 생각했다. 그래, 계시일 거야. 나에게 너를 허락한다는.
너를 떠올리며 옷을 고르고 너의 방을 곱씹으며 방을 채웠다. 시작은 깅엄 체크치마. 양쪽 색이 다른 양말. 네가 즐겨신는 메리제인 로퍼와 꼭 닮은 플랫슈즈. 손뜨개 공방에서 발견한 뜨개조끼는 생각보다 많이 비쌌지만 눈을 질끈 감고 값을 치렀다. 앉은뱅이책상을 치워버리고 고풍스러운 나무탁자를 들였다. 네가 묘사한 할머니의 그릇장 같은 수납장도 샀다. 석달치 알바비가 고스란히 사라졌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 의지로 고른 사물들에 둘러싸여 마냥 행복했다. 아무 의견이 없었기에 그저 기르기만 하던 머리카락도 싹뚝 잘랐다. 너처럼 짧은 단발머리는 의외로 내게 어울렸다. 다시금 거울에 비춰본 나는 더 이상 밋밋하지 않았고 너와 꽤나 닮아있었다. 마지막으로 손톱을 다듬고 정성 들여 색을 칠한 뒤 꼭 그 자리, 있어야 할 곳에 빨간 별을 그렸다. 운명의 연인과 붉은 실로 연결되면 이런 기분이려나. 괜스레 웃음이 났다.
시작은 너였지만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생겨났다. 단순히 너를 따라하는 데서 그쳤다면 표절에 불과했겠지. 하지만 너를 기초로 쌓은 나의 성은 조금씩 너와 닮은 듯 다른 색채를 띄었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미묘한 차이었으나ㅡ그래서 나를 너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생겼지만 그 오해를 굳이 바로잡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착각은 그들의 잘못이지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기에 ㅡ 너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라고 부를 만한 취향들이 조금씩 태동할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희열에 뱃속이 간질거렸다. 사진첩에 차곡차곡 쌓이는 나의 취향들이 못내 사랑스러웠다.
네가 고마웠다. 내게 취향을 알려줘서. 자신의 취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줘서. 덕분에 나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마음껏 누렸고, 너라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를 꼼꼼하게 알아갔다. 스스로에게 온전히 몰두하며 온통 회색조였던 생활에 색을 더해갔다. 내가 색채를 가지니 나를 둘러싼 풍경도 다채로워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내 존재를 인지한다는 것이 이토록 자극적이고 황홀할 줄이야. 그들이 나를 누구로 착각하든 상관없이, 그저 쏟아지는 관심에 벅차다못해 혼미했다. 네가 살아온 세상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이렇게나 생동감 넘치고 반짝이는 세계였구나.
고이 쌓아둔 사진 중 하나를 고심 끝에 골라 처음 피드를 올린 날, 너는 기다렸다는 듯 디엠을 보내왔다.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많을 텐데 너는 그저 왜 연락이 되지 않는지 언제 만날 수 있는지만을 물었다. 파란색 대화풍선 밑으로 꼭 깨물고 있을 네 입술이 보였다. 내가 왜 너를 피하는지 궁금하겠지. 너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때는 너의 모든 것에 열광하는 나를 순진한 어린아이 보듯 바라보았는데. 지금의 나는 네게 어떤 존재일까. 네게 고마워하는 나의 마음을 알까.
아직은 이르다. 매순간 너를 생각하며 너를 바탕으로 나를 빚어올리고 있는 이 과정이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너에게서 시작한 나는, 너를 초월하여 내가 되어야 한다.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작으로 너를 만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에는 너도 나를 이해해줄 것이다.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의 전부로 나를 일깨운 너였으니까 이런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확신은 나만의 것이었던가. 우연히 만난 네 친구에게서 네가 괴로워한다는 얘기를 듣고 당황했다가 곧 화가 치밀었다. 기꺼이 네 취향을 내게 베풀었던 너였지 않던가. 나는 네가 가진 것의 가치를 알지만 네 주변의 사람들은 모른다. 그들은 너를 아끼는 척하지만 뒤돌아서서 비웃는다. 내게 이야기를 전한 그 윤이라는 친구도 그렇다. 내가 미처 몰랐다며 미안해하자 윤은 짐짓 너그러움을 가장하며 말했다. 솔직히 네가 좀 '유난'하긴 하다고.
과연 너는 알기나 할까. 여태껏 너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의지해왔음을. 심지어 그들은 너와 나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 그들이 너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너를 둘러싼 몰이해와 위선의 장벽, 그게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그안에 틀어박힌 무지한 너. 그런 너를 생각하자 새삼 코끝이 시려왔다.
따스하고 다정한 것은 그래서 안 된다. 따스하고 다정한 것은 사람을 나약하고 멍청하게 만든다, 너처럼.
그러니 이제 내가 너를 가엾게 여긴데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디엠창을 열고 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쩌면 너를 구원할 마지막 동아줄이 될 메시지를.
[우리, 만날까?]
답신을 기다리며 녹차를 진하게 우리고 꿀을 넣어 휘저었다. 그리고 너를 맛보듯, 혀끝을 감싸는 달큰하고 쌉싸래한 액체를 오래도록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