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도둑 (1)

by rutaro

-너 오늘 점심때 중앙도서관에 갔었어?

윤이 연청색 접시 위에 놓인 크래커를 집어 들며 물었다. 노란색이 선명한 체다치즈 디핑소스를 윤 앞에 슬쩍 밀어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제 얘기했잖아, 집에 있을 거라고. 종일 공강이기도 하고 폼폼이가 자꾸 헤어볼을 게워내는 게 심상치 않아서. 얘가 나이가 있다 보니 평소랑 조금만 다르게 굴어도 걱정스럽네.

자기 이야기인 줄 아는지 내 종아리께에 엉덩이를 착 붙이고 식빵 자세로 앉아있던 폼폼이 작게 목을 울렸다. 녀석을 달래며 황갈색 털 속에 손가락을 밀어 넣자 손끝이 금세 따뜻해졌다. 아, 역시 추운 날에는 폼폼이가 최고야.

-그럼 역시 걔였나.

순간 신경이 곤두섰다.

-걔라니, 누구.

-누구겠어, 걔지. 너 베끼는 애.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을까. 윤이 황급히 손을 흔들며 변명하듯 말을 쏟아냈다.

-아니 아까 민철이가 중앙도서관에서 너랑 마주쳤는데 인사도 없이 휑 지나가버렸다길래. 그러면서 자기가 뭐 실수한 거 있냐고 묻더라. 알잖아, 민철이 너한테 마음 있는 거. 물론 너야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젠 아는 척도 안 한더라며 울적해하더라고. 근데 넌 종일 집에 있겠다고 했는데 마주쳤다니 이상하잖아? 아마 민철이가 걔를 너로 착각했나봐.

-그 애를 왜 나로 착각했대?

목소리에 절로 날이 섰다.

-나한테 마음 있다면서 어떻게 걔랑 나를 헷갈렸대?

-그게...

생각보다 예민한 반응에 당황했는지 윤이 한동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 걔가 '네' 뜨개 모자를 쓰고 있었대. 그 모자 있잖아, 눈 위까지 푹 눌러쓰는 거. 체리 자수 들어간 손뜨개 모자.

'내' 모자라고?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속이 울렁거리고 욕지기가 났다.

그 미친 아이는 대체 왜, 언제까지, 얼마만큼 나를 훔칠 셈인 걸까.




나는 취향이 남다른 편이다. 직접 만든 뜨개옷을 좋아하고 오래된 물건과 예스런 디자인을 좋아한다. 1인용 밥솥 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화가 프린팅 된 순면행주를 덮어놓고, 법랑 주전자에 안개꽃을 가득 꽂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종종 풍덩한 체크 치마를 입고 왼쪽은 보라색, 오른쪽은 노란색 양말을 신는다. 어디를 가나 누구에게든 개성이 강하다는 말을 듣고, 평도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남들 눈에는 이상해 보이더라도 내 눈에 예쁘면 그만이다. 그러니 그게 '취향' 아니겠는가.

내 취향의 팔 할은 할머니에게서 왔다. 할머니는 정갈하고 깔끔하며 단아한 분으로 특히 손뜨개 실력이 대단하셨다. 엄마 없는 아이였던 내가 엄마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위화감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까닭도 그 분의 고집스런 단정함 덕분이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뜨개옷을 입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신기해했고 친구 엄마들은 감탄했다. 그들의 시선에 나는 수줍으면서도 우쭐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선사하는 은밀한 고양감. 그 느낌에 두둥실 안겨서 나는 애동이 방울을 잡듯 자연스레 대바늘을 쥐었다. 좋은 스승을 곁에 두었으니 나이에 비해 월등한 뜨개질 실력을 갖게 되는 것은 순리였고, 그게 또 다시 나만의 특징이 되어 또래와는 조금 다른 취향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당연한 귀결이었다.

매일 아침 따뜻한 물에 작은 수저 하나만큼 꿀을 타주시며 오늘도 달큰한 하루가 되라고 속삭이셨던 할머니. 코바늘로 섬세하게 뜬 레이스 보로 시집올 때 해오신 나무그릇장을 덮어두셨던 할머니. 없는 살림이었지만 언제나 조팝꽃이며 산수국 따위를 풍성하게 담은 델몬트병을 나무그릇장 위에 올려두셨던 할머니. 할머니의 기억과 취향은 내 삶 곳곳에 진한 발자국을 남기며 차곡차곡 쌓였고, 낱낱의 퍼즐 조각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듯 '나'라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아이의 관심이 신기함 때문인 줄 알았다. 그래서 종종 나가는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난 그 아이가 나를 무례할 정도로 뚫어지게 바라봐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원체 내 차림새가 눈에 띄니까, 친구들도 친해지기 전까지는 나를 신기하게 봤으니까, 그 정도겠거니 했다. 그래서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그 아이의 말에 이런 인연이 있냐며 순진하게 기뻐했다. 언제 한번 만나 밥 먹자는 이야기도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했다.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쳐 함께 차를 마셨던 날, 뜨거운 녹차를 주문해 항상 가지고 다니는 꿀을 타는 나를 보고 눈을 반짝이며 '나도 그렇게 마셔볼래'라고 했을 때도 그저 귀엽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닌 소지품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피면서 정말 독특하고 예쁘고 개성 있다며 열성적으로 칭찬해 줄 때는 고마움과 약간의 우월함마저 느꼈다. 그리고 내심 '얘, 꽤 괜찮은 아이네'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 아이는 내 생활에 조금씩 발을 들이밀었다. 아주 신중하고 느릿한 침입이었다. 천천히 스며들었지만 주위와 섞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친구들은 그런 아이가 있다는 정도만 알 뿐, 그 이상은 알지 못했다. 대체적으로 그 아이에 대한 친구들의 평은 '흐릿하다'였다. 누구 만난다고? 아 걔. 근데 나는 걔 얼굴이 선뜻 안 떠오르더라. 너랑 같이 있지 않으면 지나다 마주쳐도 모를 것 같아.

나는 그 아이가 굳이 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 아이 역시 나와 만나는 것외에 다른 만남은 바라지 않는 듯했다. 일주일에 적게는 한 번 많게는 두어 번씩 만날 때마다 그 아이는 오롯이 나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내가 걸친 것, 지닌 것, 즐기는 것, 좋아하는 것 혹은 싫어하는 것, 마치 지문과 같은 나만의 고유한 특징들을 알고 싶어했다. 타인의 영혼이 온전히 내게 기울었던, 간지럽고 생경하며 달콤한 그 순간들.

그때 왜 나는 그것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상황이 변한 것은 그 아이를 알게 된 지 석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 어제 중도 앞에서 걔 봤어.

윤이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덧붙였다.

-어쩐지 느낌이 좀 다르더라. 스타일을 바꿔서 그런가? 머리카락도 싹둑 잘랐대, 너처럼.

나는 층 없이 일자로 자른 단발머리끝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졌다. 수년째 짧은 단발을 고수하는 나와 달리 그 아이는 긴 생머리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분명히 '그 머리 가벼워 보인다, 근데 난 안 어울릴 것 같아'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윤이 잠시 뜸을 들였다.

-묘하게 너 같았어.

-나 같다는 게 무슨 말이야?

윤은 즉답을 피하고 되려 내게 물었다.

-요즘 걔 안 만났어? 자주 보는 것 같더니.

-한 2주 못 본 것 같은데...

집중하고 싶은 과제가 생겼다며 한동안 못 만날 것 같다고 한 것은 그 아이였다. 나 같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다시 묻자 윤은 턱짓으로 내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그 아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라는 뜻이었다.

계정만 만들어놨을 뿐 평소 잘 들여다보지 않는 인스타그램의 팔로우 목록을 열고 그 아이를 찾았다. 스크롤을 두어 번 내린 끝에 겨우 찾은 그 아이의 피드는 텅 비어있었다. 뭘 보라는 거냐고 윤에게 물으려는 찰나, 문득 그 아이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에는 나와 같은 단발머리에 내 것과 비슷한 뜨개조끼, 내 취향의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그 아이가 티 없이 환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당황스러운 일들이 연달아 사슬 뜨기처럼 이어졌다. 목덜미를 따갑게 찌르는 기성복 티셔츠 라벨처럼 신경 쓰이는 일들이었다. 시작은 어디 어디서 나를 봤다는 지인의 연락이었다. 지인의 지인이 나와 마주쳤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아이의 기묘하게 반짝이던 눈동자가 떠오르며 등줄기에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가듯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뭔가 착오가 있겠거니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평소 친분 없던 선배가 갑자기 다가와 체리 모양 손뜨개 키링을 흔들어보이며, 덕분에 잘 쓰고 있다며 살갑게 인사했을 때는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전부 내가 가지 않은 곳, 마주친 적 없는 사람들, 준 적 없는 선물이었다.

그 아이가 나를 흉내 내고 있었다. 내 취향대로 차려입고, 내 취향의 취미를 즐기며, 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얼마든 착각할 정도로 나처럼 굴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불쾌했다. 강탈당한 기분이었다. 무엇을, 이라고 물으면 확실히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소중한 것을 빼앗긴 듯한 상실감에 몸속 깊은 곳이 떨렸다.

그 애에게 연락했다. 받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으로 디엠을 보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냥 언제 볼 수 있냐고 썼다. 읽긴 하는데 답은 없었다. 철저한 침묵이었다. 손톱 끝을 까득 깨물며 아무 변화 없는 디엠 창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새 글 알림이 떴다. 그 아이의 피드에 올라온 첫 게시물이었다. 새털구름이 흩어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손만 찍은 사진이었다. 손톱을 짧게 다듬고 연분홍색 폴리쉬를 바른 하얀 손. 왼손 약지 손톱 귀퉁이에 그려진 빨간 별이 선명했다. 나는 방금까지 깨물고 있던 손을 입에서 떼어 멍하니 바라봤다. 내 왼손 약지 손톱,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빨간 별이 선연히 빛나고 있었다.




그날부터 기묘한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실체가 있어야 묻든 따지든 할 텐데 사방팔방 출몰한다는 그 아이가 정작 내 눈앞에만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디엠창은 온통 언제 만날 수 있냐, 왜 연락이 안 되냐, 할 말이 있다는 나의 일방적 독백으로 채워졌다. 침묵이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 아이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닿으려는 나의 모든 시도를 완벽히 무시한 채 보란 듯 차곡차곡 피드를 채워갔다. 깅엄체크무늬 플레어스커트. 한쪽은 분홍색 한쪽은 초록색의 긴 양말로 감싸인 곧은 다리. 코뜨개로 뜬 티 코스터와 세월감이 느껴지는 도자기 머그. 법랑 화병에 풍성히 담긴 냉이초 다발. 내 것 같지만 완벽히 내 것은 아닌 취향들. 나는 그 아이의 피드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기계적으로 화면을 아래로 당겼다 놓았고, 새로운 사진이 뜨면 허겁지겁 두 손가락으로 잡아 크게 늘렸다.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박탈감과 분노에 휩싸였다.

갈수록 곤두서고 예민하게 구는 나를, 처음에는 친구들도 이해하고 편들어주었다. 진짜 미친년 아니냐며, 소름 돋는다며,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가만 두지 않겠다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목구멍을 치밀고 올라오는 울음을 꾹꾹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가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슨 활개를 치고 다니든 내 곁에 있는 내 사람들만 나를 나로 인정해 준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모방밖에 할 줄 모르는 그 아이가 잠시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탄탄하다고 믿었던 매듭들이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피드에 올라온 사진을 확대해서 구석에 작게 찍힌 쿠션과 내 테이블 위 러너의 문양을 비교하는 나에게, 그런 무늬는 원래 다 비슷해 보인다며 한 마디하고 무심히 고개를 돌리는 옆모습. 지나다 멀찍이서 그 애를 봤는데 그 정도면 도플갱어라며, 마주치면 둘 중 하나가 죽을까 봐 목숨 걸고 피해 다니는 게 분명하다는 말에 와그르르 터지는 웃음. '네가 예뻐보여 따라하는 거겠지, 그래도 그 스타일 소화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따위의 속 모르는 위로들. 나에게 그 아이의 존재는 일상의 위협인데 내 사람들에게 그 애는 어느새 그냥 이상한 애, 가엾은 애, 못지않게 특이한 애가 되어 있었다. 단단한 땅인 줄 알고 딛고 서있던 발 밑의 모래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느낌. 갈수록 불안이 몸집을 키워가며 보이지 않게 나를 잠식했다.

그리고 기어코 오늘, 나를 잘 안다는 사람이 그 아이와 나를 착각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의 착각과 나를 잘 아는 사람의 착각은, 현상은 같아도 본질이 달랐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이 허무하리만큼 쉽게 복제되었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은 날선 가위가 되어 공들여 직조해 둔 내 생활의 코를 사정없이 잘라냈다. 속절없이 풀려버리는 편물, 어디를 어떻게 손대야 할지 감도 오지 않을 만큼 엉클어진 실뭉치. 흡사 배신감과도 같은 절망에 사로잡힌 나는 손을 파르르 떨며 윤에게 퍼부었다.


본게내모자맞대?어떻게같은거라고단언하는거야?민철이그자식은대체나를얼마나잘안다고모자만보고그게나라고확신했대?그건세상에하나뿐인모자야.만들어파는것따위가아니라고.설령그년이따라만든다고해도그게바로'그'모자가되지는않아.비슷한모자를썼다고그년을나로착각한다는게말이돼?걔는복제품이야,가짜라고!그따위것을어떻게나와헷갈릴수있어?


마지막은 거의 비명이었다. 목구멍에서 비릿한 쇠맛이 느껴졌다. 정적이 내려앉은 공간 위로 거친 내 숨소리만 떠다녔다. 윤은 아무 말도 않고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어이없어하는 듯도, 짜증이 난 듯도 했다. 차 한 잔 마실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윤이 툭 내뱉었다.

-.. 야, 너 눈에 실핏줄 터졌어.

그리고는 느릿하게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너 힘든 것도 잘 알겠고 민철이 자식이 심하게 눈썰미 없는 것도 맞는데, 이쯤 되면 너도 생각을 달리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걔가 잘했다는 건 아니야. 그렇다고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잖아. 너 갈수록 피해자처럼 구는 거, 좀 걱정 돼. 사실 나 어제 걔 만나서 얘기해 봤거든? 대체 왜 그러냐고. 너 때문에 내 친구가 심각하게 스트레스받고 있다고. 그랬더니 걔가 뭐라는 줄 알아? 네가 그 정도로 싫어할 줄 몰랐대, 너무 미안하대. 자기는 그냥 너를 동경해서 그랬대. 뭐라더라, 너의 '라이프 스타일'이 딱 자기가 찾던 그거라나. 하지만 자기는 센스도 미적 감각도 없어서 무작정 너를 따라한 거래. 어쩐지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자기를 아는 체하더라며 난처하게 웃더라. 어쨌든 적당히 좀 하라고 말해뒀으니 이제 그쪽은 좀 조심하겠지만, 내가 볼 때 당장은 네가 더 문제야. 네 취향? 그래, 특이하고 남다르지. 자랑스러워할 만해. 근데 그게 네 전유물은 아니잖아? 뭐, 남들은 네가 가진 거 가지면 안 되니? 네 것이 예쁘고 좋아 보여서 따라 하면 안 돼? 마음 좀 넓게 쓰자, 유진아. 얘기해 보니까 아주 이상한 애도 아니더라. 정신세계가 특이하고 어딘가 좀 비어있는 것 같긴 해도. 나 간다. 내일 연락해.

아니, 그게 아니다. 윤은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단순히 따라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본질은 그게 아니다. 눈앞에 스르륵, 왼손 약지 손톱의 빨간 별이 떠올랐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예전부터 버릇처럼 그렸던, 오롯이 내 것인 나의 별. 나는 손바닥에 피가 맺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윤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 질렀다.


걔는 나를 따라 하는 게 아니야, 나를 훔치고 있다고!


윤이 멈칫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그 표정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동정이었다.

-... 연락할게.

문이 굳게 닫혔다. 나는 지박령처럼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보라색 양말 끝단의 올이 성기게 늘어져, 발가락이 흐릿하게 비쳐 보였다.

불현듯 깨달았다. 이대로 있으면 나는 사라질 것이다. 그 애한테 먹혀버릴 것이다.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사라지기 전에, 먹혀버리기 전에.

띠링. 기다렸다는 듯 알림이 울렸다. 뻣뻣한 손가락을 간신히 움직여 스마트폰의 화면을 열었다.

[우리, 만날까?]

그 애가 보낸 디엠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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