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 사각, 벌레 먹는 소리가 들린다. 나의 귀에 들리는 그 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하고 은밀하다. 벌레는 나의 온 몸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을 갉아먹고, 된똥을 싸지른다. 벌레의 똥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점 더 구차하고 비겁하며 더러운 인간이 되어간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한때 당신은 나에게 전부였다. 목숨이었고, 세상이었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처음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알게 해준 것도 당신이었다. 내가 당신에게 느끼는 넘치는 감정에 사랑이라는 흔한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아까울 만큼, 그래, 나는 당신을 사랑했었다. 아니,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제 말라붙었다. 향해야 할 대상을 잃었다. 당신이, 내게서, 고개를 돌린 이후로.
당신은 온화한 사람이었다. 유달리 속눈썹이 길고 손가락이 가느다란 사람이었다. 시를 좋아하고 노래를 잘 부르던 사람이었다. 당신이 시를 읊고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당신의 기묘하게 말라든 다리쯤은 아무 문제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다 일어나 걸을 때마다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는 당신의 어깨를 보고 누군가는 우습다 여겼을 테고 누군가는 가엾다 여겼겠지만 나에게는 그것마저도 두근거림이었다. 춤추듯 흔들리는 당신 곁에서 나도 정신을 잃을 때까지 춤추고 싶었다. 그때 당신은 내가 당신을 돕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도움을 받은 것은 나였다. 있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아버지와 없는 게 차라리 도움이 되는 어머니 사이에서 절망적으로 흔들리며 서글픈 이십 대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당신은 세상 유일의 도움이었다.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간 봉사 동아리, 그곳에서 다달이 봉사활동을 나가는 장애우 쉼터, 거기서 나는 당신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그저 수줍음을 잘 타는 한 사람의 대상자에 불과했다. 내가 도와주어야 할 대상자. 나는 마더 테레사도, 나이팅게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돕는 손길에는 싸구려 동정과 치졸한 오만함이 묻어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나를 넓게 품어주었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주었고, 마음을 담아 웃어주었다. 따뜻했다. 웃을 때마다 초승달로 변하는 당신의 눈을 보면서 얼어붙어있던 마음 끝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한 달에 한번,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 어느새 빛나기 시작했다. 강의실에 앉아서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도, 서늘한 냉기에 잠식당한 집안에 내키지 않는 걸음을 들여놓으면서도, 나는 당신의 휠체어를 밀며 함께 산책할 그 순간을 기다렸다. 당신은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아리 봉사 때는 당신 곁에만 붙어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 당신을 찾아갔다. 한 달에 한 번 걷던 길을 한 달에 두 번,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매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당신은 내 삶의 이유가 되었다.
그래, 당신은 내 삶의 이유였다. 그랬기에 나는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렸다. 당신 곁에 있을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학교를 포기했고, 친구가 당신과 더 이상 만나지 말기를 종용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버렸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사는 데 지친 어머니는 내가 무얼 하고 돌아다니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내게 관심이 없는 부모에게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자유롭게, 마음껏 당신을 사랑했다. 그리고 당연히 당신도 나를 사랑하리라 믿었다. 나의 사랑이 당신에게는 행운이자 축복이리라 믿었다. 아니, 나의 사랑은 당신에게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우리의 미래를 꿈꿨다. 나의 꿈속에서 당신은 꽃으로 치장된 휠체어에 앉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행복의 시를 노래했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오로지 나와 당신만이 존재했다. 그곳에 타인은 감히 존재할 수조차 없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녀는 내가 당신을 알기 훨씬 전부터 당신을 알았다. 그녀와 당신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녀와 당신은 눈높이가 같았다. 당신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말라붙었고, 그녀는 사고로 척추가 마비됐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당신은 편지로, 이메일로, 문자로, 전화로 서로를 깊이 이해했다. 하지만 만난 적은 없었다. 상대의 현실을 눈으로 봄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처절하게 깨닫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내게 그녀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녀가 이야기 속의 인물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에게 너그러웠다. 나와 만나기 전까지 당신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마움을 느꼈다. 당신이 그녀와 만나보겠다며 나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흔쾌히 알겠다고 한 것도 고마워서였다. 게다가 그녀는 내게 아무런 위협도 될 수 없었다. 그랬어야 했다.
그녀를 떠올리니 벌레 먹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당신과 그녀가 처음 만났던 날부터 시작된 이 소리, 당신과 그녀의 눈길이 애잔한 빛을 띠고 엉키는 것을 봤던 때부터 들려온 이 소리. 사각사각, 사각사각. 불길하고 불온한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너무 크고 시끄러워서 나를 향한 당신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당신은 이미 내게 다정하게 말하기를 그쳤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이 소리 때문에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라 믿는다.
당신이 그녀와 만나는 자리에는 나도 항상 함께 했다. 당신이 머무는 작은 방과 그녀가 사는 동네 중간쯤에 자리한 카페가 우리 세 사람의 밀회 장소였다. 당신은 그녀에게 나를 고마운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 소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선뜻 연인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의 마음을 생각해서였다. 당신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에도 내 손 한 번 잡지 못하고 내 어깨 한 번 안지 못하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내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에서 나는 충분히 당신의 사랑을 느꼈기에, 내가 당신의 연인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고 마른 사람이었다. 커다란 휠체어에 푹 파묻힌 모습이 유모차에 탄 어린 아이 같았다. 그런 주제에, 눈빛은 맑고 깊었다. 그 맑고 깊은 눈빛으로 나를 향해 웃어 보이고,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당신과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들처럼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아주 오랫동안 나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당신 곁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호록호록, 차갑게 식을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마셨다. 그 사이 간간이 당신은 나에게 미안한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녀는 나에게 고마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미소였다. 당신과 그녀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나는 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과 그녀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가만히 끄덕일 때, 그녀가 당신의 말에 웃음을 터뜨릴 때, 당신이 나의 눈을 피해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손가락을 슬쩍 매만질 때. 그럴 때마다 내 속에서는 벌레 먹는 소리가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미친 듯이 들려왔다. 하지만 역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내가 아닌 그녀를 사랑할 리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감히 나를 제치고 당신의 연인이 될 리 없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나 없이 그녀를 만나기 시작한 당신을, 나의 어깨 대신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은 당신을, 내가 아닌 그녀에게 입맞춤하는 당신을. 당신과 연락이 되지 않던 어느 밤, 무작정 찾아간 작은 방 앞에서 나는 당신의 휠체어와 그녀의 휠체어가 몸을 반으로 접은 채 서로 엉켜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한 당신의 작은 방에 당신은 그녀를 들이고 대체 무엇을 했을까. 그 밤,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차갑고 서늘한 기운에 내가 바들바들 떨며 서 있는 동안 당신과 그녀는 따뜻했을까. 행복했을까. 그 밤, 벌레 먹는 소리가 나의 귀를 멀게 만들고 벌레가 싸지른 똥이 나의 눈을 가리운 것을, 당신은 알았을까.
결국은 당신의 탓이다. 당신을 만난 날, 당신을 사랑하게 된 그 순간부터 이 벌레는 내 안에서 알을 까고 슬금슬금 자라기 시작했다. 그나마 얌전하던 벌레를 미쳐 날뛰게 하고, 그것이 이리저리 후비며 나를 파먹게 한 것도 당신이다. 그러니 벌레 먹는 소리에 귀가 먹고 벌레가 싸지른 똥에 눈이 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던 그 역시 당신의 책임일 것이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내가 어디로 향해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지금 내가 그녀를 찾아가는 이유도 모르겠다. 찾아가서 어쩌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만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이건 내가 하는 생각일까, 벌레가 하는 생각일까. 사각사각, 벌레 먹는 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