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어요.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가는 섬광 같은 거였죠. 석가모니가 보리수 밑에서 해탈의 깨달음을 얻은 찰나,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직감한 순간 같은 거요. 알고 보면 위대한 발견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게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던가요.
처음에는 나 자신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그렇잖아요. 남들하고 똑같이 먹고, 자고, 싸고, 뭐 그랬으니까 나도 남들하고 똑같겠거니 하고 살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전혀 아니었어요! 전혀 달랐던 거죠. 그걸 깨닫고 나니까 그동안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어요.
네? 언제부터 자신을 ‘투명인간’라고 생각했느냐고요? 아니, 아니죠. ‘생각’한 게 아니라 ‘깨달았’다니까요. 이상하다는 것을 처음 눈치 챈 건 일고여덟 살 때쯤이었어요. 아마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을 거예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서 차가운 마룻바닥에 온종일 누워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날도 끈적끈적해진 팔뚝을 마룻바닥에 붙였다 뗐다 하면서 배를 깔고 엎드려 만화책을 봤어요. 어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던 거 같고, 여동생은 곁에서 마루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어요. 오래 되어서 머리카락이 뭉텅 빠진, 좀 흉물스러운 인형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여동생은 아주 좋아했어요. 그것 외에는 달리 가지고 놀 게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때 아버지는 방안에 누워계셨는데 어느 순간 거실로 나오셨어요. 휘적휘적, 지금 생각하면 걸음걸이가 좀 이상했던 거 같기도 해요. 술을 잘 드시던 분이 아니었으니까 취한 것은 아닐 테고,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가 왜 그렇게 걸었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거실로 나온 아버지는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나와 여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셨어요. 나는 만화책을 보면서도 곁눈으로는 힐끔힐끔 아버지 눈치를 봤지요. 방학숙제는 어쩌고 만화책만 보느냐고, 언제 호통이 날아올지 몰라 불안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기만 했어요. 사실 우리 남매를 보고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아요. 아니면, 여동생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고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지가 갑자기 앉은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여동생을 끌어당기더니 품에 꼭 끌어안았어요. 평소엔 머리도 잘 쓸어주지 않던 아버지였으니까, 여동생은 당연히 어색해서 몸을 배배 꼬았지요. 그래도 아랑곳 않고 꼭 안고 있더니, 한참 만에 놓아줬어요.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내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아버지가 죽었다는 건 그날 저녁에 알았어요. 집에서 나간 그 길로 뒷산으로 올라가 나무에 목을 매었대요. 워낙 날씨가 더운지라, 늦게 발견되면 영 보기 싫은 꼴이 될까 염려했던지 마을사람들이 더위 피하러 자주 가는 약수터 근처에서 그랬대요. 참 치밀한 양반이지요.
아버지가 죽고 나니 그럼 그때 여동생을 꼭 껴안았던 건 작별인사이기라도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좀 이상하더라고요. 왜 나는 안아주지 않았을까, 왜 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까 하고. 혹시 그때, 아버지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았던 걸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어머니는 이전보다 몇 배는 더 바빠졌어요. 아버지가 계실 때도 돈을 벌어오는 건 어머니였으니까, 실제로 더 바빠질 이유는 딱히 없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머니가 집에 있는 시간은 확실히 줄어들었어요. 어머니가 밤늦게 돌아오시면 여동생은 어머니의 손을 끌어당기며 칭얼거리거나 떼를 썼지만 나는 안 그랬어요. 그래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아버렸거든요. 여동생이 그 사실을 깨닫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제 중고등학교 때 기록을 찾아보셨다고요? 우와, 생각보다 열심이신 걸요. 하지만 죄송해서 어쩌죠, 아마 별 게 없었을 텐데. 역시, 그렇죠? 그래서 말했잖아요. 전 ‘투명인간’이라고. 왜, 반에 한둘 쯤 그런 애들이 있잖아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혹은 이름은 알겠는데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던가, 얼굴은 어렴풋이 알겠는데 이름을 모르겠다던가 하는. 물론 그런 애들 모두가 투명인간인 것은 아니지만 한두 명은 분명히 투명인간이에요. 장담해요. 내가 그랬으니까, 잘 알아요.
하지만 그때는 나도 내가 투명인간이라는 걸 모를 때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주 많았어요. 체육 시간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려고 두 명씩 짝을 지으면 꼭 나 하나만 남는다던지, 수학여행 가다가 들린 휴게소에서 버스에 내가 타지 않았는데도 전원이 다 온줄 알고는 출발한다던지. 아, 물론 머릿수를 세어본 선생님이 다급하게 버스를 세워줘서 수학여행은 잘 다녀왔지만요. 희한한 건 뒤에 남겨진 내가 혼자 우두커니 서있으면 반 애들이고 선생님이고 마치 유령이라도 본 양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아, 너도 있었지? 하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반 아이들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어요. 같이 축구도 하고, 점심도 먹고, 교과서를 빌려준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선생님이든 애들이든, 돌아서면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렸어요.
외로웠냐고요? 글쎄요. 뭐가 외로운 건지 잘 모르겠어요. 외롭다는 걸 알려면 먼저 외롭지 않은 게 뭔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난 항상 그랬거든요.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좀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참신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으면 참 답답해요.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뭔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새롭고 좋은 표현이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머릿속의 단어들을 이리저리 뒤섞다보면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려요. 내가 제대로 된 글을 끝까지 쓰지 못했던 이유도 아마 이 울렁증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아, 네, 맞아요. 글을 썼었어요. 쓰고 싶었던 건 소설인데, 끼적여놓은 걸 보면 항상 잡문이었죠. 시작은 좋은데 끝이 흐지부지한, 그야말로 용두사미 같은 글을 많이 썼어요. 용두사미, 이것도 무지하게 상투적이다. 그죠?
그녀를 만난 것도 글을 쓰는 동호회 모임에서였어요. 방에 혼자 틀어박혀 썼다 지우고, 또 썼다 또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너무 갑갑하고 답답해서, 숨통이라도 틔워볼까 싶어 나간 자리였지요. 모인 이들은 모두 아마추어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고집스럽고 자기주장 강한 사람들이었어요. 글 다루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그래요. 하루에도 몇 번씩 자만심과 자기비하 사이를 오가고, 쓸 수 있다와 쓸 수 없다 사이를 정신없이 맴돌다가, 결국은 미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성을 쌓지요. 그렇게 성을 구축하고 그 안에 틀어박힌 옹고집 성주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분위기가 어땠겠어요.
그런데 그녀는 달랐어요. 미치지 않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성을 쌓아올린 우리들과 달리 그녀는 태생부터가 여왕이었지요. 우아하고, 고고하고, 자신감이 넘쳤어요. 자기 삶의 이유를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그녀에게는 있었어요. 그런 그녀가 왜 이 모임에, 라고 의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녀는 말이 많지 않았어요. 자기 이름 석 자 소개하고, 글 쓴지는 몇 해쯤 됐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정도.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동안에는 다들 숨을 죽인 채 뚫어져라 그녀의 입술만 바라봤어요. 한 마디 한 마디가 놓쳐서는 안 될 비밀의 지령 같았거든요.
모임은 한 달에 두 번,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써서 만날 때마다 공유하는 식으로 진행됐어요. 우리가 서로의 내밀한 속살 같은 글들을 마주보며 부끄러워하거나 어떻게든 보기 좋게 포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그녀는 마치 이방인처럼 우리를 쳐다봤지요. 그럴 때의 그녀는 노회한 노파 같기도, 천진난만한 소녀 같기도 했어요.
그렇게 몇 달쯤 지났을까. 여느 때처럼 모임이 끝나고 나오는데, 그녀가 조용히 다가와 내 소매 끝을 잡아끌었어요. 당연히 나는 심장이 멎을 듯 놀랐지요. 그 몇 달 간, 그녀와 말 한 마디 해본 적 없었거든요. 그녀는 내게 차 한 잔 하자 했어요. 내가 궁금하다면서. 나에 대해 궁금해 하다니, 믿어지세요? 대체 그녀 같은 사람이 나에게 궁금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휘적휘적, 간신히 헛발을 짚지 않고 그녀를 따라 들어간 찻집 안, 그녀와 마주 앉아서, 그녀의 눈을 흘낏흘낏 바라보며, 나는 나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처음이었어요. 나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도. 누군가 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도. 처음이어서 그랬을까요. 요즘 쓰는 글, 지금의 생활,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주절거리다가 훌쩍 찾아와 참치 한 캔을 얻어먹더니 이젠 도통 보이지 않는 길고양이, 잘 빨아도 항상 퀴퀴한 냄새가 가시지 않던 고등학교 때 체육복, 단발머리가 잘 어울렸던 초등학교 시절 짝꿍에 대한 기억도 꺼내놓았어요. 아주 더웠던 그 여름날, 훌쩍 사라져버린 아버지에 대한 기억까지.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그녀는 아이스커피가 담긴 긴 유리잔 표면에 맺힌 이슬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어요. 간간이 미소를 짓거나 눈썹을 찡그리기도 했지요.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말할 거리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을 때, 그녀는 가만히 나의 손을 잡아주었어요. 부드럽고, 축축하고, 차가운 손이었어요.
다음 모임 날,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 다음도, 그 다음 다음도 그랬어요. 이메일 외에는 연락처도 없어서 아무도 그녀가 왜 오지 않는지 몰랐어요.
그녀가 더 이상 오지 않던 때부터 나는 그날의 대화를 수십, 수백 번 곱씹어 생각했어요. 사실 나 혼자 일방적으로 떠들었으니 대화랄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생각했어요. 혹시 그 때문에 오지 않는 걸까, 너무 들떠서 내 이야기만 해서, 그랬던 내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내가 그녀를 다시 본 것은 반 년 뒤, 어느 문예지에서였어요. 신예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라고 소개된 단편소설 옆, 동그라미 안에서 그녀가 웃고 있었지요. 이상한 점은 얼굴은 그녀인데 이름은 그녀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왜 이름이 다른지, 언제 등단을 한 건지 잠깐 궁금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그녀가 너무 반가워서 소설부터 읽었어요. 그 자리에서, 단숨에. 어릴 적 아버지가 자살한 이후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결국 한 여자에게 병적으로 집착한 끝에 여자도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선택한 은둔형 외톨이의 이야기였어요. ‘한 인간이 무너지는 과정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조망한 수작’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짧은 평이, 소설 끝자락에 매달리듯 붙어있었지요.
처음에는 멍하니 서있었어요. 어리둥절해서 말이죠. 길고양이 이야기, 체육복 이야기, 짝꿍 이야기, 동생에게만 작별인사를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왜 그녀의 소설 단락 여기저기에 몸을 구부리고 서로 엉긴 채 들어차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문득, 소설 제목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깨달았지요.
투명인간.
아시겠어요? 결국 같은 이유였어요. 사실은 나를 보지 못했던 거예요. 나는 보이지 않으니까, 보고 있지만 보지 못했어요. 아버지도, 그녀도, 친구도, 선생님도, 어쩌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고, 그녀는 내가 없는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 당신은 나를 보고 있나요? 나를 보고 있다고,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나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어쩌면 당신이 보는 나는 허상일지도 몰라요. 일렁이는 빛이 순간적으로 만들어낸 신기루, 아니면 이미 사라져버린 존재가 남긴 찰나의 그림자일 수도 있고요. 우리 눈에 와 닿는 별빛이, 사실은 벌써 몇 천 년 전에 터져버린 어느 행성의 짧은 단말마인 것처럼.
당신은 정말 내가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