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자격 테스트

by rutaro



아이가 천사라고 대체 누가 그랬던가. 그건 아이를 직접 길러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할 법한 말이다. 지금까지 몸소 체험한 바에 따르면, 아이는 악마다. 천진난만한 작은 악마.


발밑에 눅진하게 눌어붙은 마이쮸를 신경질적으로 떼어내며 정희는 아이를 노려봤다. 벌써 몇 번째인지. 먹다 남은 간식을 아무 데나 던져두지 말라고 분명히 가르쳤는데. 그것도 속에서 치받는 열불을 꾹꾹 억누르며, 입가가 부들부들 떨릴지언정 미소까지 지으며 다정하고 친절한 어투로. 진이야, 먹기 싫으면 종이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아니면 엄마한테 줘. 엄마가 치울게. 평소 정희의 성향대로라면 절대 베풀 수 없는 너그러움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입에서 질겅질겅 씹던 간식이 절반쯤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나머지 절반을 침 뱉듯 뱉어버리기 일쑤였다. 거실 바닥이나 방 한가운데, 심지어 침대 위에도.


어쩌면, 저렇게, 얄미울까. 아이는 그야말로 사람의 아이였다. 아무리 뜯어봐도 어디 한 군데 기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무섭게 노려보는 정희의 눈빛에 잠시 움찔했다가 고개를 모로 돌리며 삐죽 내미는 입술이 영락없는 미운 다섯 살이었다. 게다가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정희와 남편의 신체적 특징을 꼼꼼하게 반영한 덕에 정말 내 자식 같았다. 그런데 내 자식이면 예뻐야 할 텐데, 나를 닮은 내 자식이니까 사랑스러워야 할 텐데. 지금 정희는 눈앞에서 삐죽 대고 있는 아이가 너무 미웠다. 때리고 싶을 만큼.


부모자격 테스트가 시작된 지 이제 한 달째였다. 그전에는 약 육 개월간 아이의 발달 특성과 부모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소양과 교양, 훌륭한 부모란 무엇인가부터 아이를 건강하고 올바르게 양육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부모 되기 이론'을 수능 준비하듯 공부했다.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마침내 실전 테스트를 치르게 된 정희의 집으로 '배달'된 것은 정희와 남편을 반씩 닮은 다섯 살 여자아이. 앞으로 석 달간 정희의 딸이 될 진이었다.


진이는 유난했다. 욕심도 많고 부산스러웠다. 정희가 기대했던 딸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뭐랄까, 좀 더 여자애답고 귀엽고 얌전하고 사랑스럽기를 바랐는데.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어떻게든 진이와 잘 지내보려 애썼다. 부모지침 제1조, '아이가 반드시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닐 수 있다'를 떠올리면서. 아무리 내 속으로 낳은 내 자식이라 해도 엄연히 나와 구별되는 타인이니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강요할 수도,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비난할 수도 없다는 게 골자였다. 그렇지, 맞지. 그런데 테크니컬하게 따지자면 쟤는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좀 미워한다 해도 꼭 내 잘못이라고 할 수만은 없지 않나? 게다가 애가 미운 짓만 골라하잖아? 정희는 눈앞의 진이를 노려보며 자기 합리화를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안돼, 이러다가 또 테스트에 떨어지면 정말 끝이야.

사실 정희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테스트였다. 응시 기회는 총 세 번이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첫 번째는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는 중학생 딸의 머리채를 잡아서, 두 번째는 깨작이며 잘 먹지 않는 아홉 살 딸에게 억지로 밥을 퍼 먹이다가 테스트를 망쳤다. 정희가 '문제행동'을 하는 순간 그녀의 딸들은 생기를 잃고 철퍼덕 바닥에 쓰러졌다. 그 즉시 테스트 종료. 또다시 테스트를 치르기 위해 정희는 꼼짝없이 육 개월 간의 교육과 시험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정말 잘해야 하는데 저 아이는 왜 저렇게 얄미운 짓만 골라하는 걸까. 마치 내가 테스트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정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애당초 나는 왜 이 고생을 하며 엄마가 되려고 애쓰는 거지? 그러자 부연 안개가 낀 듯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 생각만 하면 꼭 이렇게 되어버린다. 내가 왜 엄마가 되려고 했더라...?


엄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희는 흐려진 눈의 초점을 어느새 다가온 아이에게 맞췄다. 엄마, 안아주세요. 진이가 발치에 서서 정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새 또 무슨 사고를 친 것인지 손바닥이 온통 붉고 끈적였다. 정희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말을 그렇게 안 들으면서, 하지 말라는 짓은 골라하면서, 이 아이는 끈질기게 애정을 갈구했다. 안아달라 징징대고 사랑해 달라 울어댔다. 마치 그것이 정희의 당연한 의무라도 되는 양.


순간 머리가 뜨거워졌다.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 왜 당연하게 요구해. 네가 뭔데. 네가 대체 뭔데. 네가 아무리 내 자식이어도 그렇지 대체 네가 뭔데!

정희는 익숙한 분노에 휩쓸려 손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휘둘렀다. 짝! 아이의 작은 머리가 훽 돌아갔다. 짝! 두 번째 손찌검은 참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정희에게 한번 놓쳐버린 이성의 끈을 되잡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넘실대는 분노가 그녀를 삼키고 마침내 아이마저 삼켜버렸는지 진이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정희의 머릿속에 갑자기 낯선 듯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결국 또 못 참았네, 엄마.

이번이 마지막이었는데.

엄마, 이번에는 그래도 좀 참아줄 수 없었어?

겨우 다섯 살이었잖아, 나.


노이즈가 일듯 시야가 잠시 어두워졌다가 서서히 밝아졌다. 정희의 눈앞에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진이의 모습이 두둥실 떠올랐다. 자신을 닮아 조금 통통한 뺨 한쪽에 볼우물이 깊게 파였다가 사라졌다. 진이는 조금 쓸쓸한 표정이었다.

정희는 그제야 떠올렸다. 자신이 왜 부모자격 테스트를 치러야 했는지를. 그리고 지금, 자신이 최종 테스트에 실패했다는 것도.


이제 정희는 진이를 영영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진짜' 진이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겠지. 앞으로 그녀는 이 가상현실에 갇혀, 후회와 절망과 학대를 지겹도록 반복하게 될 터였다.


끊임없이 자신의 신경을 긁는 작은 악마 같은 딸과 함께.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영영토록.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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