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이번 2023년 멜버른 버스킹의 컨셉은 <다이너마이트>였다. 타이틀곡도 BTS의 <Dynamite>이다.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이고, 신이 나면서도, 나 자신의 개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노래를 찾다 보니 이 만한 노래가 또 없었다. 마치 10년 전의 강남스타일과 같은 곡이라고나 할까? (사실, 내적으로는 뉴진스의 <Ditto>를 Bossa nova 풍으로 편곡한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고 싶었다. 더블베이스의 두둥둥 퉁기는 소리는 언제나 나의 마음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10년 만의 멜버른에서의 공연이니만큼 소녀소녀한 분위기보다는 좀 더 신나고 유쾌하고 활기찬 노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가득한, 펑크와 쏘울로 이 도시를 환하게, 빛나게 만들겠다.”는 <다이너마이트>의 노랫가사말처럼 나도 이번 멜버른 공연에서는 최대한 많은 빛들을 사용하고 싶었다. 그래야 노래 제목처럼이나 나의 춤도 <다이너마이트>처럼 빛이 날 테니 말이다.
나의 첫 번째 계획은 축광 페인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상모의 생피지(꼬리 같이 생긴 하얀 종이) 부분에 축광 페인트를 발라 어둠 속에서 연두색 야광빛을 내고자 기획하였다. 그러면 깜깜한 어둠 속에, 오로지 내가 돌리고 있는 상모 만이 형광빛 원을 그리고 있으리라. 그러나 축광 페인트는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두드러진 야광 빛을 내지 못하였다. 물론, 모든 빛이 차단된 밀폐 공간에서는 야광 빛을 영롱하게 발하였다. 하지만, 빛이 조금이라도 있는, 열린 공간에서는 어김없이 야광 빛을 전혀 방출하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축광 페인트를 생피지에 두껍게 바르면, 생피지가 페인트의 물기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거나 엉겨 붙고 말았다. 생피지가 찢어지지 않게 조심히 조심히 잘 말리더라도 여전히 애로사항은 존재하였다. 종이가 이미 페인트의 물기에 한번 울었던 지라, 상모를 돌림에 있어서 생피지가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못하였다. 또한 페인트의 무게에 종이의 움직임도 더디었다. 나 역시 그 미묘한 차이에 적응하는데 제법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하여 생피지에 야광 빛을 입히려는 나의 첫 번째 계획은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멜버른을 빛나게 하기 위한 두 번째 계획은 바로 형광봉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벙거지(모자)와 물채(벙거지와 생피지를 잇는, 낚싯대 모양의 기다란 막대기)에 형광봉을 달아 내가 춤을 추는 동안 나의 머리 위 쪽으로 네온 빛을 밝히게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 밖에 거두지 못하였다. 길이가 대략 1미터는 되는 물채에 케이블 타이로 형광봉을 고정시켰다. 그러자 하늘하늘 움직여야 하는 물채가 본연의 탄력성을 잃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물채에 형광봉을 달려고 하였던 나의 초기 구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벙거지에만큼은 형광봉을 이용하여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꾸몄다. 그것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나는 네온빛으로 빛이 나는 모자를 갖게 된 셈이다.
남은 형광봉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을 하다가 동그랗게 링을 만들어, 소고와 소고채를 대신할 안무 소품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처음에는 링처럼 만들어 양 어깨와 손목, 그리고 발목에 착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춤을 추는 동작에 여간 불편함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DYNAMITE>라는 곡에 맞추어 춤을 출 때만큼은 소고와 소고채 대신에 이 링들을 손에 쥐고 춤을 추는 것으로 연습하였다. 다른 여느 파트보다 <나나나>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후반부의 후렴구 부분이 이 반짝거리는 형광봉의 링들과 정말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멜버른의 거리를 밝힐 세 번째 계획은 휴대용 LED 조명등이었다. 나의 이번 여행을 위하여 <이산엘앤디>의 곰아부지께서 특별히 선물해 주신 바통 모양의 조명등이었는데, 간편한 터치 조작 하나만으로 불빛의 무드와 밝기, 그리고 깜빡임을 조절할 수 있어 너무 편리하였다. <DANCING IN THE MOONLIGHT>에 맞추어 춤을 출 때는 달빛을 닮은 은은한 노란빛으로 설정하여 춤을 추었고, <강남스타일>에 맞추어 춤을 출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모든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싸이키 느낌으로 깜빡이는 조명 모드를 설정하였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굳이 축광 페인트의 야광빛이 없더라도, 형광봉의 네온빛이 없더라도, 휴대용 LED 조명등의 은은한 빛이 없더라도,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밝고 환하게 빛낼 수 있는 방법을! 그리고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른 누가 시키지 않아도, 멜버른에서 스스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을 나의 모습을, 나 자신을! 나는 남들이 빛을 비추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내는 (빛을 내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런 존재이니까!
나는 알고 있다. 멜버른의 스완스톤 스트릿에서만큼은 나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환하게 빛이 나는 다이너마트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나는 약간의 펑크와 소울로 멜버른, 이 도시를 환하게, 빛나게 할 거야. 마치 내가 하나의 다이너마이트가 된 것처럼 아주 강렬하게!
Shining through the city with the little funk and soul, So I'mma light it up like dynamite, wo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