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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Aug 04. 2023

내가 느낀 2023년의 멜버른 버스킹 문화 생태계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의 이야기

버스킹을 하기 위해 스완스톤 스트릿으로 향한다. 10년 전에도 그러했지만, 나는 오늘도 스완스톤 스트릿과 리틀 보크 스트릿의 교차로인 차이나 타운 입구 인근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다. 스완스톤 스트릿은 멜버른 시에서 허가한 버스킹 공연 거리이다.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는 스완스톤 스트릿의 실력파 버스커들을 구경하는 것 역시 이 도시만의 매력 포인트를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스완스톤 스트릿을 천천히 걸으며, 10년 사이에 이곳 멜버른 버스커들의 공연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분위기를 살핀다. 내가 이 도시에서 활동했던 10년 전만 해도 당시에는 제법 생소한 악기에 속했던 핸드팬 연주 공연이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 한국에는 소개되기 전이었던, 기타를 이용한 루프 연주도 유행했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갈 즈음에서야 핸드팬과 기타 루프연주가 한국에서도 소개가 되기 시작하였으니, 아마도 멜버른의 공연 문화가 한국보다 6개월은 유행을 앞서지 않았었나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의 멜버른 버스킹 문화 중 그 어느 무엇보다도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것은 버스킹 공연의 다양성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버스커들이 노래와 춤, 마술과 아크로바틱, 풍선 공예와 초크아트, 악기 연주와 스탠딩 개그, 판토마임, 캐릭커쳐, 인형극 등을 선보였다. 그래서 나에게 버스킹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거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행위가 아닌, 거리 위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예술 행위들을 아우르는 상위 개념으로 인식된다.


음…. 아무쪼록 스완스톤 스트릿을 걸으며 10년 전과 비교하면 거리 위의 버스커도, 행인도 많이 줄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이 수요일, 그러니까 평일의 저녁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날씨가 조금 쌀쌀해서 사람들이 덜 나온 것일까? 그도 아니면 호주를 찾는 관광객 수가 제일 적다는 비수기 7월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 어쩌면 이 도시는 Covid-19의 악영향으로부터 아직까지도 자유롭지 못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엄격했던 멜버른의 락다운 정책(한 달간 지정구역 외 이탈금지 정책)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많은 예술가들을 자신들의 본국으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스완스톤 스트릿을 10분 정도 따라 걸으며, 나는 겨우 세 명의 싱어들만을 만날 수 있었다. 시청 앞에서 기타를 치는 한 백인 버스커는 우리나라 4인조 그룹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라는 곡을 부르고 있었다. 호주의 한복판에서 케이팝을 부르고 있는 외국인 버스커라니, 왠지 모를 애국심과 자긍심이 차 오른다.

내가 공연할 장소의 도로 반대편에는 어느 한 부부 버스커가 자리를 잡았다. 남편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더니, 그 마이크를 건네받은 아내도 기타를 치며 연이어 완창을 한다. 어머니의 신나는 노래에도 불구하고, 그 노래를 자장가 삼아 등에서 곤히 잠을 청하고 있는 갓난아기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거리에 나온 버스커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나의 공연에는 분명 좋은 일이다. 좋은 공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잠재적 경쟁자가 줄어든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멜버른의 버스킹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는 멜버른의 버스킹 생태계가 무너져 버린 것이 내심 아쉽고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곳의 그 누구보다도 멜버른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축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해가 진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도심에서 자신의 저녁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스완스톤 스트릿으로 쏟아져 나온다. 갯벌에 서서히 밀물이 차오르듯, 이곳 멜버른의 거리에도 서서히 나의 시간들이 차 오른다. 자, 가자! 이제는 오롯이 나의 시간들이다. 10년을 기다렸던 그 춤사위를 이곳 멜버른에서 마음껏 풀어보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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