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국시대의 하느님의 마지막 세 번째 이름인 환웅은 하느님에 대한 종교적 측면의 고찰을 통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도지의 하느님 마고-삼신-천인이 수인한웅으로 바뀐 후, 오미의 변으로 고대 한국시대의 이야기는 끝나고, 단군신화로 넘어간다.
고대 한국시대와 단군신화를 연결하는 오미의 변 이야기는 다음 회차에서 이어진다.
단군신화에서 하느님은 다시 환인에서 환웅으로 이어지는데, 이 때는 고대한국시대의 뒤를 잇는 구려한국시대의 이야기로서, 고대 한국시대의 유인 환웅은 구려한국시대 초기엔 유소환웅으로 이름이 바뀌고, 구려한국시대 후기에 단군의 아버지 치우환웅으로 연결되어 고조선시대를 그리며 끝난다.
단군신화로 부터 시작되는 구려한국시대와 고조선시대의 이야기는 환단고기를 비롯한 한국고기와 한국사서, 그리고 중국사서를 바탕으로 설명된다.
고대 한국시대 이후의 환웅은 지상세계로 이어져 인간과 관계를 맺는 하느님이다. 따라서 인류의 구세주가 되는 오직 하나뿐인 존재라 하여 하나님으로도 표현된다.
한국고기와 중국사서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유인환웅, 유소환웅, 반고, 여와와 복희, 염제신농, 황제, 염제유망, 치우환웅 등 환웅(桓雄)에 해당하는 신격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님에 해당하는 천신은 치우한웅이고, 나머지는 일반 신으로 신황(神皇)·황제(皇帝)·가한(可汗) 등의 이름을 사용한다.
한국고기와 중국사서 등에서는 이들의 면모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 유인환웅(有因桓雄)
한국고기 부도지의 유인환웅 즉 유인씨는 중국사서에서 수인씨(燧人氏)라 하는데,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와 함께 3황(三皇)의 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① 한국문화권의 유인환웅
부도지에 의하면 유인환웅은 부싯돌로 불을 일으켜서 어둠을 밝히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여 화식(火食)하는 것을 가르쳤고, 그렇게 지상세계를 보살피기 천년을 지나서 환인씨에게 천부인(天符印)을 전하고 산으로 들어가 수도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구려한국시대가 시작되면서 유인환웅은 유소환웅으로 이름이 바뀌고, 구려한국시대 후기엔 치우환웅으로 또 이름이 바뀐다.
② 중국문화권의 유인환웅
중국고대 전설에서는 수인씨(燧人氏)의 수(燧)는 불을 얻는 도구로, 나무를 마찰하여 불을 얻어 음식물을 요리하는 화식(火食)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중국 전설에 의하면 수인씨가 수만년 전에 상구(허난성)에 수명국(燧明國)이란 나라를 세웠는데, 상구시는 상나라의 첫번째 도읍지였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고대 중국 전설상의 황제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 전설의 원형은 오래 되었으나 3황전설(三皇傳說)로 정리된 것은 전국시대 이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고기 부도지와 중국사서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나라를 세운 시기와 한국에서 천부인과 함께 후세에도 계속 존재하는 것만 다를 뿐, 캐릭터 상으로는 같은 맥락이다.
2. 반고가한(班固可汗)
한국고기의 반고가한은 오나라의 서정이 쓴 삼오역기(三五歷記)에 반고(班固)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반고는 치우환웅이 유소환웅(有巢桓雄)이었을 때 지상세계의 삼위산(三危山)으로 내려온 신격의 거인(巨人)으로 그려지고 있다.
중국사서 삼오역기에선 천지가 생기기 이전에 알 속의 내용과 같이 혼돈된 상태에서 반고가 출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양나라의 임방이 쓴 술이기(述異記)에선 천지의 형태가 만들어진 뒤 반고는 죽어 그 시체로부터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적고 있다.
가령 반고의 왼쪽 눈으로부터는 태양이, 오른쪽 눈으로부터는 달이, 머리와 몸으로 부터는 중국의 오악(다섯개의 산)이 태어났다고 한다.
중국역사에서 반고는 천지창조의 신이기 때문에, 연대로 짐작하면 인류를 창조한 신인 복희 · 여와보다 이전에 존재한 것이 된다. 그러나 문헌이나 고찰 등으로 반고의 존재가 언급된 것은 사기(전한)나 풍속통의(후한)으로, 삼황오제가 거론되었던 시대보다 훨씬 후대의 일이다.
한국고기에서는 치우환웅이 유소환웅이었을 때에 지상세계로 내려온 신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굳이 시대를 따지자면 한국고기의 설명이 옳은 것 같다.
3. 여와(女媧)와 복희(伏羲)
한국고기에서 여와와 복희는 치우환웅이 유소환웅이었을 때 있었던 뱀을 상징캐릭터로 하는 신으로 남매인 동시에 부부관계이다.
여와는 중국신화에서 인류를 창조한 여신으로 그려진다. 풍속통의(風俗通義)에는 여와가 황토로 사람을 만들고, 결혼 제도를 만든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와의 어머니는 질서의 여신으로 알려진 화서(花序)인데, 우주를 배회하다가 번개의 신 뇌공의 발자국을 밟고 난 후 갑자기 임신을 해 낳았고,그래서 여와는 달리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화와(花媧)로도 부른다고 한다.
여와의 사당에 가서 빌면 결혼도 할 수 있고 자식도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태고 하늘에 4개의 기둥이 부러지자, 대지가 갈라지고 화재와 홍수가 발생했다. 이때 맹수와 괴조(怪鳥)가 횡행하여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여와가 5색으로 빛나는 돌을 녹여 하늘의 구멍 뚫린 부분을 메웠다고 서술되어 있다. 여와 신화는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신화로 이해되고 있다.
태호 복희씨(太皞伏羲氏) 또는 포희씨(庖犧氏)는 중국 삼황 중 하나이다.
전설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기원전 2800년 무렵에 살았는데, 인류에게 닥친 대홍수 시절에 표주박 속에 들어가 있던 덕분에 되살아날 수 있었고,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로 복희(伏羲)라고 했다고 전한다. 복희란 희생(제사에 쓰이는 짐승)을 길러 붙여진 이름이다. 성씨는 풍(風)으로 전해진다.
태호복희가 팔괘(八卦)를 창제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주역(周易) 64괘(卦)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도교에서는 그를 동방의 천제라 일컫는다. 또한 글자와 혼인제도와 성씨(姓氏)를 만들었다고 한다. 복희가 도읍을 정했다고 하는 회양현(=陳(진))에서 복희가 만들었다는 팔괘가 발견되었다. 당나라 시대에 간행된 역경에 따르면 복희가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복희가 살았다는 기원전 25세기의 문자나 기호가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팔괘는 주나라 초기 점술가들이 제안하였고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여러 신앙과 풍습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여, 사서의 내용들과는 실제로는 다른 면도 있다. 글자를 만들었다고 믿어지기도 하지만, 역시 복희가 살았던 시대의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복희가 동이족이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태호복희가 한민족의 혈통이라는 의미이며, 만약 복희가 역(易)을 만들었다면 부도에 어긋나는 것으로 최초의 민족 반역자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원래 민간 전설상으로는 태호와 복희는 별개의 인물이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에서 편찬한 세본(世本)에서 동일 인물로 서술하자, 이후 황조 이후부터 동일인으로 서술 하기 시작하였다. 이름이 두 개이고, 본래 동일인이 아니라는 기록이 존재하므로 실존성은 낮은 신화적인 상징이라고 해석이 하기도 한다.
태호 복희는 여와처럼 고대 민간 신앙의 신화일 뿐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복희 상상도가 출토된 신장의 경우 본래 한족 지역이 아니며, 한족 이외에 남방 소수 민족들도 복희 신화를 가지고 있어, 고대 씨족 사회에 널리 사용된 민간 신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100년 이상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무덤은 화이양 현 북쪽 3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다른 전설 시대에 나오는 인물 무덤처럼 실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자식으로는 복비가 있고 후손은 늠군이다.
복희여와도는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여와와 황제 복희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한(漢)나라 때의 돌에 새긴 그림·당(唐)나라 때의 채색한 비단 그림·아스타나 무덤에서 발견된다. 복희와 여와는 상반신은 사람 모습을 하고, 각각 손에는 창조의 상징물인 구부러진 자(曲尺)와 컴퍼스를 들고 있다. 몸을 꼬고 있는 모습은 세상의 조화와 만물의 생성이 초래됨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데, 신인 여와와 인간인 복희가 몸을 꼬고 있는 모습은 한국고기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여신 여와와 복희의 모티프는 인도나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들도 여와를 신으로 모시는 풍습이 있다. 투르판 아스타나(阿斯塔那)의 묘실 천정에 부착되어 있었던 복희 여와도는 중국 내륙에서도 출토된 예가 없다. 따라서 복희와 여와라는 테마가 중국이 아닌 남방 문화에 의해 형성되어 중국으로 전래되었다는 학설이 있는데, 어쨋던 전술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고기의 영향를 받은 것만은 틀림없다.
복희와 여와의 이야기는 세계 곳곳의 인간 탄생 신화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와가 흙으로 사람을 빚어낸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강물에 흙을 반죽해 사람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나 성경에서 야훼가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코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었다고 한 내용과 닮아 있다. 홍수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데우칼리온 부부 이야기와 성경에서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닮아 있다.
4. 염제신농(炎帝神農)
염제신농은 중국의 삼황(三皇) 중 하나로 흔히 염제 신농씨(炎帝 神農氏)라고 불리며, 별칭으로는 열산씨(烈山氏), 염제주양씨(炎帝朱襄氏)가 있다.
염제 신농씨는 베트남 최초의 국가였던 홍방왕조의 시조로도 여겨진다. 홍방왕조는 건국설화에 의하면 B.C. 2879년에 훙브엉(Hùng Vương) 황제가 세웠다고 하며, 기원전 258년까지 베트남을 지배했다.
염제 신농은 한족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백초의 풀을 직접 맛보아 해독을 하였으며, 한의학의 최초의 저서로 유명한 '신농본초경'을 저술하였다고 전해져 오늘날 한의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또한 마차와 쟁기를 만들고, 소와 말을 길들이고 사람들에게 불로써 토지를 깨끗하게 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진(陳: 현 허난성 저우커우시)에 도읍을 정했다가 후에 곡부(曲阜: 현 산동성 지닝시취푸시)로 옮겨 140여 년간 통치했다. 신농이 백성들을 공평하게 다스리니 백성들은 소박하고 성실해서 다투지 않았고, 위세는 강했지만 드러내지 않았고, 형벌을 제정했지만 사용하지 않았으며, 법은 번잡하지 않았다고 한다.
염제신농은 치우환웅이 유소환웅이었을 때 치우환웅처럼 태양을 상징캐릭터로 하는 신이었는데, 치우환웅(蚩尤桓雄)과 같은 인신우두(人身牛頭)의 형상으로 전해지며 섬서성의 강수(姜水) 인근 출신이기 때문에 성은 강(姜)이라고 한다.
① 중국문화권의 염제신농
중국문화권에서는 황제 헌원씨와 더불어 중화민족 즉 한족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고, 춘추시대 제나라의 왕인 강태공(姜太公)이 염제 신농씨의 후손이라고 전해지며, 염제신농을 세계 강씨(姜氏)의 시조로 여긴다. 그러나 B.C. 1200년경의 강태공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도 한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한족(韓族)과 한족(漢族) 모두가 이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강태공(姜太公)과 세계 강씨(姜氏)의 시조는 염제신농이나 치우환웅 둘 중 하나인데, 한국고기에서는 치우환웅을 시조로 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갓 태어나자마자 주위에 저절로 아홉 개의 우물이 생겨 불이 솟아 올랐다고 한다. 그 우물의 물을 길으면 나머지 여덟 개의 우물이 출렁거렸다. 그리고 그가 인류에게 오곡의 파종법을 가르치려고 할 무렵 하늘에서 수많은 씨앗이 떨어졌다. 그는 이것을 모아 밭에다 심었는데, 이것이 인류가 먹는 오곡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어난 지 3일밖에 안 지났음에도 저절로 말을 하고 5일 만에 걸었다고 한다. 이후 나라를 세웠는데 춘추좌씨전에서는 그가 열산(烈山, 현 허베이성 수주)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열산씨(烈山氏) 혹은 여산씨(厲山氏)라고도 했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갓 태어나자마자 주위에 저절로 아홉 개의 우물이 생겨 불이 솟아 올랐다고 한다. 그 우물의 물을 길으면 나머지 여덟 개의 우물이 출렁거렸다. 그리고 그가 인류에게 오곡의 파종법을 가르치려고 할 무렵 하늘에서 수많은 씨앗이 떨어졌다. 그는 이것을 모아 밭에다 심었는데, 이것이 인류가 먹는 오곡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어난 지 3일밖에 안 지났음에도 저절로 말을 하고 5일 만에 걸었다고 한다. 이후 나라를 세웠는데 춘추좌씨전에서는 그가 열산(烈山, 현 허베이성 수주)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열산씨(烈山氏) 혹은 여산씨(厲山氏)라고도 했다.
염제신농에 대한 달의 계수나무와 얽힌 시지프스 신화와 비슷한 일화도 있다. 염제는 오강이란 이에게 신선 수련을 시켜준 적이 있었는데, 행실이 나쁘기로 유명했던 염제의 조카가 오강의 처를 겁탈해 자기의 사생아 둘을 임신시키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오강이 염제의 조카를 죽이자 화가 난 염제는 오강으로 하여금 달로 가 그곳에 있는 계수나무를 베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오강은 이를 받들어 달로 가 계수나무를 베려 했지만, 그 계수나무는 베거나 찍어내는 즉시 상처난 자리가 회복되어서 오강은 영원히 그 계수나무를 도씨ㅗ 찍기만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후 오강의 아내가 달에서 염제의 형벌을 받는 오강을 생각해 자식들을 달로 보냈는데, 오강의 아내 겁탈범(염제의 조카)의 아이들이기도 한 이 자식들은 자신들을 알아보면 오강이 해할까 무서워서 두꺼비와 옥토끼로 형상을 바꾸고 오강의 곁에 머물렀다고 한다.
염제신농에게는 딸이 모두 4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소녀경(素女經)의 주인공으로 적송자라는 신선을 따라 도를 닦아 방중술을 터득했다는 소녀(素女), 뽕나무의 신이 되어 살다가 승천했다고 하는 적제녀(赤帝女), 무산의 신녀가 되어 초나라의 회왕과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 요희(妖姬), 삼황오제의 여와와 같은 이름의 신으로 동해를 건너다 빠져 죽어 그녀의 영혼이 정위(精卫)라는 이름의 새로 변한데 대한 한으로 나뭇가지와 돌을 가져와 동해를 메우려 했다는 여와(女媧)이다.
② 한국문화권의 염제신농
한국고기 태백일사에서는 염제신농에 대해 “ 웅씨(雄氏)에서 갈려져나간 자에 소전(少典)이 있었는데, 안부련 환웅 말기에 명을 병을 받고 강수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게 되었다. 염제 신농씨의 어머니 여등(女登)은 제후 유교씨(有嬌氏)의 딸이자 제후 소전씨(少典氏)의 비(妃)로, 어느 날, 그녀가 화양(華陽)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신비스럽게 생긴 용(龍)을 보고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데, 그 후 임신을 하여 10개월이 지나자 머리는 소,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한 반인반신을 낳았으니, 이 아이가 바로 신농이었다. 신농은 수많은 역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고, 뒤에 열산(列山)으로 옮겨 낮에는 교역하게 하니 사람들이 편리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주강씨대동보(晋州姜氏大同譜)에 의하면 기원전 3218년 4월 26일에 천수(天水: 현 감숙성 위천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날은 중국에서 신농대제탄신(神農大帝誕辰) 등으로 부르며 신농씨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외에도 기원전 28세기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어차피 신화 속의 신격이라 정확한 기록을 따짐은 무의미하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농신(農神)으로서의 염제신농씨에 대한 제사를 지냈음이 기록되어 있고, 조선시대에는 선농단(先農壇)이라는 제단을 세워 매년 임금이 직접 밭을 간 후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는데, 뜬금없겠지만 설렁탕과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선농단은 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데, 조선시대에 봄이 되면 임금이 직접 참석해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임금도 이때만은 백성들과 함께 직접 소를 몰고 밭을 가는 의식을 했는데 이를 '친경'(親耕)이라 했다. 제사와 친경이 끝나면 임금은 백성들에게 술과 소뼈를 푹 고운 선농탕(先農湯)을 내렸는데, 선농탕의 이름이 바뀌어 설렁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곡식의 신이 바로 염제 신농씨이다.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베트남, 대만 등에서 지금도 신농의 은덕을 기리며 제향하고 있다.
5. 염제유망(炎帝楡罔)과 황제(皇帝)
염제유망은 치우환웅 시대의 태양을 상징캐릭터로 하는 신이었는데, 유망이 신농의 8대손으로 한국고기와 중국사서에 공히 등장한다.
황제는 용을 캐릭터로 하는 신으로 역시 치우환웅과 같은 시대인데, 한국고기와 중국사서에 공히 등장한다.
염제유망과 황제와 치우환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단군신화의 구려한국 편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환웅은 고대 한국시대에는 유인한웅(수인환웅)으로, 구려한국 시대의 삼황오제까지는 유소환웅으로, 염제유망과 황제 때는 치우환웅으로, 고조선 시대에는 치우환웅에서 인간 치우로 변하고 있다.
수인환웅과 치우환웅은 각각 태양과 소를 캐릭터로 하는 신인데 , 수인환웅은 고대 한국시대의 끝을 장식했고, 치우환웅은 구려한국시대 후기를 열었으며, 둘다 한국고기와 중국사서에 공히 등장한다.
치우환웅이 지상세계로 내려와서 곰을 교육하여 인간 웅녀로 만들고, 또 잠시 인간 치우로 화신하여 혼인을 통하여 단군을 낳게 하는 것은 물론 신성(神性)까지 주어서, 인류의 구세주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신이 되는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단군은 아버지 하나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종교나라 고조선과 종교정치국가 구려조선(단군조선)을 세운다.
한민족의 역사에 하나님이 신화에서 종교가 되어 역사로 이어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대한민국의 시원국가인 기원전 2,333년의 고조선은 종교나라인 동시에 종교정치국가로, 오늘날 세계의 종교와 문화와 정치 등 모든 것을 선도하는 서구역사가 시작된 시기보다 무려 2,300여년 전에 한민족이 이루었던 역사다.
세상에 종교는 많지만 하느님이 인간을 위하여 희생하는 종교는 없고, 세상에 국가는 많지만 하나님이 조상이 되는 국가는 없다.
뿐만아니라 세상의 어느 종교나 국가에서도 홍익인간의 지상천국을 제시하며 현실 속에서 천국을 구현했던 역사는 없다. 그런 역사를 가진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 해설 단군신화(14) " 고대한국시대의 오미의 변" 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