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명에 따라 지상세계를 다스리던 천신들에게 생긴 큰 환란(患亂)을 오미(五味)의 변(變)이라고 한다.
부도지(符都誌)는 오미의 변(五味之變)을 고대한국시대에서 단군신화로 넘어가는 계기로 설명하고 있으며, 인류 역사에서는 지금으로부터 4, 5백 만년전 율려 에너지의 폭발에 의해 원시인류가 태어난 인류의 기원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때로부터 지구촌을 다스렸던 천신들은 인류처럼 생사고락이 있는 삶을 시작한다. 부도지에서는 이처럼 율려의 변화를 통하여 지상의 인류세상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오미의 변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부도지(符都誌)에서는 오미의 변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 하느님이 지구촌 시대(주1)를 처음 열었을 때 천인(天人)들은 신(神)의 존재였기에 천국문(天國門, 주2)으로 천국과 지상 세계를 오가면서 율려(律呂)를 다스리는 천신(天神)으로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으며, 지상에는 인류가 자연세계의 일원으로 살고 있었다. 천인들은 지구촌에서 임무 수행 중에 돌, 나무, 공룡 등과 같은 물체나 식물 혹은 동물의 모습을 하였으며, 임무가 끝나 천계로 올라갈 때는 금진으로 천화하여(주3) 신(神)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때는 약육강식의 시대로써 인류는 자신보다 크고 강력한 동물들에게 이리저리 쫓기며 미개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는데, 천신들의 다스림으로 종족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신(神)들이 그렇게 지구촌을 다스리고 있었던 지구촌 시대의 어느 날 “오미(五味)의 변(變. 주4)”이 일어났다.
백소씨 중의 지소씨(支巢氏)라는 천인(天人)이 지유(地油:땅에서 나오는 젖. 주5)를 마시려고 샘에 갔는데, 차례가 너무길어 자신은 마시지 못하기를 다섯 차례나 반복하였다. 낙심한 지소씨(支巢氏)가 발길을 돌려 돌아와서 소에 오르는 길에 숲에서 묘한 냄새가 나기에 들어가 보니, 포도넝쿨 아래 웅덩이에 검붉은 액체가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냄새에 취한 순간 귓속에서 미혹하는 소리가 울려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급지급 오미(五味. 주6)를 맛보게 되니, 귀가 윙윙거리고 코가 아려오고 온몸이 나른해지고 코가 맹맹해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져 마치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잠시 시간이 흘러 지소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전과는 너무도 달랐다. 온 세상이 색색으로 물들어 있고, 꽃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귀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와 새들의 노래가 들렸다. 지소씨는“천지가 아름답고 황홀하구나. 온몸에 기운이 넘쳐나니 이 모두가 포도의 힘이로다.”하고 노래를 하며 활보를 하고 만나는 이들에게 모두 포도주 먹기를 권했다.
천인들이 너도나도 신기하게 여겨 먹어보니 과연 그 말과 같았고, 이 후 포도주의 다섯 가지 맛을 알게 된 천인(天人)들은 번잡하고 사사로운 욕망에 시달리게 되었다. 천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서 크게 놀라 마침내 포도주를 먹지 못하게 하고 수찰(守察. 주7)을 금하기에 이르렀으나, 이 또한 금지 당함 없이 스스로를 지키는 자재율을 파기함으로써 계율을 어긴 행동이었다.
하느님은 오미(五味)의 변(變, 주8)이 일어나자, 포도주를 먹은 지소씨와 다른 천인(天人)들을 하늘나라에서 추방하였고, 잠시 오미의 유혹에 빠졌던 천인들은 수찰을 금하게 명하였다. 그리고 오미의 유혹을 이겨낸 황궁씨를 수장으로 삼아 마고대성에 머물며 수찰(守察)을 금한 나머지 천인들과 함께 지유(地乳)를 지킬 것을 명하였다.
지유는 원래 천신들의 정기로 생산되는 생명의 물이었다. 그러나 수찰을 피해 오미를 찾는 천신들이 차츰 늘어나면서 지유의 양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마고하느님은 수찰을 금한 천인들에게 지구촌에 머물며 열매를 먹고 살게 하고, 수찰을 금하는 법을 지키게 하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하였다. 이때 포도주를 먹은 천인들은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같이 하니 이는 공율(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수찰을 금한 천인들은 천성(天性)을 잃게 되어 피와 살이 탁해지고 심기는 모질게 변했으며,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지혜가 머리에 묶여(주9) 발이 무거워지고 빨리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포도주를 먹은 천인들은 짐승으로 변해서(주10) 이빨이 생겨나고 이빨에서 생겨난 침이 독과 같이 되어버리는 일들이 일어났으며, 임무 수행 후에도 계속하여 포도주를 먹은 천인들은 금진으로 천화하지 못하고 굳어 그대로의 모습으로 머무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수찰을 금하거나 포도를 먹은 천인들이 이처럼 천성을 잃게 되었을 뿐 아니라 수명도 줄어들었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점차 거짓말을 하게 되고 남을 믿지 못하게 된 까닭은 지유를 먹지 않고 열매를 따 먹기 때문이었데, 다른 생명을 먹은 것도 또한 계율을 어긴 것이었다.
포도를 먹은 천인들이 하늘에서 추방 된 후, 끊임없는 수찰에도 불구하고 포도주를 먹고 계율을 어겨 많은 천인들이 지상에 남게 되었다.(주11) 이에 천인들이 서로 원망하고 나무라니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 관속을 이끌고 무리를 벗어나 멀리 산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를 계기로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났고, 열매를 먹는 습관이 생긴 자와 수찰을 중단한 자들도 차츰 파미르를 벗어나 멀리 떠나서 지상 세계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황궁씨가 그들의 정상을 민망하게 생각하여 고별하며 말하기를 “부디 수증(修證. 주12)하는 일에 부지런히 힘쓰고 미혹된 바를 깨끗이 하면 자연히 근본을 회복할 것이니 힘쓰고 또 힘쓰라” 당부하였다.』
(주1) 지구촌시대는 마고하느님의 뜻에 따라 천신(天神)들이 지상세계를 다스리게 되면서 세워졌던 지구촌 하늘과 지상을 잇는 새로운 신(神)의 나라 시대를 의미한다.
(주2) 천국문은 하늘과 지상 세계 사이의 출입문으로 천문(天門)이라고도 하는데, 머리의 백회혈과 연결된다고 하여 백회혈을 천문혈이라고도 한다.
(주3) 율려를 다스리다 금진으로 천화한다는 구절은 에너지를 다스리다 성체(聖體)를 이루어 성령(聖靈)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삼신일체임으로 하느님의 에너지인 우주의 에너지와 태양계에 속하는 지구의 에너지와 생태계에 속하는 인간의 에너지가 동일한 것이고, 성령에 속해 있는 법계(法界)와 생태계에 있는 색계(色界)와 인간에게 있는 오감(五感)이 동일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에너지가 서로 도우면서 조화롭게 흘러야 하느님의 천도와 인류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천인들은 이 모든 것을 다스리기 위하여 스스로 형태를 갖추어 활동하다, 임무를 다하면 다시 성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4) 오미의 변은 천상계(天上界)로 보아서는 율려의 조화가 완전히 깨트려져서 천상계에서 지상계가 떨어져 나간 대자연의 이변이고, 지상계(地上界)로 보아서는 신(神)들에 의해 지구촌이 직접 다스려지기 시작한 인류 창조 역사의 시작이 된다.
오미의 변은 오늘날 성경에서 전하는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와 유사하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성경 속에서 아담과 이브가 먹었던 선악과(善惡果)는 열매나무로 사과 혹은 무화과라고 알려져 있으며, 인류를 죄악에 빠트림으로써 하느님이 그 열매를 먹은 파계(破戒)의 죄를 물어 천국에서 인류를 추방하게 만든 악(惡)의 나무이다. 그런 까닭에 성경에서 선악과는 하느님의 계율로 먹지 못하게 정해진 금단의 나무인 동시에 원죄(原罪)의 원인이 된다.
반면 부도지에서 성경의 아담과 이브에 해당하는 지소씨 부부가 먹은 포도주의 원료가 된 포도나무 열매는 포도를 천신(天神)의 정신을 흐려서 스스로의 자재율(自在律)을 잃게 한 금단의 나무가 되긴 하지만, 하느님의 계율로 정해진 선악과(善惡果)가 아니라 천인들과의 인연으로 악과로 선택된 인연과(因緣果)이다. 부도지에서의 선악과는 그런 까닭에 하느님의 계율인 천도(天道) 또는 정당한 자신의 몫이 아닌 질서를 깨트리는 욕심으로 인하여 천신이 지혜를 잃고 인류로 전락하게 만든 인과(因果)의 나무가 된다.
인류사적 관점에서 선악과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성경의 선악과는 원죄의 나무이기는 하지만, 인류에게 선악을 깨닫게 하고 지식을 열어주는 지혜의 열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도지의 선악과는 성경과는 달리 비록 천신들을 하늘에서 떠나게 하는 원인이 되기는 하지만 원죄(原罪)의 나무는 아니며, 오히려 계율을 어김으로써 지혜를 잃은 부끄러움과 인류로 전락한 악업을 감수하며 지구촌으로 고난의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 즉 천신(天神)에게 하느님이 주는 기회(機會)의 나무가 된다.
부도지(符都誌)의 선악과 이야기가 성경과 다른 점은 하느님과 선악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있다. 먹어서는 안 돼는 금단의 과일을 먹음으로써 누군가의 원죄가 시작되는 것은 성경이나 우리 부도지에서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성경이 선악의 개념으로 인류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과는 달리, 부도지에서는 선택의 개념으로 인류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선악과라는 열매 나무가 금단의 나무로서 인간에게 선악을 알게 해 쫒겨나게 한 운명의 문제로 설정되지만, 부도지에서는 선악과가 금단의 나무가 아니라 순서에 따라 지유를 먹는 자재율(自在律)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선택의 문제로 설정된다. 즉 부도지에서 선악(善惡)의 개념은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된다.
또한 성경의 입장을 인류사적인 면에서 고찰해보면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선악과를 먹은 데 대한 원죄(原罪)를 물어 인류를 천국에서 추방하는 벌(罰)을 내린 것이 당연한 행동이 되지만, 인류의 입장에서는 선악과가 지혜의 나무가 되는 까닭에 오히려 기회와 자유를 주는 아이러니를 초래함으로써 천상계와 지상계에서의 가치관이 서로 역행한다.
반면 부도지에서 하느님은 동물성의 나락으로 떨어진 천신에게 오히려 지켜야 할 천륜을 계율로 내리고, 지상천국을 만들 것을 계획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줌으로써 천계와 지상계에서의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뿐만 아니다. 성경에서 그리는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단죄하는 절대자이고, 계율로 인간을 다스리는 우월적 존재로 그려진다. 기독교에서 “먼저 하느님을 믿어라, 믿으면 숭배하게 되고, 숭배하면 사랑이 생기게 되고, 하느님은 숭배하는 사람에게 은총을 내린다.”고 하는 가르침과 교직자(敎職者)들을 성직자로 우대하는 풍속은 하느님에 대한 이런 수직적 인식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반대로 부도지에서 그리는 창조주 하느님은 누군가를 돕는 조력자이고, 우주만물과 공존하는 평화롭고 자연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 까닭에 성경의 하나님이 계율을 어긴 인류를 처벌하고 나무에게는 선악과라는 주홍글씨를 씌우는 근엄하고 강압적인 절대 권력자가 되지만, 부도지의 하느님은 누군가를 처벌하기보다는 반성의 기회를 주고 나무에게 선악의 책임을 지우기보다 사리를 따져 공평 정대한 판단을 내려주는 자애롭고 현명한 동반자가 된다.
부도지(符都誌)와 성경(聖經)의 내용을 모두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성경(聖經)에서의 선악과는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 지혜와 원죄의 나무로 그려지지만, 부도지(符都誌)에서의 선악과는 천신(天神)이 자재율(自在律) 상실로 인하여 스스로 타락의 길을 택함으로써 일반적인 나무가 금단의 나무로 천시(賤視)되는 비운의 나무로 그려진다.
사실 성경의 내용으로 생각하여 볼 때 금단의 나무로 지정된 선악과가 나쁜지 그것을 먹은 인류가 나쁜지 하는 가에 대한 시시비비에 앞서, 인류에게 있어 하느님의 추방은 오히려 지혜를 얻어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기회가 됨으로써 금단의 나무로 지정된 선악과의 입장에서 보면 편파적이고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 된다. 또한 인류가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를 원죄로 단죄하여 기회 한번 주지 않는 하느님의 행동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부도지의 내용에서는 천신(天神)이 금단을 어긴 이유를 선악과(善惡果)와 관계없이 인간의 자재율 상실에서 찾고 있으며, 인류의 추방 또한 원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자재율을 잃은 인류가 수찰을 금하게 함으로써 천성을 되찾을 복본의 기회가 된다. 그래서 부도지에서의 창조주 하느님은 자재율(自在律)을 잃은 천신(天神)에게는 수찰(守察)을 금하게 함으로써 천성을 되찾을 복본(複本)의 기회를 주고, 나무에게 선악과라는 오명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그 과일을 먹게 하여 식량을 제공하는 선과(善果)가 되게 함으로써 인간과 나무 양쪽 모두에게 두루 이로운 공평성과 너그러움을 보이고 있다. 하느님을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절대자나 자기중심적인 독재자로 그리지 않고, 자애롭고 인류를 사랑하는 동반자이면서 상대(相對)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롭고 정의로운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성경과는 차별화 되는 부도지의 뛰어난 점이다.
(주5) 지유(地油)는 오미의 변(五味之變)의 원인이 된 생명수(生命水)로서, 오늘날로 비유하면 생명의 물인 지하수(地下水) 중에서 용천수(湧泉水)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천신들의 자재율을 지켜주게 해주는 법감(法感)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주6) 오미(五味)는 불교에서 그리는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다섯 가지 오감(五感)이나 포도주의 다섯 가지 오묘한 맛에 비유된다.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오감(五感)은 자신의 본분(本分)을 잊게 하는 좀 더 자극적이고 색다른 아름다움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느낌이다. 인간이 오감에 젖으면 오욕에 빠지듯이, 천신(天神)들도 마찬가지로 자재율을 잃고 오감의 유혹에 빠지면 법감(法感)을 잃고 에고(ego)의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 하느님의 자재율은 오감(五感)의 유혹을 이겨내는 신성(神性)을 일컫는 말이다. 천신(天神)이 천신(天神)인 까닭은 하느님의 화신(化身)이기 때문에 법감(法感)이 발달하여 오감(五感)의 유혹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7) 수찰은 “지상세계의 율려의 조화가 깨트려 지는 것을 지킨다”는 의미와 “스스로를 지키는 자재율을 계율로 지킨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지상 세계의 조화를 지키는 것이 의무이고, 이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유를 먹고 법감을 유지하는 스스로의 계율을 루틴으로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수찰을 어기는 것은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을 비유해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인간들은 편히 밥먹고 잠자기 위해 일어나서 자신이 택한 직장으로 출근하여 일하고, 직장에서 받은 봉급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행복과 즐거움을 감사함으로 알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누리는 건강한 삶과 행복한 일상도 습관이 되면 타성(惰性)이 되고 마침내 권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오감(五感)에 의지하여 찰나의 쾌감에 빠지게 된다.
(주8) "포도주를 먹은 천신들의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같이 한다"는 표현은 당시 지상 세계에 악연의 업이 쌓여 밤이 계속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공율(公律)을 훔쳐보았다"는 표현을 통하여 법(法)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인간세계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공법(公法)에 의하여 다스려지기 전에 자재율로 자연스럽게 선(善)이 지켜져야지, 공율을 세워 법을 만드는 순간 선(善)과 악(惡)이 구별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주9) "지혜가 머리에 묵인다"는 구절은 수찰을 금한 천신들이 영성(靈性)을 잃고 신의 영역에서 인류처럼 변했다는 의미이다. 즉 신성을 잃지는 않았지만 생사초월하는 신통력을 잃었기 때문에 , 생명체의 일원으로 전락하여 동물성의 원시인류와 함께 생사(生死)를 반복하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주10) "포도주를 먹은 천인들이 짐승으로 변했다"는 말은 지구촌에 남은 천인(天人)들이 신성(神性)을 잃고 자아성찰(自我省察)이 없는 동물성 인류로서 동물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동물성 인류와 원시인류의 차이는 기억력이다. 동물성의 인류는 기억을 통하여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최초로 죽음을 인식하고 느끼는 원시인류가 되었으며, 본능적으로 도구사용을 위하여 직립보행을 하게 되는데, 원시인류가 동물에서 진화하고도 태어나고 죽음을 반복한다는 의미로써 사람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런 이유이다.
동물과 인류의 차이점은 그런 까닭에 어떤 대상에 대한 기억이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인식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학습하는 능력을 뜻하는 기억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이때부터 학습능력을 얻게 되어 도구문명(道具文明)을 발전시키기 시작하고, 모계 중심의 사회체제를 통하여 집단문화를 형성함으로써 차츰 인간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하게 된다.
(주11) 여기서 천인은 인류와 같은 천신이란 뜻으로, (주9)에 해당하는 동물성 인류와 (주10)에 해당하는 원시인류 두가지 인류를 포함한 개념의 신(神)인데, 인류의 경우 동물에서 진화된 원시인류의 진화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고고학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때가 약 400만 년에서 200만 년 전의 일로써 단순한 동물에 불과했던 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와 호모일렉투스(HomoErectus) 등으로 불리는 인류(人類)의 시조가 되는 원시인류로 진화한 인류와 함께 산것도 이때의 일이라 추측된다.
오미의 변 당시에 천신들의 모습은 자재율(自在律)을 지켜 포도주를 먹지 않은 천신(天神), 실수로 포도주를 먹고 지구촌에 머물게 되지만 공율(公律)을 지키는 천신(天神), 업무시간이 되어 지상에 내려왔을 때만 공율(公律)를 어기고 계속하여 포도주를 먹는 천신(天神), 겁 없이 낮밤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율(公律)을 무시하며 포도주를 먹는 천신(天神)의 4 분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인간세계도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지키고 통제하는 유형, 실수를 저지르지만 반성하고 본분으로 돌아가는 유형, 남이 볼때만 자제하는 척 하는 유형, 안하무인으로 법을 어기는 4 가지의 유형이 있다.
(주12) 수증은 자재율을 되찾았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교식으로 이야기 하면 도(道)를 닦고 덕(德)을 쌓아 도덕(道德)을 세운다는 뜻이고, 불교식으로 이야기 하면 내안의 신성(神性) 즉 참나를 깨달음을 의미하며, 기독교와 천주교식으로 이야기 하면 하느님의 계율을 지키는 삶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도지는 오미의 변 이후 일어난 일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 천인들이 이처럼 성을 나간 이후(주1)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근본을 회복하는 시기를 알지 못하고, 성 밖에 돌아와 지나간 잘못을 후회하며 직접 근본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하늘나라는 이들로 인해 점점 혼란스러워졌고, 마침내 천상계(天上界)와 지상계(地上界) 사이에서 신(神)들의 전쟁(주2)이 일어나 마고성까지 위험하게 되었다. 성을 나갔던 천신들은 유천(乳泉)을 얻고자 하여 성의 외곽을 파헤쳤으며, 이로 말미암아 성의 기초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유출되었다. 그러나 유출된 물은 즉시 흙이 되어 굳어버리므로 마실 수가 없었고(주3), 성내에서도 젖이 마르게 되니 모두가 동요하여 풀과 과실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이 극도에 달하여 청정을 보전하기 어려웠다. 오랜 세월 동안 이처럼 하늘과 땅 사이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마고성에 남은 천신들도 천성을 잃는 자가 수없이 많이 생겨났고, 성 밖의 천신들은 더욱 사나워지고 미혹이 더욱 깊어갔다.
하느님은 마침내 마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성문을 닫고, 천신들로 하여금 모두가 성을 떠나 이주하여 나누어 살면서 성 밖의 천신들을 제도(制度)하기를 명하였다. 이에 황궁씨는 제인(諸人)의 수장으로서 복본을 기약하면서 천부(天符)를 나누어 복본(複本)의 신표(信標)로 삼고(주4), 각 권속들에게 칡을 캐서 식량으로 삼을 것을 가르친 후에 뿔뿔이 흩어지게 하였다. 먼저 청궁씨는 권속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동쪽의 문을 나가 운해주(雲海州:지금의 중국)로 가고, 백소씨는 권속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서쪽의 문을 나가 월식주(月息州:지금의 중동과 유럽 일대)로, 흑소씨는 권속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남쪽의 문을 나가 성생주(星生州:지금의 인도와 동남아)로 떠났다. 끝으로 황궁씨는 권속과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북쪽의 문을 나가 천산주(天山州:지금의 중앙아시아 텐산산맥)로 향했다. 천산주는 매우 춥고 험한 땅이었으니, 이는 황궁씨가 자진해서 고통을 감내하고자 하는 맹세였다.(주5)
분거한 여러 족속들이 각 지역에 도달 한지도 어느덧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계 각 지역에는 예전에 성을 나간 천신들의 후예들이 잡거(雜居)하고 살고 있었다. 천신들은 지역에 살고 있는 인류와 다른 동물들을 통치하며 힘을 키워 그 세력이 심히 강성하였다. 예전에 성을 나갔던 천신들은 근본을 거의 망각하여 성격이 몹시 흉악하고 짐승처럼 변하였으며, 분거한 족속들이 그들을 제도(濟度)하러 오는 것을 보면 무리지어 추적해서 그들을 해쳤다. 이에 제도하려고 온 족속들도 그에 대항하여 싸우다 보니 마침내 제족이 모두 성격이 포악해졌다. 마침내 함께 살기 어려웠음으로 바다와 산을 경계로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각기 각처에 정착해서 안주하니 왕래가 거의 단절되었다.(주6) 』
(주1) 오미의 변 이후에 마고하느님이 천신(天神)들을 추방하는 이야기는 영구적으로 쫓아냈다는 해석보다는 천국(天國) 밖에서 수찰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자재율(自在律)을 다스리는 훈련을 통하여 천성(天性)을 되찾기를 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주2) 천신(天神)들이 정당한 노력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유를 차지하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모습 은 노력없이 무엇인가를 폭력으로 얻으려 하는 인간세계와 다르지 않다. 이런 모습은 천국(天國)과 인간세계가 다르지 않고, 사후세계와 현실세계가 다르지 않으며, 정신과 육체가 다르지 않다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사고관을 보여준다.
(주3) 유출된 유천(乳泉)의 물이 굳어 흙이 된다는 표현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천해(天海)가 되어 지상으로 흘러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자연이 한번 훼손되면 원상회복이 어렵다는 설명으로써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해석도 가능하다.
(주4) 복본을 기약하면서 천부(天符)를 나누어 복본(複本)의 신표(信標)로 삼고는 하느님이 지구촌에 남은 천신들에게 수증하여 복본을 회복함으로써 신성(神性)을 회복하는 일을 목표로 살 것을 당부하는 의미이다.
복본을 기약하면서 복본의 신표로 나눈 천부는 이어지는 구려한국시대에 천부인(天符印)으로 등장함으로 그 때 살펴보기로 하겠다.
(주5) 마고하느님이 황궁씨를 수장으로 제족을 마고성에서 멀리 분리시킴으로써 전쟁은 일단락이 된다. 청궁씨가 옮겨간 운해주와 백소씨가 옮겨간 월식주와 흑소씨가 옮겨간 성생주와 황궁씨가 옮겨간 천산주는 모두가 땅이 아닌 하늘을 의미하며, 동시에 그곳에 거주하였던 인류의 피부색을 상징하고 있다.
(주6) 분거한 여러 족속들이 각 지역에 도달 한지도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모습은 천인들이 동물성의 인류인 사람이나 원시인류와 닮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제족이 모두 성격이 포악해지고, 왕래가 거의 단절되었다는 대목은 천도(天道)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해선 단군신화(15) "구려한국시대와 하나님의 재림"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