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려한국시대의 천도의 변화
구려한국시대에 하나님이 재림하여 약육강식(弱肉强食)에서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천도(天道)를 바꾼다.
하나님이 홍익인간의 이상을 품으며 유소환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천도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상에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이 동물적 욕망에 의하여 움직이던 원시인류를 홍익인간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상(理想)은 홍익인간 즉 널리 세상에 이로운 인간을 양성함으로써 세상을 구하겠다는 의미로써, 하나님이 교육을 통하여 지식을 쌓은 동물성의 인류를 지혜(知慧)를 가진 고등인간(高等人間)으로 바꾸었다는 의미와도 같다.
하느님이 반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소환웅을 하느님의 후계로 택하였다는 사실은 유소환웅이 하느님으로 부터 지상세계의 하느님으로서의 지도자격 유일신(唯一神)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유소한웅(有巢桓雄)은 유소(有巢)라는 명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미의 변에서 포도주를 먹은 지소씨(支巢氏)와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가장 먼저 계율을 어긴 신(神)이 오히려 하나님으로 거듭난 것이다. 인간세상도 이와 마찬가지로 잘못임을 알았을 때 깨닫고 고치는 자만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높은 곳은 죽음을 앞에 두면 업(業)에 불과한 세속적 의미에서의 부귀영화(富貴榮華)와는 관계가 없다.
우리 한국고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짐작해보면 반고가한은 지상 세계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절대자로서의 신(神) 혹은 누군가를 힘으로 지배하고 유린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권력자를 상징한다고 생각되며, 그런 까닭에 오늘날 삼위산 납림동굴을 상징하는 언어가 금은보화의 문화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서경(書經)의 우서(虞書) 순전(舜典)에 따르면 “순 임금이 악한 제후(諸侯)였던 삼묘(三苗)를 이곳으로 유배(流配)보냈다.”고 하는데, 중국 측 입장에 의한 편향적 오류이다.
한국고기에 의하면 순임금은 요임금의 뒤를 이은 임금으로서 고조선시대 고조선의 제후국 군주였고, 삼묘는 한민족(韓民族)과 중국 한족(漢族)의 공통된 이름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고조선의 제후국인 순임금이 홍익인간의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선각자인 삼묘를 이곳으로 파견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에 의하면 홍익인간의 깨달음을 구하는 천도사상이 돈황과 네팔지역에서 불교로 발전했다는 추론을 할 수 있으며, 불교의 석굴문화와 불상의 황금색 문화의 연원을 짐작할 수도 있다.
우리 한국고기(韓國古記)와 중국신화(中國神話)를 종합하여 반고(盤古)를 해석해보면, 반고는 홍익인간의 이상을 품고 지상세계에 내려왔으나,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는 대신 편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는 설명이 된다. 이것은 아무리 좋은 뜻과 목적이라도 올바른 방법과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다.
단군신화와 우리 한국고기에서 반고가한으로 등장하는 반고(盤古)라는 인물상은 환웅이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천하는 모습과는 다른 행동 양식을 보여준다. 즉 인류가 교육과정에서 공감능력 대신에 지혜(知慧)와 지성(知性)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반고(盤古)의 모습을 통하여 암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지성(知性)과 지혜(知慧)는 의미가 다르다. 지성(知性)이 기억된 지식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활용하는 정신 작용이라면, 지혜(知慧)는 기억된 지식을 바탕으로 사건이나 상황을 깊게 이해하고 깨달아서 근본적인 것을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환웅의 홍익인간교육으로 인류는 영성을 가지게 되면서 지성과 지혜를 얻게 되지만, 대신 기억력이 향상되어 자신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반고가 괴상한 술법을 즐겼다는 대목은 아마도 이것을 해결해 주었다는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대(相對)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기회로 자신의 탐욕을 취하는 일은 인간세계에서도 흔한 일이다. 천신(天神) 반고(盤古) 역시 하늘로부터 내려왔기에 유소환웅처럼 홍익인간의 이상을 가졌던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소(有巢)와 반고(盤古)가 서로 다른 캐릭터로 그려졌다는 사실은 두 인물이 그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는 의미가 된다. 즉 반고가한은 홍익인간 이상의 실천 대신, 지성을 자신의 욕망 충족 수단으로 생각하여 거짓과 위선으로 인간 세상을 나락에 빠트렸던 것 같다. 인간이 자신이나 주위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여야 반성하여 옳은 길로 나갈 수 있는 것이라면, 반고(盤古)가 인류에게 제시한 방법은 술법을 즐겼다는 묘사로 보아서 아마도 망각(妄覺)의 힘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신의 의지(意志)와는 관계없이 피할 수 없게 다가오는 견디기 힘든 현실의 고통을 잊고 참는데 망각(妄覺)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또한 순간의 욕심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으로 야기될 문제들에 대한 두려움을 외면하고 스스로를 지키는데도 망각(妄覺)은 가장 좋은 처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망각으로 일어난 사실을 은폐해도 기억은 쌓이고, 기억이 정보가 되어 지성이 되고 인격을 형성한다. 피할 수 없이 힘들고 견딜 수 없어 잊어버리고 싶은 순간에, 삶의 방향을 좌우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어쩔 수 없이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선택해야 하는 힘든 기억을 잊을 수 있도록 하여준다면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인류는 망각의 힘을 얻는 대신 욕망(慾望)이라는 마성(魔性)에 의한 업(業)을 지게 된다. 인류가 원래 동물이었을 때는 삶의 본능에 의하여 욕심을 내기는 하였지만, 천도(天道)를 지켜서 무작정 남을 죽이거나 해를 끼치지는 않았기에 생사(生死)의 공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망각이라는 도피처를 통하여 욕망(慾望)을 키우게 되면서 이기심(利己心)이 커져서 강한 탐욕(貪慾)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삶과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악행(惡行)을 서슴지 않게 되었다. 인류 스스로가 탐욕으로 행하고 망각하는 악업(惡業)이 지성이 되고 인격이 되어 생사에 대한 공포의 원인이 된 것이다.
어찌하였던 인류는 지성을 가지면서 지식(知識)을 활용하게 됨으로써 자연을 이롭게 사용하는 도구문명(道具文明)을 개발하여 상대적으로 열악한 신체적 조건을 극복할 수 있게 되며, 또한 종속보존의 본능에 의한 혈연적 집단이 아닌 자연환경을 이용한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사회체제(社會體制)를 갖추게 됨으로써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에 속하는 포식동물로 진화하게 된다. 지혜는 비슷한 말로 통찰(insight), 안목(discernment)이라고도 하는데, 때때로는 자신의 감정적인 반응을 통제하여 이성과 지식이 행동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누군가가 진실을 오도(誤導)하거나 왜곡하고 거짓과 기만으로 속이려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지나간 기억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를 올바르게 분석하고 상대방의 거짓을 간파하여 올바른 판단으로 인도하는 지혜이다. 지성으로 쌓은 수많은 지식과 기억은 반작용으로 지혜를 가리게 되는데 이것이 망각작용으로 생기는 어리석음이다. 지성과 지혜가 올바르게 사용되어 빛을 발하려면 공감능력이 갖추어져야 한다. 공감능력은 지성과 지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깨달음을 실천하고, 그것을 타인의 이익으로까지 확장하는 힘이다. 홍익인간의 영성(靈性)이 이에 해당되는데, 그런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면 지성과 지혜를 자신의 욕망 충족 수단으로 생각하여 거짓과 위선으로 인간 세상을 나락에 빠트리게 된다. 누구나 크고 위대한 희망을 꿈꿀 수 있지만, 이처럼 실천하는 방법과 과정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환웅의 홍익인간교육으로 인류는 영성을 가지게 되면서 지성과 지혜를 얻게 되지만, 대신 기억력이 향상되어 자신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반고가 괴상한 술법을 즐겼다는 대목은 아마도 이것을 해결해 주었다는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대(相對)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기회로 자신의 탐욕을 취하는 일은 인간세계에서도 흔한 일이다.
천신(天神) 반고(盤古) 역시 하늘로부터 내려왔기에 유소환웅처럼 홍익인간의 이상을 가졌던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소(有巢)와 반고(盤古)가 서로 다른 캐릭터로 그려졌다는 사실은 두 인물이 그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는 의미가 된다. 즉 반고가한은 홍익인간 이상의 실천 대신, 지성을 자신의 욕망 충족 수단으로 생각하여 거짓과 위선으로 인간 세상을 나락에 빠트렸던 것 같다. 인간이 자신이나 주위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여야 반성하여 옳은 길로 나갈 수 있는 것이라면, 반고(盤古)가 인류에게 제시한 방법은 술법을 즐겼다는 묘사로 보아서 아마도 망각(妄覺)의 힘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신의 의지(意志)와는 관계없이 피할 수 없게 다가오는 견디기 힘든 현실의 고통을 잊고 참는데 망각(妄覺)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또한 순간의 욕심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으로 야기될 문제들에 대한 두려움을 외면하고 스스로를 지키는데도 망각(妄覺)은 가장 좋은 처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망각으로 일어난 사실을 은폐해도 기억은 쌓이고, 기억이 정보가 되어 지성이 되고 인격을 형성한다. 피할 수 없이 힘들고 견딜 수 없어 잊어버리고 싶은 순간에, 삶의 방향을 좌우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어쩔 수 없이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선택해야 하는 힘든 기억을 잊을 수 있도록 하여준다면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인류는 망각의 힘을 얻는 대신 욕망(慾望)이라는 마성(魔性)에 의한 업(業)을 지게 된다.
인류가 원래 동물이었을 때는 삶의 본능에 의하여 욕심을 내기는 하였지만, 천도(天道)를 지켜서 무작정 남을 죽이거나 해를 끼치지는 않았기에 생사(生死)의 공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망각이라는 도피처를 통하여 욕망(慾望)을 키우게 되면서 이기심(利己心)이 커져서 강한 탐욕(貪慾)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삶과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악행(惡行)을 서슴지 않게 되었다. 인류 스스로가 탐욕으로 행하고 망각하는 악업(惡業)이 지성이 되고 인격이 되어 생사에 대한 공포의 원인이 된 것이다.
어찌하였던 인류는 지성을 가지면서 지식(知識)을 활용하게 됨으로써 자연을 이롭게 사용하는 도구문명(道具文明)을 개발하여 상대적으로 열악한 신체적 조건을 극복할 수 있게 되며, 또한 종속보존의 본능에 의한 혈연적 집단이 아닌 자연환경을 이용한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사회체제(社會體制)를 갖추게 됨으로써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에 속하는 포식동물로 진화하게 된다.
지혜는 비슷한 말로 통찰(insight), 안목(discernment)이라고도 하는데, 때때로는 자신의 감정적인 반응을 통제하여 이성과 지식이 행동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누군가가 진실을 오도(誤導)하거나 왜곡하고 거짓과 기만으로 속이려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지나간 기억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를 올바르게 분석하고 상대방의 거짓을 간파하여 올바른 판단으로 인도하는 지혜이다. 지성으로 쌓은 수많은 지식과 기억은 반작용으로 지혜를 가리게 되는데 이것이 망각작용으로 생기는 어리석음이다.
지성과 지혜가 올바르게 사용되어 빛을 발하려면 공감능력이 갖추어져야 한다. 공감능력은 지성과 지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깨달음을 실천하고, 그것을 타인의 이익으로까지 확장하는 힘이다. 홍익인간의 영성(靈性)이 이에 해당되는데, 그런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면 지성과 지혜를 자신의 욕망 충족 수단으로 생각하여 거짓과 위선으로 인간 세상을 나락에 빠트리게 된다. 누구나 크고 위대한 희망을 꿈꿀 수 있지만, 이처럼 실천하는 방법과 과정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