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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격한 여행자 Oct 31. 2022

군중 밀집 사고,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후진국형 참사로 봐선 안돼”

[김보미의 도시&이슈]


지난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군중 밀집 사고입니다. 일상적으로 잦아진 행사, 축제 등이 소셜미디어로 퍼져 국내외에서 사람을 모으기 때문이죠. 지하철과 공연장 등에 일시적으로 운집하는 인원 역시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확장되기 마련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와 같은 군중 밀집에 따른 압사 등을 ‘후진국형 사고’로 볼 게 아니라고 분석합니다. 사회 변화와 지역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재난 대비가 필요한 때라는 겁니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신종 대형 도시재난 전망과 정책 방향’ 보고서를 보겠습니다. 발생 빈도는 낮지만 한 번 발생하게 되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성이 높아 피해가 광범위한 ‘신종 대형 재난’에 ‘압사 사고’가 포함돼 있다.


압사나 깔림 사고는 공연·체육·쇼핑 시설과 지하철역, 각종 행사·집회 등 한정된 공간에서 군중이 밀집해 혼잡이 생길 때 일어납니다. 최근 문화 축제나 공연 등이 크게 늘어나는 세계적 추세는 사고 발생의 잠재성을 키우고 있다고 판단한 셈이죠.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등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워요. 서울 도심 명소는 전 세계에서 찾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K문화가 사랑받는 지금, 코로나19 관련 방역 지침이 해제된 서울 도심에는 이전보다 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보입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도시에 운집하는 인파의 규모는 과거보다 커졌습니다. 특히 이번 핼러윈은 3년 만에 거리두기 없이 맞는 기념일이었죠. 코로나19 확산 이전보다 이태원으로 핼러윈을 즐기러 온 사람들은 30% 이상 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서울연구원의 보고서는 이같이 변하는 도시 여건에 따라 재난의 특성을 파악해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취지로 작성됐습니다. 다양성이 커진 사회는 돌발 상황과 재난 역시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입니다.


이번 참사와 같이 야외 상황뿐 아니라 실내 밀집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재 등으로 지하철역 내 대피 상황이 위험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출퇴근길과 같이 적정 인원의 300% 수준으로 승객이 몰리는 시간 지하철 객차 내부에서도 압사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보고서는 많은 인파가 출구 등으로 향할 때 앞쪽의 보행 진행 상황을 볼 수 있는 폐쇄회로(CC)TV가 있다면 통행에 도움이 된다고 제안합니다. 또 계단 마지막 단에 돌출부를 만드는 식으로 땅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대피로를 찾을 수 있도록 역사 설계를 개선하는 방법도 제시하지요. 평소에 천천히 걷는 캠페인과 스마트폰만 보면서 전방이나 주변을 살피지 않고 좀비처럼 보행하는 '스몸비족'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안전 표지판을 노출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태원 세계음식특화거리는 좁고 경사진 골목길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몰리는 크리스마스, 연말, 핼러윈 시즌에는 보행 공간이 충분하지 않죠. 사진 출처 : 용산구 홈페이지

                                             

2005년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는 방송국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지역에서는 흔치 않게 직접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였죠. 출입구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문이 열리자 한꺼번에 몰려든 바람에 이번 이태원 현장과 같이 압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경원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이 사고를 다룬 논문(2007년, 대한응급의학회지)에서 “압사는 행사뿐 아니라 대규모 군중, 인파가 밀집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상주 사고는 당시 구조가 지연된 요인 중 하나로 경찰의 현장 통제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 점을 들면서 “대형 군중 모임에 앞서 행정 당국과 경찰, 소방, 병원 등이 지역 실정에 적합한 재난 대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하지요.


도시의 규모와 지역에 상관없이 어떤 기초지자체라도 이런 인적 재난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도시 사람들의 생활이 변화하면서 밀집도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압사 사고를 단순히 ‘후진국형 참사’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시각은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은 “후진국형 사고라는 인식은 결국 국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 책임을 국민에게 미룰 여지가 있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시민을 교육하고 계도해 해결할 문제로 축소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양한 사람들, 즉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운집하는 새로운 시대. 지금에 맞는 대책을 고민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와 규모의 변화에 따라 새로 등장하는 위험을 꾸준히 찾아 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뉴욕과 도쿄 등에서는 매년 핼러윈 기간에 맞춰 늘어나는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해마다 군중 경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올해 뉴욕시는 100여 개 거리를 폐쇄해 차량 진입을 막는 식으로 보행 흐름 개선하고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습니다. 핼러윈에 100만 명 안팎의 사람들이 찾는 도쿄 시부야에서 가장 붐비는 스크램블 교차로에는 'DJ폴리스'라고 불리는 경비 담당이 보행 흐름을 통제하고 사람들의 이동을 돕습니다.


대도시의 이 같은 노력은 사람이 몰리는 현상을 행정 당국 등의 체계적 관리를 통해 시스템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방증이겠죠.


특히 지금은 가장 경각심을 가질 때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가 거리두기 해제 후 외부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 위험도는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지난해 4월 이스라엘 북부 메론산에서 사상자 100여 명이 발생한 압사 사고 역시 코로나19 제한 조치 해제 이후 가장 큰 종교행사가 원인이었습니다. 당국은 1만 명까지 집회를 허용하며 5000명의 경찰력을 동원했지만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운집하면서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죠.


조성일 원장은 “이태원 사고 피해자 가운데 외국인이 많았던 것처럼 여러 국적이 소통하는 새로운 현상은 새로운 위기 요소가 되기도 한다”며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사고 당시 현장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지자체가 (도시 환경 변화로) 기존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 등을 인지하고 사전에 경찰에 인력을 요청하거나 재난 당국이 관리 지침을 내리는 등의 구체적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자체가 경찰과 정부 부처와 협조해 방역 활동을 했던 것처럼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현상과 사안에 대응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2020년, 2021년 핼러윈 기간 이태원 세계음식특화거리에는 구청과 상인회가 전신 소독을 위한 ‘방역 게이트’를 설치하고, 서울시가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방역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또 음식점 영업시간 제한에 따라, 오후 10시 이후 경찰이 골목 출입을 제한하기도 했어요. 올해 참사가 발생한 그 골목에서도 말입니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용산구청은 이번 사고가 '주최' '주관'이 없는 행사라 책임을 질 '주체'가 없다고만 말합니다. 하지만 방역 역시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사람들의 안전과 일상을 지켜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행정을 바꾸고 기준을 움직여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며 도시의 방역 체계를 만든 것이죠. 


앞서 인용한 서울연구원의 보고서는 “전통적인 시설물 중심의 구조적 대책뿐 아니라 도시 환경의 다양한 물리적 영역, 위기관리체계, 사회경제적 역량 등 비구조적 대책을 병행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3년 만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핼러윈. 사람들과 대면해 밤거리를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 도시의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요소는 앞으로도 일상적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군중 밀집 사고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재난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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