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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격한 여행자 Mar 14. 2023

저출생과 재건축의 연결고리

서울의 인구 감소와 도심 개발

2022년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 인구 1000명당 4.9명이 태어나 2012년 48만명에서 10년 사이 반토박이 났습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숫자인 합계출산율로 보면 0.73명까지 떨어져 인구는 빠르게 줄고 있지요.


일하며 아이를 키우며 살기가 버거운 세상이 된 것이 원인이라지만, 역설적이게도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오는 서울의 사정이 가장 심각합니다. 합계출산율 0.59명. 전국 최저치입니다.


사람이 없어 지역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은 지방의 이야기만은 아닌가 봅니다. 인구 1000만명이 산다는 서울에서도 '사람이 너무 없다'는 지역이 있다고 해요. 무슨 의미일까요?


“중구에 오신 여러분을 두 팔 벌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2월24일 금요일 저녁. 서울 중구 을지트윈타워 아트홀에 모인 200여명을 향해 반가운 인사와 함께 팡파르가 울렸습니다. 신당동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 교사와 학생이 첼로·피아노 연주하고, 을지로 골목 와인바 사장님이 공연으로 행사가 시작됐어요. 중부·인현시장의 맛집, 철공소 골목 등 동네 소개에 이어 중구청 담당 공무원이 앞으로 을지로 일대가 어떻게 개발될 것인지 자세한 계획을 설명하네요.


참가자들에게 1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각종 지원도 소개합니다. 출산·육아 정책, 걸음 수에 따라 지역상품권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일리지 등 동네에 살면서 알뜰살뜰 받을 수 있는 혜택도 안내를 합니다. 행사는 청소기, 오븐, 에어프라이기 등을 추첨해 나눠주는 이벤트로 끝이 났어요.

이토록 ‘격하게’ 환대를 받은 이들은 2023년 2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인현동2가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614가구)와 입정동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1022가구) 아파트의 주민들입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구청이 현장 민원실을 차리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렇게 성대한 별도의 환영회까지 여는 것은 서울에선  정말 드문 일이네요.


‘세운지구 청년 주민 입주민 환영식’ 준비에는 중구청의 인력과 자원이 총동원됐다고 해요. 자치행정과·복지정책과·가족정책과·홍보담당관·도심재정비전략추진단 등 여러 부서가 공동으로 준비했고, 당협위원장·시의원 등 지역구 정치인들도 모두 참석했지요.


지역에서는 1600여 가구의 신규 유입이 그만큼 특별한 일이었어요. 중구 을지로동의 거주 인구가 1294가구, 1700명이거든요. 아파트 3개 동에서 약 2000명 전입하는 건 상당한 규모인 거죠. 김길성 중구청장은 “주민 유입이 가장 고민하는 정책인 만큼 귀한 입주민들”이라며 “(행사 전날) 설레어 잠을 못 잤다”고 할 정도였지요.


서울 중구의 총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12만437명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적습니다. 인구가 가장 많은 송파구(66만4514명)의 20% 수준이고요. 소공동은 을지로동보다 거주자가 더 적은 총 1268가구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역대 최저 출생률을 기록한 서울에서 업무용 건축물이 주를 이루는 구도심 중구는 다른 자치구보다 먼저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대규모 주거 단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도심권 개발 제한에 막혀 기존 주거지가 노후화되면서 인구 이탈이 가속화된 것이죠.


10년 전보다 인구가 7% 이상 줄어 2016년 20대 총선부터 성동구갑 선거구 일부와 통합돼 국회의원을 뽑는 인구 미달 지역이기도 해요. 지방뿐 아니라 서울 안에서도 ‘소멸’을 우려하는 지역이 있는 겁니다. 특히 이번 세운지구 신축 아파트는 20~40대 주민 비율이 71.87%나 됩니다. 젊은층이 귀한 요즘 더 희소식인 거죠. 전용면적 24~59㎡ 소형 평수 중심이어서 1인 가구와 신혼부부가 대부분이라서 그렇다네요.


이들이 중구에 얼마나 잘 정착하는지는 향후 추진될 예정인 지역 도심 정비사업들의 성패를 가늠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규제 완화로 서울 곳곳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추진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중구가 위치한 도심권의 경우 서울시가 개발 과정에서 녹지를 확보하면 높이 제한을 없애 주는 식으로 정비 방향을 설정하면서 사업성이 높아졌고요. 중구는 세운지구를 포함한 약수·청구·신당 등의 노후 주거지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죠.


세운지구 입주를 앞둔 주민들은 “집에서 광화문 직장까지 걸어갈 수 있어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 최대 장점인 것 같다”거나 “종묘를 거실에서 볼 수 있는 위치인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주변이 빨리 개발돼 오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이어졌던 부동산 가격 급등은 서울 도심에서 노후 아파트뿐 아니라 낙후 지역을 개발해야 한다는 열망에 불을 지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집값은 하락세로 전환됐지만 '그래도 개발은 해야 하지 않나' '이참에 안 하면 언제 하겠냐'는 인식이 여전한 우세한 상황입니다. 특히 지난해 부동산 열풍 한가운데서 치른 지방선거 당선자들인 현 자치장들은 '민의'를 따라야 한다는 명분도 있는 셈이죠.

연도별 출생아 수와 사망자 수 추이. 2020년 자연 감소가 시작됐다. 통계청 자료

서울 자치구들이 재건축·재개발을 전담할 조직을 잇달아 만들며 정비사업 추진에 힘을 싣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안전진단 기준 완화된 데다 자치구 재량권도 커져 '개발의 적기'인 지금을 놓치지 않겠다는 거죠. 지난 선거 때 이슈가 ‘부동산 공약’으로 수렴됐던 점을 생각해 보면 구청장들 의지가 크게 반영됐을 겁니다.


최근 서울시 주거환경정비 조례가 개정됐어요. 자치구가 융자를 통해 재건축 안전진단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바꾼 거에요. 재건축을 원하는 단지는 토지 등 소유자 과반수 이상 동의를 받으면 1회에 한해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돈은 사업시행인가 전까지 현금으로 반환해야 합니다.


2023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이 조례 계정을 위해 노원구는 2023년 초에 한 달간 7만명이 넘는 주민 서명을 받았다고 해요. 국교부 기준이 지난해 이미 완화됐고, 상위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 지자체가 관련 비용 지원하도록 허용하는데 서울시 조례만 막아서 지역 재건축이 지연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조례가 주민 부담을 강제해 안전진단을 위한 수억 원을 모금하는 단계에서 갈등이 생겨 일이 진척이 안 된다는 겁니다.


서명운동의 주축은 민간단체·전문가, 국회의원과 시·구의원 등 85명으로 구성된 노원구의 재건축·재개발 신속추진단이었죠. 노원구는 30년 지난 아파트가 55개 단지에 7만4000여 가구가 삽니다. 주거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인근 신도시가 생기면서 인구 유출이 상당했다고 해요. 이 같은 현상을 막으려면 재건축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2022년 9월 전국에서 처음 추진단을 만들었습니다.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들의 재건축을 앞둔 양천구도 16명 규모의 ‘공동주택 안전진단 자문단’이 꾸렸습니다.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위한 안전진단 요청이 들어오면 현장을 조사해 실시 여부, 결과 보고서 적정성 등을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요. 구청장 직속 도시발전추진단, 총괄건축가 제도도 도입해고요.


총괄건축가는 공공건축과 도시계획 사업의 기획·설계 단계부터 시공에서 운영까지 모든 단계에 참여해 통합적인 관점에서 조정과 자문을 한다고 해요. 


이런 전담 기구의 목적은 하나, 갈등은 없애고 절차는 빨리 진행해 재건축 속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2022년 전국 시도별 합산출산율. 통계청 자료

2022년 9월 관련 전문가 20명으로 ‘재건축드림지원TF’를 구성한 강남구는 이 전담팀에 지역 내 39개 정비사업 단지 조합장, 임원 300여명의 교육을 맡겼습니다. 분쟁 예방과 대응이 주요 내용으로 역시 '속도전'에 대비한 것입니다. 구로구도 도시계획, 건축 분야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 3명을 임기 2년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지원단으로 구성했어요.


강북구도 주택 정비 사업 관련 갈등을 조정하고, 소음·교통·감정평가 등에 전문 상담을 할 재개발·재건축지원단을 구청장 직속으로 꾸릴 계획이고, 정비구역 현황을 분석해 사업 계획을 제시하는 한편 신규 정비 사업 대상지도 발굴한다고 하네요.


정비사업을 둘러싼 이런 움직임에는 지난해 6·1지방선거에서 ‘부동산 표심’이 당락을 가르는 핵심 변수였다는 점이 작용했습니다. 재건축·재개발 공약을 부각해 당선된 구청장들 입장에서는 규제가 완화된 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실제로 최근 아파트 매매가는 큰 폭으로 하락하고 미분양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재건축 심의나 완화된 안전진단 기준을 통과한 노후 단지는 들썩이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신축 아파트 분양에 2만명이 청약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한 자치구 재건축 업무 관계자는 “주택 정비는 1~2년 새 끝나는 사업이 아니니 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한다”며 “좋은 분양가로 조합원 분담금을 줄이는 것이 관건인데 지금 시장은 어렵지만 수년 후 분양할 때는 좋은 때가 올 것이라 보고 추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중구의 사례처럼 주거용이 아니었거나 용적률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노후 단지 개발은 인구 유입의 효과가  실제로 상당합니다.


2022년 기준 주민등록인구 총 65만8800명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인구수가 가장 많은 송파구만 봐도 그렇습니다. 사실 송파는 2008년 이후 줄곧 서울 최대 인구가 사는 자치구이긴 합니다만, 2022년엔 2위인 강서구(56만9166명)와도 10만명가량 차이가 벌어졌어요.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시·도 단위를 제외하고 인구가 가장 많고요.


주민의 평균 나이도 42.6세로 서울 평균(44세)보다 낮죠. 만 19~34세 청년도 총 14만7472명으로 관악구(16만7463명)에 이어 2위입니다. 


인구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한 지역은 거여동과 위례동인데, 2022년에 거여2-1구역이 재개발되면서 거여동은 4938명이, 신도시가 조성된 위례동은 5382명이 늘었거든요. 송파구 관계자는 “위례 신도시 조성에 따른 결과로 재개발·재건축 추진과 정주 여건 개선 노력이 가시화됐다고 본다”고 설명합니다.


서울에서도 인구 감소가 당면 과제가 된 때 개발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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