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인과 함께 들른 절에서 오랜만에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상(相)을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작은 깨달음.
‘세상을 살지 말고 나를 살아야 한다’는 말조차 하나의 상(相)이었다.
마음 건강을 위해 가끔 찾던 심리상담이 나의 이해에는 도움 되지만,
어느 순간 마음건강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왜 그럴까?
수십 가지 생각의 갈래를 언어화하지 못해 생기는 소통의 오해.
납득시켜야 하거나, 조언받아야 하는 행위,
무언가 맞는 방향이 있을 것이다!라고 단정 짓는 행위,
그 또한 하나의 상(相)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쏟아지는 사건과 마음의 파도에
맞서거나, 유려하게 그 흐름을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하나의 상(相)을 만드는 행위라는 생각.
시공간의 흐름안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데,
주어진 파도에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불변의 진리를 찾아 헤맸던 것이 아닐까?
주어진 흐름을 지금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오늘 할 수 있는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상에 있어 내세를 규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어느 쪽이 도움 되냐는 질문에
‘내세라는 상(相)도 내려 두라’는 말씀이 여러 갈래의 막힌 길을 뚫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