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커피숍이 또 들어섰다.
지난번 커피숍이 망한 자리에 새로운 커피숍이 들어선 것이다.
지난번 커피숍은 지지난번 커피숍이 망한 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이번 커피숍 사장님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포마드로 깔끔히 머리를 정돈하고, 수염도 잘 정돈되어 있다.
커피숍 간판에도 사장님 캐릭터가 각인되어 있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3년차.
이제는 그 자리가 다른 커피숍으로 바뀌지 않고 정착했으면 싶다.
하지만 오늘도 커피숍에는 손님이 없다.
내부 인테리어까지 많은 돈을 들여 공사했건만,
주차장이었던 공간까지 허물어 손님 테이블을 넣어두었건만,
손님이 오지 않는다.
‘혹시 맛이 없는 걸까?’
점심을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본다.
맛있다.
지난번 커피숍도, 지지난번 커피숍도 맛있는 커피였다.
깔끔한 사장님, 분위기 있는 내외부,
바로 옆에 소문난 맛집이 있고 앞에는 커다란 성당도 있다.
목도 좋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텅 빈 커피숍,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장님.
길을 지나며 텅 빈 가게를 쳐다볼 때면 마음이 쓰라리다.
좋은 작품을 내고도 관심을 받지 못해 팔리지 않는 책을 보는 느낌,
아니 그것보다 더 한 감정.
어느샌가부터 식당과 거리 커피숍을 쳐다보는 게 무서워졌다.
저들은 어떤 믿음으로 식당을 내고, 장사를 하는 것일까?
돈까스 집에도 파리가 날린다.
야간에 문을 열고 술장사를 하신다.
어느새 간판도 포차로 바뀌어있다.
처음에는 손님이 제법 있더니 요즘엔 다시 파리가 날린다.
쳐다보는 것이 고통스러워 시선을 돌리고 걷는다.
결과가 나오지 않는 모든 것을 노력 탓으로 돌릴 수 없다.
대다수의 성공은 시기와 운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작가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
혹은 독자들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시기에 작가였던 사람들,
혹은 단순히 개인의 삶의 때가 맞지 않았던 사람들 등.
운도 불행도 변수다.
성공에 취해있는 사람, 실패에 길들여진 사람
비슷한 형질의 에너지다.
자만과 자학사이 어딘가,
커피숍을 나서며 입이 근질거린다.
‘사장님 커피 맛있어요.’
그러나 이 게 정말 그를 위한 말일까?
나를 위한 관조적 위로이지 않을까?
고민하다 입을 닫는다.
‘인정욕구 라거나 잦은 죄책감이 나를 괴롭힐 땐 주로 입을 닫습니다.’
어두운 에너지는 말로 넘친다.
작은 선택이 모여 만드는 태도가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