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알아서 병원에 가기.

당장 병원에 가지 않으면 더 힘들어진다.

by 이오십

감기가 정말 독하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축 처지고 -병원에 가야 하는 걸 알지만 병원까지 과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를 걱정할 정도로 머리가 어지럽고 목은 심하게 부었다. 굳이 감기에 걸린 이유를 찾자면 토요일 새벽 내내 해야 할 일을 하다가 어쩌다 보니 잠을 아주 조금밖에 못 잤고, 그날 밖에서 찬바람을 오래 맞아서 그랬다.


월요일은 진짜 아무것도 못하고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이틀 치 약을 받아왔다. 약 먹고, 잠자고, 약 먹고, 과제하다가, 잠자고, 약 먹고, 잠자고 샤워하고, 잠을 잤다.

화요일도 월요일이랑 비슷했다. 이렇게 어지러울 정도로 아픈 건 오랜만이었다. 약 먹고, 앉아있을 기운도 없어서 쓰러져서 자다가 약 먹고 또 자고. 약을 더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또 다른 병원에서도 진료를 받았다. 두 번째 병원에서 받은 약이 좀 더 효과적이었다. 목 안쪽이 붓고 수포도 생겨서 침 삼키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참을만하다.


나의 경우엔 아프기 전에 감성적이게 된다. 서운한 게 많아진다. 그래서 그런 징조가 보이면 곧 병원에 가야겠단 생각을 한다.

어지러움이 심해서 거의 기다시피, 비척거리면서 20분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의 이비인후과에 좀비처럼 걸어갔다. 날도 추웠는데 왜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냐면… 근래에 딱 하나뿐인 체크카드를 잃어버려서 교통카드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교통카드가 지갑에 따로 한 장 있는데, 그땐 그것도 생각 안 날 정도로 많이 아팠다.


그래서 오늘은 아픈 와중에도 병원에 걸어가는 굳센 의지를 칭찬하고 싶다. 위기 상황에 도와줄 사람이 없는 1인 가구는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알아서 몸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이 방에서, 이 집에서 아픈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왠지 모를 서러움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에너지를 써서 병원에 다녀온 뒤 집에 도착하면 내가 가장이 된 느낌이 든다.


솔직히 위급함이 더 컸다. 몸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조금만 미적거리면 정말 119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긴박함.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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