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qua - 류이치 사카모토
개인의 불행의 크기를 타인의 불행과 비교할 수 있을까. 사실 개인이 느끼는 불행이 얼마나 크고 얼룩덜룩하던지에 상관없이 타인은 공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는 내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개인의 불행을 굳이 이야기하는 것 따위는 하등 쓸모없는 일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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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면서 생각했다. 차라리, 차라리 내가 우울증이라고 진단받고 약이라도 먹고 있었으면 좋겠어.
샤워를 하면서 생각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울분이 차오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고.
별거 아닌 일인데 왜 이렇게 억울함을 느끼고, 상실감을 느끼는 걸까.
나는 오늘 크게 우울했는데, 그 이유는 이루지 못한 꿈과 현실의 불만족, 가족들에 대한 불신, 실망 등이 겹쳐져서 그렇다. 아침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많이 났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루를 보낼 순 없었다. 어제 화가 그렇게 났다고 오늘 하루를 망칠 수는 없다.
천변에 나가서 한 시간 반 동안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듣다가 여전히 나는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싫어서 이어폰을 뺐다. 풀벌레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잠자리가 빙글 대는 모습, 햇빛이 물결 따라 부서지는 풍경, 긴 아파트 그림자, 꽃 향기...
코스모스를 잔뜩 심어놓은 구간이 있었다. 50대에서 60대 부부 모임인지, 어른 열댓 명이 꽃밭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기분 나쁜 있었어도 지금은 웃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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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네가 이상해서야."
"네가 예민해서 그런 거지, 좀 세상에 맞게 둥글어져 봐."
"네가 좀 더 잘했었어야지."
"네가 문제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방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 못 할 이상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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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선의를 가지고 행한 일이다, 그런데 왜 나의 선의를 받지도 않고 화를 내느냐.
나는 이런 방식의 배려가 최악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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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에서 영규의 아내 영희가 같은 회사 선배가 사장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영규에게 혼잣말하듯이 묻는 말이 있다.
"착한 척하는 나쁜 놈은 착한 놈이에요, 나쁜 놈이에요.?"
당연히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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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는 두 딸이 있다. 하나는 집 밖에 나가서 독립해 사는 큰 딸, 하나는 집을 벗어나지 못한 둘째 딸.
큰 딸에게는 뭐가 그리 미안한지, 뭐가 그리 죄송한지 무지하게 잘 맞춰준다. 나가살기 때문에 먼저 첫째 딸이 둘째 딸의 영역을 건드려서 화가 나게 만들었어도 둘째 딸은 기분 풀고 첫째 딸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길 바란다.
엄마에겐 늘 첫째 딸의 감정이 둘째 딸의 감정보다 우선이었다. 서슴없이 본인이 느낀 불편함을 표현하는 첫째 딸과 본인이 불편해도 그 감정을 적당히 억누르거나 감추는 둘째 딸은 달랐다.
당연히 화산처럼 폭발하는 첫째의 감정에 대해서 더 잘 이해했던 것 같다.
둘째 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으로서 오히려 둘째는 그 방식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본인이 불편해도 넘어가고, 잊어버리는.
습관처럼 엄마는 둘째 딸의 감정을 무시하고 오로지 추석 연휴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돌아가는 첫째 딸의 마음에만 신경 썼다. 왜 언니에게 감정이 상했는지, 얼마나 불편했는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런 엄마가 싫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감정적으로 완전히 등 돌리게 된 것 같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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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노력하고 싶지도 않다. 내 감정이 어떠했기 때문에 내 행동이 정당했는지 설명하려는 노력도 지겹다. 엄마 말로는 언니는 집 밖에 나가 살기 때문에 집에 온 잠깐이라도 기분이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집에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감정소모를 느끼는데, 솔직히 억울하기까지 하다.
아빠는 퉁명스러운 내 태도에 대해 불편감을 느낀다. 예의 없어 보이는 삐뚤어진 태도. 확실히 20대 후반이 부모에게 보일만한 성숙한 태도가 아니긴 하다.
만일 내가 관계에 능숙했다면, 애초에 언니가 내 기분을 나쁘게 했을 때 바로 언니에게 "그런 식으로 굴지 말아줘."라고 말하고 끊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복기하는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싶다.
오히려 언니는 따로 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분리되어서 본인 집에 가면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를 즐기고 산다, 엄마가 생각하는 '외로운' 사람이라기보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지 보기보다, 잠깐 보이는 걸로, 잠깐 대화했던 내용으로 그 사람을 마음대로 그린다. 엄마가 볼 때 언니가 얼마나 가엾었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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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늘 성숙하게 행동하길 원했다. 먼저 사과하고, 먼저 양보하고, 먼저 화해의 손길을 건네고... 꼬장꼬장한 첫째보다 유순한 둘째 다루기가 더 편했겠지.
엄마를 기쁘게 하거나 마음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내 마음은 안 그런데, 대인배처럼 굴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역할도 싫다.
나는 유순해 보였던 것일 뿐이지 속은 언니 이상으로 꼬장꼬장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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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러는 거 피해의식이야."
"자꾸 트라우마다, 어쩌다 그러는데. 그건 다 지난 일이야. 왜 이제 와서.."
피해의식일 수도 있다. 사람이 미래를 보고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 과거를 바라보고, 원망하고 후회한다.
피해의식이 맞는 것 같다. 근데 내가 왜 이러는지 알까?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한데 일단 말한다고 내 말을 들어줄 거란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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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진 않다.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아니지만.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내 감정에 신경 안 쓴다고 해도 괜찮다. 굳이 말할 사람 없어도 괜찮다. 물론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날 오해하지 않을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진다.
궁금증이라는 단어로 둔갑시켜 본인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려는 관계 말고. 물론 그 사람들도 내가 좀 어른이 되길 바랄 수 있는데 그건 약간 본인이 피곤해서 짐을 덜어버리고 싶어서, 에 가깝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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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사람을 미워하게 됐을까.
아무도 날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날 이상하게 보는 모든 사람들을 미워해버리면 속이라도 편할까 싶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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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손에 꼽게 화가 많이 난 날이었다. 화를 내면 심장에 과부하가 걸린다고 한다. 화가 났구나, 화가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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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LmgWxezH7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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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쟤는 저만큼 하고도 이만큼 가져가는데
왜 나는 저만큼보다 더 했는데 조금도 손에 쥐어지지가 않는 것 같지.
가장 쉬운 건 내 노력에서 답을 찾는 일이다. 내가 부족한 게 내 노력이겠지.
하지만 그건 부분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노력의 문제는 전부일 수가 없다.
아무튼 나는 그래서 화가 났던 것 같다. 겸사겸사. 나는 왜 화도 겸사겸사 내게 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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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나쁜 사람은 차라리 괜찮다. 조심하거나 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착한 척하는 나쁜 사람은 모호해진다. 왜 나쁜 건지 설명하지 못하면 떼어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얼굴에서는 온갖 나쁜 사람들이 떼거지로 나온다. 그냥 다 나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스포일러 주의.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아픈 가정사도 이용하는 파렴치한 다큐멘터리 PD, 장례식장에서 상속포기각서 얘기먼저 꺼내는 파렴치한 친척, 비웃는 사람, 조롱하는 사람, 이상성욕 성범죄자, 소문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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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보다 더 무섭게 본 영화였다. 기분이 아주 찝찝해지긴 하지만 영화를 본 상대와 대화할 거리가 풍부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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