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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과제.

Familia - Millennium Parade

by 이오십

좀 생각이 필요하다.


나는 추석인 어제 기분 나빴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대답하길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질질 끌려 나오는 기분은 뭐랄까.. 모욕적이기도 하고 수치스럽다.


내가 예민한 건가, 아니면 자기 연민 때문에 그런 건가. 잠깐 생각해 봤다. 내가 기분 나빴던 건 내가 예민해서도 아니고, 내가 나에게 연민을 가져서도 아니다. 그냥 상대방이 무심하게 폭력적이었을 뿐이다.


*


어제 오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고 오후에는 외할머니 댁에 갔다. 오래간만에 본 친척 어르신들은 여전히 어색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난 어색함이 싫지 않다.


오후에 외할머니 집에 가서는 가자마자 마당에서 마늘껍질을 깠다. 누가 시켜서는 아니고 아빠가 마당에서 마늘을 까고 있길래 옆에서 같이 깠다. 내년에 심을 실한 마늘은 분류해 두고 조그맣거나 얇실한 마늘은 요리하기 편하게 미리 껍질을 까두는 것이다.


외할머니 집에는 첫째 삼촌네 가족, 둘째 삼촌네 가족들이 모여있었다. 사촌동생들은 방에 들어가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거나 꿀맛 같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할머니는 거실 tv 앞에 앉아 멍하니 앉아계시고, 숙모는 주방에서 분주히 점심에 먹을 제사음식을 데우고 있었다.


다 같이 둘러앉아 식사하기 위해 앉은뱅이 식탁 세 개를 펴고 구석구석 행주로 닦았다. 수저와 젓가락 13쌍을 놨다. 할머니 드실 물 한 잔을 따르고 밥을 먹었다.


*


그리고 언니는 대뜸 나를 불렀다.


- 추석이니까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앉아봐.


눈을 번뜩이며 나를 불러 앉히는데 나는 벌써 불편했다. 느낀 감정? 무서움. 왜? 갑자기.


- 너, 평소에 뭐 하고 다니는지 말해봐.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언니는 내 대답을 유도하려는 듯이 또 다른 질문을 했다.


- 너는 네 행복이 뭐야?


내가 또 대답하지 못하자, 언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게 좋더라고. 처음 가보는 거리도 걷고, 낯선 곳에 가서 새로움을 느끼는 거?"

그리고 내 대답을 기다리듯이 한 템포 쉬었다. 대답이 나오지 않자 언니는 또 자신이 생각하는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말하면 사람들이 신나게 웃어주는 게 좋아."


나는 딱히 대답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대답이 상대방에겐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대답이기 때문에. '여행은 삶에 여유만 있다면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거고, 누구나 말할 때 상대방이 웃어주면 좋아해.'

나는 외려 물었다. "이런 질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다들 쉽게 대답해?"

옆에서 마늘 까고 있던 아빠도 난감해하는 내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대부분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이긴 해."


- 자신이 행복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런 게 중요하니까 물어보는 거지.


솔직히 난 여기서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일단 대화의 시작부터가 싫었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물어볼 게 있으니까 좀 앉아봐. 이것부터가 나는 좀... 글쎄. 나도 태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싫은데? 왜 앉으라 마라야. 이렇게. 아무튼 간에 언니가 시작한 대화는 강제로, 언니에 의해 이어지고 있었다.


- 네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모습이 뭔지 말해봐. 그러니까, 너는 조직이 좋냐고, 아니면 개인 사업자인 게 좋겠냐고.


나는 또 언니가 싫어하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둘 다 괜찮지. 둘 다 장단점이 있으니까."

언니는 또 눈알을 희번뜩하게 굴렸다. 과장이 아니고 진짜로.


나는 이렇게 캐물어지는 게 싫다. 특히 언니에게.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뒤에는 친척들이 있었다. 나와 언니의 대화를 듣고 있는지, 보고 있는지 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쪽을 등지고 앉아있었기 때문에. 나는 언니에게 대답을 강요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요즘 뭘 하고 지내는지 말했다. 언니와의 대화가 친척들에게까지 들리지 않길 바라면서, 부디 언니와 나 사이의 긴장감을 들키지 않길 바라며.



듣던, 말든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가 바라는 삶이 어떤지, 또 내가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타인에게 들리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1대 1로 조용한 곳에서 물어도 말하고 싶지 않은데.


솔직히 나는 현재 내 삶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직업이 없는 백수라는 사회적 신분. 그게 현재 나의 생활에 설명하고,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야 하고, 타인에게 궁금증을 해소시켜줘야 하는 이유가 된다면 더더욱 수치스러웠다. 대체 왜?


언니의 호기심? 궁금증? 불안해소? 를 위해 내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불편해지는 것이었다. 물론 언니의 동기는 '선한 것'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느낀 불쾌한 감정을 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


내가 말을 하면 타인은 해석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평가가 이뤄진다. 그래서 나는 더욱 말하기 싫었다.


*


물론 나도 내 단점을 아주 잘 느낀다. 상대방을 과거의 기억으로 재단하고 이 말을 하면 상대는 어떻게 대답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편이다.


*


나는 그 대화를 마치고 싱숭생숭했다.


왜 언니는 그때, 왜 거기서 나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졌는가.

고의인가?

목적이 뭐길래?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것을 알긴 했을까?


어제 오후의 날씨는 흐렸다. 비는 오지 않았는데 구름이 잔뜩 끼어서 우중충했다. 이어폰을 꽂고 스도쿠를 풀었다. 그래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


집에 돌아와서 나는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내가 기분 상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왜 상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아마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와 있는데도 언니는 콧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언니에게 말했다.

"친척들 앞에서 내가 수치스럽게 여기는 부분을 집요하게 물어보니까 불쾌했어."


언니의 반응은 어땠더라...

사과했다. 그럴 수 있겠다,라고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대화를 이어갔다. 왜 그렇게 물었는지, 자신이 가진 불안과 걱정을 이야기하며.



*


언니는 내가 독립하는 문제를 가족 공동의 문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동의 문제라는 게, 부정적인 problem이라기보다는 mission, quest라는 의미고, 안정적인 개인으로써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현재 가치관이 어떠한지, 무얼 하고 지내는지, 뭘 했을 때 행복한지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본인은 뭘 도와야 할지 몰라서 나에게 묻는다고 한다.


*


솔직히, 난 고맙긴 하지만 고맙지 않다.


공동의 문제라는 단어에서 내가 느낀 건 '다르다.'였다. 나는 언니가 독립할 때도 그게 '공동의 퀘스트'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언니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나머지 구성원들은 그 한 명을 위해서 소소하게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테면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구성원이 있다면 다들 밤에는 조용히 있어주고, 시험을 보러 가는 날에는 차로 태워다 주고, 어디 갈 일이 있으면 조언을 해주고... 그런 식으로.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의 배려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싫었다.


누군가가 수능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극도로 예민하게 굴면 구성원 중 누군가는 그 성질을 받아주는 것도 배려라고 퉁칠 수 있게 되는 거고, 누군가가 시험 보러 가는 날에는 다른 누군가가 시간을 빼서 그 사람을 데려다줘야 하는 거고... 희생이다.



*


언니는 중고등학생 때 많이 예민했다. 고등학생 때 고래등에 새우등 터진다고, 아빠와 언니는 자주 싸웠다. 소리를 지르고, 문을 부순다고 하고, 욕하고... 언니는 나에게도 까칠했다. 째려보고, 말을 무시하고, 본인이 필요해지면 나를 불렀다.


그때 나도 스트레스가 많았다. 엄마는 언니가 그렇게 구는 것에 대해서 가족 구성원들이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연민? 언니에 대해 연민을 가지면 가능했다.


하지만 나를 대할 때 함부로 대하는 건 내가 직접 짚어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떤 배려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아무튼 이건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하등 쓸모 없어진.


*


언니는 네가 원하는 걸 말하고 다니면 가족들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네가 이용하고 살라고 조언했다. 유연함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양심을 어기지 않을 정도로 굽실거리는 것도 오히려 필요하다고.


솔직히 나는 언니의 그런 점을 불편하게 여겼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것도 가차 없이 하는 그런 모습. 상대방의 감정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보는 것.

같은 편이면 이득이고, 개인전을 하면 머리 아파지는. 특히 어릴 땐 언니가 나와의 관계에서 더 개인전으로 인식하는 부분이 많았다.


모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모른 척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나는 언니가 상대방을 이용하는 걸 많이 봤다. 언니는 나를 이용하려고도 했다. 그럴 때 언니가 얄미웠다. 왜 저렇게까지?


자기 자신이 타인에게 불쾌하게 느껴질지라도? 어쩌면 내가 언니를 투영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과거의 언니는 나를 경쟁자로 생각했고 오히려 미워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언니가 나를 팀원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본인이 이타적이어야 이득 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히려 이렇게 구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진 않다.



언니는 글쎄.. 나에 대해서 아무리 기분상하게 해도 그대로 있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언니는 종종 나에게 잘해주기도 했다. 취업해서는 15만 원짜리 전자책을 사줬고, 이번 명절에는 처음으로 용돈 15만 원을 줬다. 더 생각해 보면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언니에게 안 쓰는 데스크톱을 공짜로 넘겨줬고, 언니가 빌려달라는 책이든 옷이든 뭐든 빌려줬다. 더 생각해 보면 더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난 언니에게 바라는 게 없다. 아니, 바라는 게 있다. 상대방 기분 좀 살피며 대화하라는 거.



*


내가 가진 꿈같은 게 상대방에게 까발려지는 것도 싫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네 노력이 덜해야 하네, 더해야 하네 소리 듣는 것도 피곤하고, 어쩌면 내 고집스러움 때문에 언니와 더 상극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언니와의 대화는 서로의 성향차이를 파악하는 것으로 끝났다.

언니의 얼굴이나 비언어적인 모습을 봤을 때 나는 억울해한다고 느꼈다. 이것도 내 추측이다. 딱 한 줄만 쓰자면 '왜 이런 나의 선한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오해하는 건데?' 요정도이지 않을까.


*


좀 더 옛날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언니를 꽤 잘 따랐다고 한다.


엄마는 언니와 나를 키울 때 느낀 차이점을 말했다. 언니는 관찰력이 좋아서 사무실의 사물배치가 바뀌면 바로바로 알아보고, 부모님의 사무실이 월세라는 것도 일찍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나이를 꽤 먹고서도 부모님의 가게가 그냥 부모님 가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나를 초등학교에 보낼 때 얘가 제대로 뭘 하긴 할까 걱정했다고 한다. 뭘 해도 두 살 위인 언니 옆에서만 졸졸 따라다니고, 또 언니는 그런 나를 챙기고 그런 식이라서.

막상 언니가 초등학교에 갔을 때, 나는 혼자서 컴퓨터를 켜서 게임을 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걸 보고 '얘도 뭘 할 줄 아는구나.'싶어서 안심했다고 한다. 아빠는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그건 언니가 컴퓨터를 독점하고 있으니까 비키라고는 못하고 옆에서 기다리는 거지."


엄마는 언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언니가 동생인 나를 챙기고 다녔고, 동생인 나는 언니를 잘 따랐다,라고 정리한다. 한편으로는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오히려 내가 솔선수범했던 기억이 있다고… 굳이 말하진 않았다.


*


추석인데 이런 기 빨리는 이야기를 하게 되어 유감이다. 이건 어제(월)의 이야기일 뿐이고, 나는 오늘 내 삶을 살고 있다.



*


- 네가 히키코모리가 될까 봐 걱정 돼.

- 네가 잘 지내고 있는지, 직업적으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 앞으로 부모님이 사라지면 너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된 거야.


대화의 마지막에 언니는 이런 말을 했다.


난 언니의 걱정과 불안에 대해서 불쾌했다. 그건 왜인지 알겠다. 나 역시도 현재 내 위치에 대해서 불안함이 있어서, 안정된 삶을 꾸리는 게 빠르면 빠를수록 스노볼이 굴러간다는 걸 알아서, 지금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서 불쾌했다.


정리하자면 히키코모리가 될 수도 있는 너를 돕기 위해 자꾸 너의 안부를 묻게 된다... 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무 비꼬아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언니의 선의를 선의로 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생각은 그만두기로 한다.


*


어제는 스도쿠를 7개나 풀었다. 오늘은 빽다방의 녹차 빽스치노를 먹었다. 4500원에 녹차+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다니. 물론 혈당이 걱정되는 맛이긴 하다. 그래도 나는 빽스치노를 먹는 게 중요했다.



아침엔 3km를 달렸는데, 그게 참 기분 좋았다.


*


언니는 이런 소소한 걸 자신에게 공유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업데이트?..


어쩌면 오히려 내가 언니랑 일정 거리 이상 친해지길 바라지 않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내가 감정적으로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면 내가 나쁜 걸까?

오히려 가까워지려는 언니가 나쁜 걸까?


*


나쁜 사람은 없는데 안 맞을 뿐일 것 같다.


서로를 나쁜 사람 만드는 관계는 좋은 관계가 아닌 것 같다.


*


돌이켜보니 내가 가진 내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인식한다는 건 고마운 일인 것 같다. 근데 난 좀 자존심 상한다. 내가 언니를 나쁘게 보고 있단 건 알겠다.


오히려 내가 언니를 경쟁자이자 라이벌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유독 언니에겐 다 말하기 싫고, 도움받으면 지는 것 같고,..


아무튼 지금 상태는 이러하다. 내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일까?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면 나는 바뀔까? 모르겠다.


목표가 있고 우선순위가 있어야 도움받을 수 있다? 그냥 사랑하기 때문에 돕게 되는 게 아니라? 모르겠다.


오히려 이렇게 감정쓰게 만드는 게 더 별로다. 감정에는 솔직하게 반응하고 털어내버려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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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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