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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아니어도 그냥 하기.

Gameboy - KATSEYE

by 이오십

요즘 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및 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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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회성 없이 굴기도 하고, 다가와주기만을 바라고. 특히 누군가에게 먼저 나서서 돕지 않겠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댄다’고 생각하니까,라고 생각하며 소극적으로 굴었다. 그러면 좀 덜 튀겠지, 생각했는데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이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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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수’에 대해 편견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잉여인간, 부정적으로 보면 ’ 아무것도 안 하는 ‘. 생산성 제로의 인간.


특히 공부하는 백수에 대한 편견이 많았다. 그야말로 책상물림밖에 더 되겠나. 하면서..


막상 내가 이십 대 후반의 백수 위치에 갔을 때는 정작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해냈는지 평가하는 것조차 괴로워졌다. 여전히 주변의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에 대해 무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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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아저씨는 왜 저렇게 땅바닥에 앉아있어?’

‘학창 시절에 공부를 안 해서 그래. 그러니까 너도 저렇게 되기 싫으면 공부해.’


10년 전쯤에 인터넷에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였다. 요즘은 많은 교양인들이 계셔서 덜한 느낌이지만, 10년 전에는 더 적나라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는 아이였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불안함과 동시에 불쾌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내가 저 아저씨 정도 나이 되려면 멀었고, 지금 내가 이렇게 열심히, 바르게 사는데 저렇게 되겠어?’라고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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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단순히 그 편견에 대해서 ‘이건 자의적인 결과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우린 그 사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어.’라는 식의 교양을 사회구성원들이 학습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백수가 공부하면 공부하는 백수일뿐이다.

나는 여전히 백수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 이유? 부모님이 조카이야기를 했는데, 좋은 대학에 나와서 5년 넘게, 10년 넘게 고시 공부를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부모도 답답하겠지만 본인이 가장 답답할 것 같다… 등의 이야기를 꾸준히 했다. 그 정도로 안 되는 상황이면 그 시험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밥상에 앉아있는 내 앞에서 이야기했다. 나는 조용히 밥만 먹었다. 그 오빠도 그렇게 공부를 오래 하고 싶지 않을 텐데 안쓰럽다,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오래 공부하고 있으면 부모에게 민폐구나, 하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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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이후로 그 사촌오빠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들을 때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론 당시에 내 신분은 ‘학생’이었다. 나는 또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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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청년백수가 많은 이유는 참 쉽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지방에는 기업이 없음, 회사 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음, 아르바이트를 해서 당장을 살긴 가능함, 혹은 부모가 자식을 부양하는 형태가 가능해서, 다들 바라보는 안정적인 일자리 개수는 적은데 불안정한 필드에서 고생하다가 가느니 시험이나 공부를 더 해서 더 양질의 일자리를 노리겠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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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AI도 급물살을 타고 있는데 직업은 위협받지 않되 직무에서는 그 내용이 변화할 것 같다고 젠슨 황이 이야기하는 영상을 봤다.

나로서는 조금 실망이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 다 백수가 되어봤으면. 모두가 자신이 한심해지는 경험을 해봤으면 하는 그런 한심한 생각으로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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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고민을 한 사람이 끌어안고 있으면 그게 굉장히 커다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보이는데 제삼자가 새로운 시선으로 그 문제를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 문제가 되지 않아 버리는 식의 해결이 되기도 하고… 아무튼.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걸 아직까지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청년도 백수로 평가된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고 해도 그게 출판되지 않거나 누가 읽어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백수다. 그림을 오래 그려와서 가득 있지만 전시회를 열지 않으면 그 사람은 백수다. 나에게 백수는 타인에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다.


백수를 판단 짓는 영역은 현대에 와서 더 모호해진 것 같다. 과거에는 조금 더 전통적인 직업 - 은행원, 마트직원, 변호사, 경찰, 의사, 군인, 선생님, 회사원…- 이 눈에 띄었는데 요즘은 개인적으로 일하는 프리랜서 형식의 직종이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다. -편집자, 여행작가, 유튜버,,, - 아마 유튜버도 유명하지 않으면 백수나 다름없지 않을까. 유명세가 있으면 덜 백수고, 유명세가 덜하면 더 백수.


이전에 tv에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가 아르바이트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연기하고 지낸다는 영상을 봤었다. 그리고 또 다른 건 모 유명한 배우가 일이 줄어서 휴식기에 접어들었을 때 자기 자신이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한 영상도 생각난다.


그래프를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유명세와 인기가 중요한 직업이 있고, 유명세가 중요하지 않은 직업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엔 일이 없으면 자기 자신을 일없는 백수라 여기기 쉬워지고, 후자의 경우엔 일이 적어져도 직업상 자신의 자아가 작아지는 일이 드물 것이라고 정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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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수학문제 풀고 스도쿠를 풀고 지내는 백수다. 왜냐하면 나는 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직업을 쟁취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니, 그것 참 젊은 나이에 불성실하다,라고 평가하신다면 뭐라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래서 나는 유명해지고 싶나? 생각해 봤을 때 ‘아니요.’ 쪽에 가깝다. 예 29%, 아니오 71% 정도.


유명해진다는 건 내 목에 확성기를 단 것처럼 내 말이 멀리 퍼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가 닿을 때 그건 이미 다양한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굴절된 내용일 것이다. 그 굴절된 내용이 내 원래 의도보다 더 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내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방정맞고 감사할 줄 모르는 오만함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런 것 같다.


유명세가 밥 먹여주는 직업은 사실 편한 일은 아니다. 편해 보이는데, 편하지 않은 일. 쉽게 돈 버는 것 같은데 사실 오해가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그런 직업.

그래서 유명해지고 싶냐고 하면 조금은 맞고, 대부분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명해지기나 해서 고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실 유명해지는 것도 운이고 재주다. 유명하시다면 축하드립니다. 운이 좋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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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유명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근데 그건 참 슬프다. 유명해지는 데에 법칙이 있나? 유명세는 기한도 명확한데.

다 같이 유명해지려고 해서 우린 다 같이 어려워지고 있나?


그래서, 유명해질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민해 보다가 유명해지고 볼 것 같다.


대답이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사람이라서 그렇다. 29%도 가능성 있는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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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수학문제를 푸는 일. 스도쿠를 푸는 일.



수학을 별로 안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연기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나는 숫자놀이가 재미있다. 스도쿠를 풀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면이다. 스도쿠를 풀면 독서나 글쓰기와는 다르게, 러닝과도 다르게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면이 있다. 오로지 종이 안의 숫자에 집중해서 빈칸을 채워나가는 5분에서 8분간의 시간. 풀고 나면 머리가 단순해지고 개운하다.


수학 문제집도 비슷한 맥락이다. 많은 문제를 푸는 게 목적이 아니고, 풀리는 문제만 풀고 즐거워하는 게 1차 목적이다. 안 풀리는 문제를 만나면 뭔가 또 두근대는데, 그 이유는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나?’, ’ 기존의 내 사고방식에서는 없는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으려나?’라는 데에 있다. 이런 순간을 마주하는 게 2차 목적이다. 고등학생 때는 무조건 빨리, 많이 풀어야 한다고만 생각해서 강박적으로 문제를 풀다 보니 별로 그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수학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졌다.


스도쿠도 그렇고, 수학문제도 그렇고 큰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거대해지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즐거워지는 일을 다시 되찾는 데에만 7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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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요즘도 그렇지만 나는 가족들 앞에서 절대 내가 수학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특히 부모님이 거대한 미래와 연결 지으시기 때문에.

부디 이 글을 읽는 부모님 역할자가 계시다면, ‘야, 너 이러다가 서울대 가는 거 아냐?’, ‘넌 만날 수학문제 푸는데 왜 성적이 그 모양이니.’, ’ 너 이러다가 수학자 되는 거 아냐?‘ 등의 호들갑 내지는 비하발언은 자제해 주길 바란다. 부모와 자식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부모님이 가진 어떤 기대 - 좋은 대학 - 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가 가진 수학에 대한 즐거움을 잃어버렸었다. 즐기는 것과 잘하는 것도 다른 것이다. 대개는 즐기면 잘하는 것도 따라온다고 하는데, 아무리 즐기고 있어도 가진 그릇의 한계는 있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것만으로도 본인의 취향을 알게 된 것을 축하받았으면 좋겠다. 인생의 즐길 거리를 벌써 하나 찾은 것이기 때문에.


사실 악기연주나 그림 그리기나 달리기나 다를 게 뭘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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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친구랑 통화하는데 그 친구도 토익 문제집을 종종 펼쳐보았다고 한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이젠 없어진 어떤 목표? 대상이 필요해져서,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물론 그 친구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친구다. 시험을 봐서 통과,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있다.


위에 말이 좀 길어졌는데, ’ 수학문제’를 푸는 취미가 있다,라는 게 유난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대한민국 특성상 공부에 유난인 면도 있고, 우리 집도 학습에 유난이었던 적이 있어서 좀 멋쩍어지는 것이다. 마치 내 레벨을 알려줘야 할 것 같고.. 잘해야 ‘우와’ 소리 받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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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간에 어떤 작은 일을 조금씩 시작하게 된 건 근래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다.


아는 분의 고모께서는 고졸로 아이도 낳고, 가정을 꾸리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30대쯤 새롭게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에 진학, 대학원까지 진학했다고 한다. 60대가 된 지금도 꾸준히 좋아하시는 공부를 하시면서 그 업계의 전문가가 되셨다고 한다.


쓰고 다시 읽어보니 그때 그분의 목소리로 들은 어떤 감동이 잘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메시지를 전하자면 ‘인생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건 거의 없다.’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이루고 싶은 게 많았고 그걸 이루기에는 모든 게 다 큰 산처럼 느껴져서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루고는 싶지만 시작하려고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내가 찾은 답은 무언가를 이루려고, 먼 미래에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는 욕심은 좀 내려놓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는 있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인생의 cost를 최소화하며 최대의 이윤을 얻기 위해 점수를 매기고, 판단하고, 평가할 뿐이다.


이뤄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미래의 망령에서 벗어나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면 내가 정말 즐겁다고 생각하는 일을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또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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