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안 좋을 땐 솔직하자.

Nemuruoto - Sonosakitomari

by 이오십

선택하지 않음의 결과가 쉬었음 청년이다. 대학생까지도 사실상 유예기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거취가 정해지지 않으면 쉬었음 청년이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쉬었음 청년이라는 단어가 싫다. 저조한 취업률을 얘기하면서 청년백수, 쉬었음 청년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렇게 받아들일 것도 없는데 나는 스스로가 직장이 없는 상태라는 게 부끄러운 것처럼 느껴진다. 소속감 없는 상태가? 아니면 직장이 없다는 게? 이건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 이유.

부모님 > 친척들 중에 오래 공부하는 사촌들에 대해 부모들이 경제적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간접적인 잔소리), 직장 구해서 빨리 집 나가라(직접적인 잔소리), 언제까지 구직할 건지, 미래계획에 대해서 말해봐라...

추석 명절 때마다 만나는 친척들 > 이제 직장 없으면 명절 때 오지 마라, 그래서 뭐 하려고?, 뭐 준비하는 거 있는지?, 자격증은 땄는지?...


이런저런 궁금증에 대해 답하느라 너무나 지친다. 구직 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았고 들어가고 싶은 회사 같은 것도 없고 공부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한량같이 살고 싶은 것도 아니고 놀고 싶은 것도 아니고 공무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


뭔가 시도는 계속하고 있는데 결과물로 내지 않으면 '쉬었음'으로 처리되는 게 속상하다. 지난 3월 중순 내내 그런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느끼며 지냈다. 그런 기분을 떨쳐내 보려고 하루 걸러 5km씩 달려도 봤는데 지금은 더 우울해져 있다. 다 하기 싫다.



*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점점 늦어져서 여덟 시에 겨우 눈을 뜬다. 잠은 열한 시 무렵에 자는데 좀처럼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겠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엄살이 좀 심한 편인데 다른 건강한 분들은 내가 단지 게으름 피운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다. 그냥 그대로 다시 눈 감으면 내일이 되어있고, 그다음 날이 되고, 내가 잔뜩 늙어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샤워도 매일 했고, 운동도 했고, 바람도 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글이라도 써서 속을 털어내고 있다.



*


정말이지 나는 세상살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다.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행운 같아 보이고, 누구는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맞는 말 같고.. 아무튼 나는 그냥 쉬었음 청년 같은 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기분이다. 나는 평생 살기를 그냥 살아왔는데 누군가가 내 가슴팍에 주홍글씨를 달아준 기분이다. "너는 '쉬었음 청년'이야!"라는 정체성을.


*


스스로 만들어낸 명찰 같은 건 인정해주지 않는다. 사회에서 일 인분 몫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야 비로소 어른이 되었구나, 인정받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예술가로 소개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유명하지 않으면 민망해지곤 한다. 왜냐하면 그쪽 분야일수록 유명하거나 인기가 많아야 그만큼 돈을 벌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인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그렇다. 작가, 가수, 배우... 뭐 더 있지 않을까. 혼자 작업하면서 혼자 작업물을 내는데 유명하지는 않은.


사회에서는 명함이 필요하다. 나의 밥벌이에 대한 설명.



설명이 간결하고 전통적인 직군에 가까울수록 의아함은 줄어든다. 교사, 의사, 변호사, 마트캐셔, 제빵사, 미용사, 배관공, 공무원... 이들은 유명하지 않아도, 증명되지 않아도 멋쩍지 않다.


*


자기소개가 멋쩍어지는 상황은 어색하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신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그런 직종을 선호하게 되는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정말 그 일을 원해서 '준비생'인 경우도 있지만 그냥 선택하지 않은 결과가 '준비생'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



쓰고 보니 대책 없고 더 엉망진창처럼 보인다. 그래도 기분은 후련해졌다.




화, 토 연재
이전 24화일상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