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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Feb 25. 2024

얘야, 인생이란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겠어?


 친한 친구-라고 쓰고 트친이자 대모라고도 읽는-를 만나러 무궁화호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을 달려 당진을 다녀왔다. 일찌감치 기차를 타고 와서 함께 신리성지 성당에서 토요일 오전 미사를 드리고 성지를 둘러보고 밥을 먹고 떠들고 놀다가 느지막히 돌아왔다.


 예비신자 시절 이 친구를 따라서 신리성지를 잠깐 들렀는데 그 때엔 늦은 시간이고 해서 성지 내 미술관도 문을 닫고 카페만 간신히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일찍 가서 미사도 드리고 미술관도 둘러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공동체 월례미사를 가면 사람이 많아야 20명 남짓이니 사람이 적은 곳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에 익숙한 편인데 나와 친구, 신부님 한 분, 수녀님 두 분 그리고 성지순례를 온 듯한 어느 한 가족을 포함해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이 작은 성당에 있으니 명동성당에서 사람이 차고 넘치는 것을 보다가 와서 그런지 신기한 기분도 들었다.


 어쩌다 트위터에서 덕질하면서 만난 친구인데 진짜 어쩌다가 나랑 대모대녀 관계가 되어 성당까지 같이 가는 사이가 되었다는게 참 신기하다. 이래서 인간관계는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고 또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 개신교 집안에서 개신교만 알고 살다가 이런저런 사건으로 불가지론이 되어 사이비를 제외한 여러 종교를 찌르고 다니다가 친구 따라 성당에 가게 되었다니. 그래서 짱구 극장판에서 최종빌런인 중성마녀가 인생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인생이 재밌는게 아니겠냐는 말을 했던걸까.


 인생이 재밌는지는 아직까지 모르겠지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지금 이런 인생을 살고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정말 많은 것이 내 예상과는 다르게 지나가고 다가왔으니 말이다. 이 친구랑도 덕질을 같이 하는 오타쿠 친구 정도로 생각했지 나와 대모대녀 관계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작은 성지를 돌아보며 속으로 비록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이런 인생이지만, 그냥 이렇게 살아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인생이지만 이것도 마냥 나쁘지는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이 날 친구가 독서를 해서 꽤 앞자리에 앉았는데 부담스러우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왠지 되려 즐기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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