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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회식

그XX

by 현동훈

저는 종종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답답함이 밀려올 때면 건물 옥상에 오릅니다.

여의도에 있는 회사 건물 옥상에 서면, 저 멀리 작게 보이는 한강공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곳에서 한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10년 전 대학 시절, 동기들과 떠났던 ‘내일로 여행’이 떠오릅니다.


그때 우리는 여의도 한강공원에 도착해 한강 라면을 먹으며 서강대교를 바라봤습니다. 다리 위를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서울에 살면 어떤 기분일까’, ‘성공한 사람들만 사는 곳이겠지’ 하고 막연하게 꿈꿨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로부터 3년 뒤, 서울역 근처의 회사에 취업하며 바라던 서울살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상상과 달랐습니다. ‘신입은 기강을 잡아야 한다’며 여름에도 정장을 강요하고, 슬리퍼조차 허용되지 않는 군대 같은 분위기. 흔히 말하는 ‘꼰대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은 곳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매주 이어지는 회식 자리였습니다. 첫 회식에서 상무는 신고식이라며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던 홍어를 저에게 억지로 권했습니다. 제가 먹지 않으면 다른 선배가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웃으며 떠미는 모습은 끔찍한 기억으로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실 그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건 노래방이었습니다.


회식의 마지막은 항상 노래방이었는데(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상무의 주사는 노래방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다가 기분이 나쁘면 한 사람만 남기고 모두 내보낸 뒤, 그 사람을 붙잡고 30분쯤 호통을 쳤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너 실실 웃고 다니지 마, 남들이 비웃는 줄 알아”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습니다. '신입이 웃고 다니지 그러면 썩은 표정을 하고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제 입에서는 "네, 잘하겠습니다"와 “죄송합니다”만 기어 나왔습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고 상무의 기분이 풀리자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노래방 회식은 이어졌습니다.


상무는 평소처럼 농담을 던지고, 노래 부르며 웃었고, 직원 모두 억지웃음을 지으며 맞장구 쳤습니다.

저 또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표정 관리하며 분위기에 편승했습니다. 그 모습은 제 눈에 마치 몰래카메라 프로그램과 흡사했습니다.


그렇게 불쾌하기만 했던 회식이 끝나고, 막내였던 저는 선배들을 택시나 대리를 불러 보내드린 뒤 홀로 길을 나섰습니다. 회사에서 제 자취방까지는 걸어서 20분 남짓 거리였고 그날따라 빗줄기까지 내리고 있었습니다.


술기운이 살짝 올라와서였을까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야단을 맞으면서도 한마디 변명조차 못한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실망스러워, 문득 눈물이 고였습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걷는 제 모습이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라고 저를 길러주신 건 아닐 텐데' 하는 죄송한 마음이 스쳤습니다. ‘이러려고 서울에 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26살의 저는, 그날 사회의 쓴맛을 처음으로 진하게 느꼈습니다. 취업만 하면 다 끝날 줄 알았고,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했던 제게는 너무도 쓰라린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작은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내가 성장해서, 언젠가 너희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오면 미련 없이 떠나 주겠다. 이 회사에 목매지 않을 만큼 성장하고 단단해지고 싶었습니다.


그 결심으로 4년을 버티고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완벽한 복수는 아니었지만 퇴사 전 상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전하고 나서 회사를 떠났습니다. 지금도 가끔 ‘조금 더 빨리 포기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절을 묵묵히 견디며 버틴 제 자신이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사회생활이 힘겨울 때면 옥상에 올라서 다시 한강을 바라봅니다.


대학 시절 내일로 여행 중에 결심했던 ‘서울에 살겠다’ 던 그날을 떠올리며, 앞으로의 길도 분명 쉽지는 않겠지만, 견디다 보면 또 한 발 내디딜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듭니다. 지금의 제 모습은 대학 시절 한강 야경을 보며 꿈꿨던 성공한 서울 사람의 모습과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이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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