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때'
습관이란 참 무섭다.
언제, 어떻게 내 몸에 자리 잡았는지 기원은 희미한데, 몸은 그것을 기억하고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 남이 말해주기 전까진 나조차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습관 중 하나는 비 오는 날 우산을 삐딱하게 기울여 쓰는 것이다.
습관의 시작점은 분명하다. 나의 고향, 제주도다.
그곳에서 비는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사방이 트인 섬나라의 비는 거친 바람을 타고 대각선으로, 때로는 거의 수평으로 날아와 얼굴을 적신다.
어린 시절의 우산은 머리 위를 가리는 지붕보다는 정면으로 들어오는 비를 막는 방패에 가까웠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비장하게 우산 각도로 기울여 막아내야 했다. 그래야 교복이 덜 젖었고, 우산이 뒤집혀 살대가 부러지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이것이 타지인에게는 특이한 모습인걸 깨달은 건, 제주를 떠난 대학시절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우산을 친구와 함께 쓰고 걷고 있던 중 친구가 핀잔을 줬다.
"우산 좀 똑바로 들어, 비가 다 들어오잖아 “ ”어?”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빗줄기는 중력의 법칙대로 아주 정직하게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기울인 우산 각도 탓에 나와 친구의 등은 젖어 있었다. 쉐도우 복싱을 하는 사람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바람과 싸우며 우산을 한껏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비 오는 날이면 무의식 중에 기울인 우산을 똑바로 쓰려 의식적으로 노력해 왔다. 서울에서 비는 얌전하게 위에서 아래로 내리니까. 그저 우산을 꼿꼿이 들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관성은 생각보다 질기다.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아무 생각 없이 빗속을 걷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내 우산이 또다시 앞을 향해 비장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빗줄기는 등을 때리는데, 내 우산은 홀로 불지도 않는 바람과 싸우고 있다.
순간, 우산을 고쳐 잡으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어때.'
남들이 보면 미련해 보일지 몰라도, 이게 내가 살아남아 온 방식이다. 언젠가 이곳에도 예고 없는 거친 바람이 불어올지 모르니, 일단 나는 그냥 나만의 각도로 들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