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확행: [리뷰 이벤트: 치즈볼] 필수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하지 않지만, 한때 나에게는 나만의 ‘월급날 루틴’이 있었다. 이제는 좀 유행 지난 말이 되었지만, 그 시절 나의 확실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특히 여름날에 더 행복하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 스쳐 지나가는 매월 25일이 되면, 퇴근길 지하철에서 나는 비장하게 배달 앱을 켠다. 메뉴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네네치킨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옵션 변경’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눌러, [변경: 닭다리만 (+3,000원)]을 선택한다. [리뷰 이벤트: 치즈볼] 체크도 잊지 말자.
체크 후 장바구니를 열어 마지막으로 한 번 점검하고 바로 주문! 고작 3천 원을 더 내고 퍽퍽 살 없이 오직 닭다리만 8개를 먹는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맛이다.
회사에서 집까지는 지하철 두 정거장. 10분 남짓이면 내린다. 역에서 집까지는 5분. 집에 들어가기 전 GS 편의점에 들러 맥주 코너로 직행한다. 당시 편의점 수입 맥주 4캔 만 원의 행복. (요새는 물가가 올라 1만 4천 원쯤 하는 것 같다.) 일본 맥주를 좋아하는 나는 아사히 둘, 기린 둘을 골라 카운터로 간다.
계산을 마치고 무더운 여름날,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든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향한다. 자취방 문 앞에 도착하면 치킨을 주문한 지 30분쯤 지났던 것 같다. 황급히 도어록 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간다.
냉장고는 현관 바로 옆에 있다. 신발을 벗자마자 냉동실을 열어 맥주를 넣는다. 조금이라도 차갑게 만들어야 목을 넘어가는 맛이 기가 막힌다.
맥주를 넣었으면, 침대로 이동해 배게 옆 리모컨을 집어 들어 에어컨부터 켠다. 그리고 넥타이부터 풀어재 낀다. 땀에 젖은 셔츠도 바로 벗어던진다. 그다음으로 허리춤 벨트를 푼다. 땀에 절어 허벅지에 쩍쩍 달라붙은 정장 바지는 잘 벗겨지지 않지만, 어떻게든 벗어낸다.
그러곤 빤스 바람으로 상을 편 뒤 노트북을 올린다. 노트북을 켜 넷플릭스에 접속한다. 뭘 볼지는 이미 회사에서 골라뒀다. 월급날 아무 영화나 볼 수는 없다. 모두가 인정하는 명작 영화를 봐야 한다. 하루 종일 심사숙고해서 고른 그 영화를 킨 뒤, 스페이스바를 눌러 일시 정지한다. 이제 모든 즐길 준비는 끝났기에, 곧장 샤워실로 직행한다. 군필 남자의 샤워는 10분이면 족하다. 한 달간 고생한 내 몸의 때를 구석구석 씻어낸다. 머리가 전보다 꽤 긴 것 같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아낸다. 등은 잘 닿지 않아 대충대충 닦아 낸다. 몸의 물기를 닦아낸 뒤, 화장실 서랍장을 열어 스킨과 로션을 순서대로 발라준다. 브라이트닝 성분이 있다고 했는데, 거울 속 내 얼굴은 여전히 까무잡잡해 보인다. 언제쯤 하예 질지 모르겠었다. 머리도 드라이기로 대충 말려 준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난 뒤, 화장실 수증기를 갈라,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미리 켜둔 에어컨 덕분에 자취방 공기는 참 상쾌하다.
옷장을 열어 가장 편한 트렁크 팬티를 집어 입는다. 꽉 조이던 정장 바지 대신 헐렁한 팬티를 입으니, 하루 종일 갑갑했던 마음까지 헐렁해지는 기분이다.
그때, 스마트폰을 켜 배달 현황을 본다. 100이면 100, 기가 막히게 배달이 완료되어 있다. 문을 아주 빼꼼 열어, 누가 볼세라 치킨 봉투를 훅 채서 갖고 들어온다. 물론, 이미 귀로 복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치킨 봉투는 잠시 바닥에 둔 채, 자취 필수템인 접이식 테이블을 펴고 치킨 박스를 올린다. 어디서 사은품으로 받은 건지 기억도 안 나는 기네스 유리잔도 부엌에서 꺼내온다. 냉동실의 차가워진 맥주 캔도 꺼내온다.
이제 모든 세팅은 끝났다. 잠든 노트북을 깨워 영화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러곤 인트로를 곁눈질로 대충대충 보며 치킨 박스를 연 뒤, 정성스레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치즈볼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편이 좋다.
눈은 노트북 화면에 고정한 채, 드디어 고대하던 닭다리를 뜯는다. 둘이 먹으면 하나 먹는 것이 매너고, 여럿이서 먹으면 눈치 싸움이 일어나는 닭다리를 혼자 무려 8개나 독점할 수 있다. 처음엔 무조건 후라이드다. 자고로 자극은 낮은 곳부터 천천히 수위를 올려가야 한다 했다. 후라이드를 2개쯤 먹다가 살짝 물린다 싶을 때, 달콤한 양념으로 체인지한다. 그러다 목이 메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물론, 중간중간 치즈볼로 식감의 변주를 줘야 안 질리고 먹을 수 있다.
그 시절엔 그랬다. 행복이 따로 있나, 이게 행복이지. 특히 유독 날이 덥던 여름날. 내 한 달간의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나 스스로 만든 소확행 루틴. 현실은 여전히 6평짜리 원룸에 사는 중소기업 자취 생. 바뀐 것은 고작 스마트폰 화면 속, 은행 계좌의 숫자가 조금 바뀐 것밖에 없지만, 괜스레 행복했던 월급날, 25일.
그리고, 에어컨 바람 아래서 트렁크 팬티 차림으로 뜯던 닭다리와 시원한 맥주 한 잔.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명작 영화까지. 그때는 내가 이보다 더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오죽하면 나중에 후손들에게 내 제사상엔 이 접이식 테이블 위 세팅된 그대로 올리라고 얘기해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나만의 이 소확행 루틴은 언제부터인가 하지 않게 되었다. 딱히 사건이 있던 건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월급날에 감흥이 없어졌던 것 같다. 그냥 한 달에 하루 중 하루가 되었달까. 그래도 가끔 내 마음이 적적할 때 이 루틴을 흉내 내 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때 그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다.
내 몸과 마음이 이런 사소한 행복에는 반응하지 않을 만큼, 이젠 내 몸과 마음에도 세상의 때가 묻어버린 탓일까. 아니면, 이제는 게을러져 그때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반증일까.
그 답은 알 수 없지만, 그 시절 사소한 것에도 행복하던 내가 무척이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