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 회사의 상술과 엄마의 사랑
최근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아침 식사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식사"라는 말이, 사실 19세기 시리얼 회사들의 마케팅 슬로건이었다는 것이다. 콘푸레이크를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만든 거대한 상술이었다나 뭐라나.
이 사실을 알고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자취를 시작한 지 어언 10년. 아침을 챙겨 먹은 날이 손에 꼽기 때문이다. 늘 건강을 망치는 건 아닌가 찜찜했는데, 이제 훌륭한 핑계가 생겼다.
사실 상술을 떠나서도 1인 가구 직장인이 평일 아침밥을 챙겨 먹는 건 초인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개중에는 대게 아침 운동까지 하고 출근하는 부류도 있다는데, 잠이 많은 나에게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전 직장에서는 유연근무를 시행했기에 아침 운동에 도전도 했었지만, 이직 후 9 to 6가 고정이었기에, 나는 쿨하게 운동과 아침을 포기하고 1시간의 단잠을 택했다. 아침을 걸러도, 빈속에 때려 넣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충분하니까. '아직은 젊으니까 괜찮겠지'하고 1년, 2년 지나다 보니 10년째 아침밥을 먹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아침밥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50대 본부장이 갓 결혼한 새신랑 선배에게 "와이프가 아침밥은 차려주니?" 같은 요즘에 묻기 힘든 시대착오적인 질문을 던졌다. 선배는 맞벌이라 간단히 토스트나 과일을 먹는다며 허허실실 웃어넘겼고, 싱글인 나는 그 대화에 끼지 않고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아침밥을 챙겨 먹은 적이 있던가? 하고 앉은자리에서 과거 여행을 시작했다. 최근엔 챙겨 먹은 기억이 없다. 군인시절엔 아침을 거르면 선임에게 얼차려를 받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좀 더 가볼까? 싶어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도 맞벌이였다. 매일 출근 전쟁을 치러야 했고, 고등학생 아들을 챙기느라 남들보다 더 일찍 눈을 떠야 했을 터이다. 아침이면 엄마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불을 켰다. 밥 다 됐으니 얼른 일어나라며 재촉했다. 나는 이불속에서 "3분만, 5분만"을 웅얼거리다, 저 멀리 부엌에서 날아오는 엄마의 호통 소리에 결국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면 구수한 호박 된장찌개 냄새와, 머리에 좋다는 이유로 우리 집 식탁의 단골손님이던 등 푸른 생선(고등어나 삼치)이 놓여 있었다. 압력밥솥은 여전히 요란하게 증기를 내뿜으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 밥상 앞에서 나는 참 많이도 투덜댔다. 또 생선구이냐느니, 아직 밥도 다 안 됐으면서 왜 다 됐다고 깨웠냐는 둥. 투정 부렸다.
난 참 바보였고, 철이 없었다.
그땐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살림을 해보니 알겠다. 엄마에게 매일 평일 아침은 전쟁이라는 것을. 엄마라고 왜 더 자고 싶지 않았겠는가. 라면 하나 끓여주거나, 시리얼이나 대충 말아주고 싶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엄마는 항상 밥과 국을 차려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하루 종일 힘이 난다고.
시리얼 회사의 마케팅이 전 세계를 속였을지 몰라도, 우리 엄마의 아침밥만큼은 결코 상술이 아니었다. 그건 계산기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자식에 대한 거대한 사랑이었다.
이번 명절에 본가에 내려가면, 엄마한테 아침밥을 꼭 해드려야겠다.
맛없다고 투정은 안됩니다. 엄마는 학생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