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강과 바다

by Logan

제주도에는 강이 없다. 바닥이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이라 물이 고이지 않으니 호수도 없다. 있는 거라곤 거친 바다와 계곡뿐.


그래서 서울에 처음 놀러 왔을 때, 나는 한강이 그렇게 신기했다. 바다도 아닌 것이 어떻게 이렇게 넓고 길까? 강 위를 가로질러 뻗은 다리와 그 위를 지나가는 차들이 만들어내는 야경은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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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강이 좋아졌다. 사람들은 나에게 서울에 와서 뭐가 제일 좋냐 물었다. 나는 한강이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바다가 있는 곳에서 왔으면서, 고작 강이 왜 좋냐고 되물었다. 그들은 몰랐다. 한평생을 그곳에서 자라면 감흥이 없다는 것을.


반면에 바다는 나에게 그저 너무 흔하고 지겨운 풍경이었다. 집에서 택시 타고 기본요금 좀 더 나오면 이호테우 해변이었고, 무더운 여름날 방학 보충수업을 땡땡이치고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10분만 가면 닿는 게 삼양 검은 모래 해변이었다. 달에 한 번씩은 부모님에게 억지로 끌려가던 게 해안도로 드라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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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 시절 나에겐 한강 둔치에 돗자리 펴고 앉아 맥주 까는 게 더 있어 보였다. 강물을 보며 멍 때리며 음악을 듣는 그 시티 감성이 좋아서, 봄만 되면 벚꽃 구경하러 사람들 틈에 섞여 강으로 나갔다. 나도 이제 완벽한 도시인이 된 것 같아서 괜스레 폼을 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강도 조금씩 나의 삶에 무뎌졌다. 자주 가니 장점은 줄고 단점만 보였달까. 날이 좋을 때면 쏟아지는 엄청난 인파와, 정리되지 않은 쓰레기통, 음식물 썩은 내에 질려 점점 찾는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코로나가 한창이던 해. 방황하고 있었다. 재택근무를 하며, 하루 종일 방에 갇혀 있었고 지독하게 외로웠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되새겨보니 당시의 나는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어느 날 새벽 미치도록 바다가 보고 싶더라.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냥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져서 바다를 찾게 되는 날.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본능 같았다.


새벽이라 대중교통도 끊긴 시간. 나는 주저 없이 가장 가까운 바다를 검색했다. 쏘카 앱을 켜 차를 빌렸다. 대부도까지 새벽에 50분이면 충분했다. 내비게이션에 대부도를 찍고 무작정 달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블루투스를 연결해 음악을 틀고 터널을 지나 도착하니 대부도는 온통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편의점 말고는 불 켜진 가게는 한 개도 없었다. 바다가 코앞이라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차 문을 내리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코끝을 찌르는 눅눅한 비린내. 그리고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철썩 소리.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소리와 냄새만으로 충분했다. 차에서 내려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걸었다. 숨이 벅찰 때까지 깊게 들이마시고, 이내 길게 내뱉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제주에 살 땐 바다가 지겨워 강을 찾았고, 서울에 오니 강이 시시해져 다시 바다를 찾았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이렇게나 간사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흔하디 흔한 문구. 그날 새벽, 보이지도 않는 바다 앞에서 나는 그 문장의 의미를 처음으로 깨달았었다.


살다 보면 빈번히 낯선 설렘에 끌리지만, 항상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익숙한 편안함이었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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