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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insoo May 18. 2023

다수의 암묵적 동의에 질문하기 (1)


다수의 암묵적 동의에 질문하는 것은 그들에게 반기를 드는 것



첫 출근날 문득 생각났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

어김없이 수학 선생님은 호출했다.

"13번, 26번 나와서 칠판에 연습문제 1번, 2번 문제 풀어. 틀리면 맞는다."

나는 13번이었다. 같이 불린 26번은 문제를 잘 풀었다. 나는 풀지 못해 선생님께 맞았다.

나는 맞기 전에 선생님께 질문했다. “선생님, 몰라서 틀린 건데 왜 맞아야 돼요? 모르니깐 학교에서 수업 듣는 거고,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거 아니에요?"

질문에 대한 답은 더 맞는 거였다.

나는 다 맞고 내 자리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명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다수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무언가에 질문하면 싫어한다는 것을.


첫 출근길 ‘회사에서 튀지 말자’ 이 생각으로 출근했다.




나의 첫 직장은 '통신사'다.

대부분의 대기업에는 원청과 하청 구조가 있다.

어김없이, 내가 다니는 통신사도 원청과 하청 구조였다.

우리 부서의 권한은 하청에서 개발한 제품의 'Go'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하청의 제품 출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소위 말하는 '갑'이다.

같이 일하는 차장님과 과장님은 하청업체의 영업 부장님 차를 타고 다닌다.

모시러 오고, 모셔다 주고, 밥도 사주고 술도 사준다. 심지어 일개 사원인 나에게도 똑같이 해준다.

어느 날, 차장님과 과장님께 질문했다.

"왜, A 영업부장님은 맨날 번거롭게 모시러 와요?"

"왜, 점심 값을 매번 A 영업부장님이 내줘요?"

누가 보면 눈치 없다고 할 수 있다. '접대' 임을 알고 있었다. 그냥 궁금했다. 왜 그런 건지.

이에 대한 차장님과 과장님의 답은 명확했다.

"우리 회사에서 하청 준 거니깐 저 회사도 매출이 늘어 좋은 거야."

"더구나 별도 영업비용이 있어서 회사 돈으로 밥 먹고 하는 거니깐 신경 쓸 거 없어."

"하던 대로 해"


A 영업부장님과 둘이 밥 먹을 일이 있었다.

화장실 가는척하고 내가 점심 값을 계산했다. 그러자 A 영업부장님은 너무 난처해서 몸 둘 바를 모르셨다.

너무 몸 둘 바를 모르셔서, 지하철 역까지만 데려달라고 했다.

차 안에서 A 영업부장님께 물어봤다. "왜 이렇게 다 해주세요?"

A 영업부장님은 말씀하셨다. "저희가 이렇게 대접해드리면, 나중에 또 좋은 일 생길 확률이 높죠."


차장님, 과장님, A 영업부장님께 질문 후 나는 깨달았다.

사회생활은 '역할놀이'라는 걸.

대기업에 다니면 가끔 역할놀이에 취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본다.

회사의 평판, 회사 내에서의 직급이 나의 계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회사 그만두면 일개 아저씨, 아줌마, 그냥 스쳐가는 행인인데.

그래서 난 은행 다닐 때, 사원증을 절대 목에 메지 않았다.

역할 놀이에 빠진 그들과 같아지기 싫어서.


나의 계속된 '접대'에 대한 질문에 차장님, 과장님은 불편해하셨다.

그리고 난 그들과 다르게 모시러 오고, 모셔다 줄 필요 없는 대상이 되었고,

밥은 내 돈으로 사 먹고, 술은 친구들이랑만 마셨다.


나는 또 몇 번의 질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수의 암묵적 동의에 그들을 불편하게 했다.

질문에 답만 하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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