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329
사진의 특성 중 우연성, 고립성이란 말은 사실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진의 우연성은 시간성에 관련된 것이고, 고립성은 공간성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은 우연의 산물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사진은 결코 우연도 필연도 아닐 수 있다. 그리고 고립성이란 말은 공간에서 열린 공간인지, 닫힌 공간인지에 따른 것인지 한정해서 프레임 속에 가두어진 고립된 공간은 시각을 협소하게 만든다. 시간성은 카메라의 셔터와 관련이 있고, 공간성은 카메라의 조리개와 관련이 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더 깊은 사색이 필요하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시간이 단순하게, 기본적으로 어디서든 동일하게, 세상 모든 사람의 무관심 속에 과거에서 미래로, 시계가 측정한 대로 똑같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주의 사건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순서대로 벌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는 정해졌고, 미래는 열려 있고……. 하지만 이 모두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시간의 특징적인 양상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시각이 만든 오류와 근사치들의 결과물이다. 앞서 언급한 지구가 평평해 보이는 것이나 태양의 회전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 성장하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은 서서히 베일을 벗게 되었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구조들, 즉 층들이 복잡하게 모인 것이다. 점점 더 깊이 연구가 진행되면서, 시간은 이 층을 하나둘씩 한 조각, 한 조각 잃어왔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P10-11) 이 책에서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시간(일시성) 안에는 수많은 사건과 과정이 들어있고, 이것이 매개변수로 작용한 더 복잡한 총합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벗어나 살 수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 흐르는 강물인지, 날아가는 화살인지 모르듯이 모든 것이 지나간다. 지나가는 시간을 고정(바르트가 말하는 앵커anchor)하는 것이 사진이다. 화석처럼 응결된다. 그 흔적을 통해서 사진은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든다. <깊은 시간으로부터>의 저자 헬렌 고든이 보는 시간은 10만년이 지난 시간을 본다. 하루살이가 보는 시간이 아니라, 10만년의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세상은 또 달리 보일 것이다. 인간의 시간은 생로병사의 시간일지 모른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가 경험한 시간을 통해서 모든 것을 유추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말처럼, 오늘을 즐기라는 것은 현재를 붙잡으려는 사진의 속성 중 하나이다. 1/60초로 찍혀진 사진이 인간의 시각은, 더 빠른 1/1000초로, 그리고 더 느린 1초로, B셔터로 장노출로 시간을 기록한다.
“현존재의 삶에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지금'으로서 현재 및 과거와 무관한 것이 아니며, 과거 역시 '이미 지나가버린 지금'으로서 미래 및 현재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현존재의 삶에서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는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존재자가 느껴지는 현재라는 시간은 연결되어 있다. 시간에 대한 고민은 사진가에게 필수적이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부터 시간은 정해진다. 시간이 우연적인 찰나인지 영겁(永劫)의 시간인지 사진가는 그가 서 있는 공간에서 사유하게 된다. 날아가는 화살을 멈추게 하는 것도 사진이고,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가게 하는 것도 사진이다. 어릴 적 놀던 노래 가사처럼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사진은 결정적 순간이든, 찰나에 머물러 있든 그것은 시간의 파편중 일부분이다. 시간을 미분으로 나눈 단편으로 존재하든, 화석의 퇴적암으로 쌓이고 쌓인 것이든 사진은 내게 흐르는 강물인가, 날아가는 화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