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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16. 2024

1초에 24번의 죽음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342

영화는 1초에 24프레임으로 구성된다. 그 말은 곧 영화가 1초에 24번의 암전으로 구성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깜박임에 의한 눈속임은 사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진가의 셔터는 1/60초로 찍을지, 1/500초로 찍을지 결정된다. 시간을 잡아내려는 카메라는 실재의 공간의 바다에 닻(anchor)을 던진다. 움직임에 대한 즉흥적인 표현에 집중한 프랑스 출신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에게 영화란 ‘1초에 24번의 진실’이라면 정지의 순간에 관심을 가진 영국 출신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Laura Mulvey)에게 영화란 ‘1초에 24번의 죽음’이다. 그녀는 영화 에세이 ‘1초에 24번의 죽음’(현실문화)에서 영화의 존재, 재현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 우리는 24번의 환영(幻影)속에서 삶을 볼 것인가, 죽음을 볼 것인가.      

 

롤랑 바르트는 ‘밝은 방’에서 사진의 본질을 에이도스(eidos)라 표현하고 사진의 존재를 죽음으로 규정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이른바 ‘온실 사진’)을 통해, 사진은 기억과 죽음의 관계를 다룬다. 1977년 10월 25일,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자, 가장 사랑했던 가족인 어머니를 잃은 바르트는 깊은 상실에 빠졌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옛 사진들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사진을 통해 사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 즉 부재와 죽음의 증명으로서 사진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진은 촬영된 순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진을 통해서 부재한 존재를 기억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처럼 말이다. 바르트는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빌어 ‘완벽한 이미지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착각을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으로 구현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사진의 본질을 “그곳에 존재했다”, “사물이 거기에 있었다”고 말하면서 사진에 담겨진 것들에서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작은 상처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그의 존재론적 관점이다.    

  

사진은 환유적이다. 사진이 프레임에서 지시하는 대상과 그것을 통한 사유(思惟)는 어떤 형상의 흔적이라는 사실이다. 굴뚝의 연기, 모래 위의 발자국과 같은 방식으로 사진에는 많은 흔적을 담고 있다. 사진은 그 순간에, ‘1초에 24번의 죽음’이라는 순간에, 다른 순간이 아닌 바로 이 순간을 선택했는가를 이해하는데 있다. 왜 사진은 ‘1초에 24번의 죽음’인지 ‘1초에 24번의 진실’인지 모를 순간을 선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순간, 사진에 찍혀진 ‘지금’, 그리고 그 ‘이후’ 사진은 많은 것을 침묵한다. 자크 데리다의 저서 ‘시선의 권리’에서 “사진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할 뿐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관객은 침묵하고 있는 사진을 볼 뿐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이후’ 그리고 지금의 변화하는 빛 속에서 인덱스적인 이미지의 이전’ 그리고 그때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거의 우연히 영화와 영화의 역사에 새로운 삶을 가져오면서 과거의 미학은 현재의 미학과 만난다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삶(영화는 새로운 소비 양식들을 부활시키고 회복시켰다)은 또한 오래된 영화의 소비 방식을 변화시킨다... 이제 영사되는 영화가 가장 잘 지켜왔던 비밀인 영화의 정지성은 단순한 버튼 조작만으로도 쉽게 드러난다또한 그것은 정지된 프레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사진의 정지성을 드러내도록 해준다한편으로 영화 이전의 정지성은 사진의 자리에 위치한다그 이미지는 정지되어 있지만 필름처럼 인덱스적이다..... 영화 이후의 매체는 영화 이전의 매체를 불러냈다가장자리의 경계가 애매한 삼면 그림의 가운데 화폭처럼 영화는 앞과 뒤로 뻗는다그러나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융합 지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리즈 프레임은 나이를 먹어가는 영화의 뒤쪽으로 죽음을 현존시킨다생명이 없는 스틸 이미지는 삶의 기호를 상식적으로 받아들인 움직임을 고갈시킨 것이다

-1초에 24번의 죽음로라 멀비,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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