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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n 24. 2024

광화문에서 #13

망각에 저항하는 법

좌파든 우파든 정치인들은 마치 현재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듯 계속 논쟁하고, 투표하고, 해결책을 의결한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하는 담론은 공허하거나 보잘것없는 일들에 관한 것들뿐이다. 그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나 용어들 —이를테면 테러리즘, 민주주의, 유연성 같은 말들—은 그 어떤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전 세계의 대충들이 그 연설가를 따르는 것은 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연설학교의 수업을 참관하는 것과 같다. 헛소리들.

지금 우리에게 폭탄처럼 퍼부어지는 정보의 또 다른 장은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화려하고,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사건들이 차지하고 있다. 강도 사건, 지진, 전복된 배, 폭동, 대량 학살 같은 것들. 한번 보여지고 나면, 하나의 구경거리는 다른 구경거리로 아무 맥락도 없이 그저 멍할 정도의 속도로, 대체될 뿐이다. 그 사건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사건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그것들은 삶의 위험요소를 보란 듯이 제시한다.

여기에 미디어가 세상을 전달하고 분류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더해진다. 그것은 전문 경영인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나 논리와 매우 비슷하다. 그 언어는 모든 것을 ‘계량화’하고 본질, 혹은 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율을 이야기하고, 여론조사의 변동이나 실업률, 성장류, 증가하는 채무, 이산화탄소 측정치 등등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숫자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목소리지만 삶이나 고통 받는 신체에 대해서는 아니다. 그것은 후회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공식적으로 말해지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말해지는 방식이 시민들로 하여금 일종의 기억상실에 빠져들도록 부추긴다. 경험이 지워지고 있다. 과거와 미래라는 지평선도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고 하여금 끝없이 불확실한 현재에만 살게 하려는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다. 망각 상태의 시민으로 축소된 것이다. 

    

-존 버거,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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