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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l 02. 2024

무라카미 하루키의 <토니 타키타니>

영화 <토니 타키타니>  2005년

영화 〈토니 타키타니〉(トニー滝谷)는 2004년 일본의 드라마 영화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토니 타키타니〉를 영화화한 것이다. 이치카와 준 감독이 연출했고, 잇세이 오가타, 미야자와 리에, 엔도 유미, 니시지마 히데토시 등이 출연한다.     

소령은 자기 이름을 따서 그 아이의 이름을 토니라고 하면 좋겠다고 했다. 토니라는 이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 아이의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어울리는 이름인지 아닌지 하는 의문은, 소령의 머리에는 한 순간도 떠오르지 않은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타키타니 쇼자부로는 종이에 ‘타키타니 토니’라는 이름을 써서 벽에 붙여놓고, 며칠동안 바라보았다. 타키타니 토니.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하고 타키타니 쇼자부로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얼마 동안은 미국의 시대가 계속될 것이니, 아들에게 미국식 이름을 붙여주는 게 여러모로 편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니 타키타니는 이름 때문에 학교에서 혼혈아라고 놀림당하기 일쑤였다. 그가 이름을 말할 때면 상대방은 묘한 표정을 짓거나, 더러는 약간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언짢은 농담처럼 받아들였고, 더러는 화를 내는 사람마저 있었다.

토니 타키타니는 그런 탓도 있고 해서, 마음의 문을 닫어버린 채 혼자 웅크리고 있을 때가 많은 소년이 되고 말았다. 친구다운 친구 하나 사귈 수 없었지만, 그는 그런 사실을 특별히 괴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있는 건 그에게 있어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굳이 말하자면 인생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전제 조건이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가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그의 아버지는 늘 악단을 이끌고 연주 여행을 떠났다. 어렸을 때는 파출부가 보살펴주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그는 뭐든 혼자서 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혼자서 음식을 만들고, 혼자서 문단속도 하고, 혼자서도 잘 잤다. 그다지 외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스스로 하는 편이 더 마음이 편했다.          (P131-133)   

  

그녀가 결정을 미루고 있는 동안 토니 타키타니는 매일 혼자 술을 마셨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독이 돌연 알 수 없는 무거운 압력으로 그를 짓누르며 고뇌에 빠지게 했다. 고독이란 감옥과 같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뿐이야. 그는 날마다 자신을 둘러싼 벽의 두꺼움과 차가움을 절망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만약 그녀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난 이대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를 만나 그런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고독했고, 얼마나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는지를, 그리고 그녀가 그 사실을 자신에게 깨닫게 해주었다는 사실을.            (P141)     

그 그림자들은, 예전에는 아내의 몸에 찰싹 붙어서 그녀의 따뜻한 숨결을 받으며 아내와 함께 움직이던 그림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생명의 뿌리를 상실한 채 시시각각으로 말라비틀어져가는, 볼품없는 그림자 더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그저 낡고 바랜 옷일 뿐이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는 동안에 그는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갖가지 색깔들이 마치 꽃가루처럼 허공을 떠돌며 그의 눈과 귀, 그리고 콧속으로 날아들어 왔다. 탐욕스러운 프릴 장식이며 단추, 어깨 장식, 장식용 주머니, 레이스, 벨트가 방 안의 공기를 기묘하게 희박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넉넉하게 쳐놓은 방충제 냄새가 무수히 많은 작은 날벌레처럼 소리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이 옷들을 증오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고독이 미적지근한 어둠의 진액처럼 다시 그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이미 모두 끝난 일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와서 무슨 짓을 한다 해도 모든 것은 완전히 끝나버린 것이다.            (P155-156)     

그는 텅 비어버린 아내의 드레스 룸을 오랫동안 그 상태로 방치해 두었다.

이따금 그는 그 방에 들어가,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멍하니 있곤 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물끄러미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죽은 사람의 그림자의, 그 그림자가 있었다. 하지만 달이 가고 해가 지나감에 따라 그는 차츰 예전에 그곳에 있던 것들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그 색깔이나 냄새 같은 기억도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예전에 품었던 그 선명한 감정조차도 기억의 영역 밖으로 뒷걸음치듯 사라졌다. 기억은 바람에 흔들리는 안개처럼 서서히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모습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희미해져갔다. 그것은 그림자의 그림자의, 또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리고 손에 만져지듯 느껴지는 것이라곤 예전에 존재했던 것이 뒤에 남기고 간 상실감뿐이었다. 때로는 아내의 얼굴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그 방 안에서 아내가 남기고 간 옷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낯선 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조용한 흐느낌이 기억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런 것들을 떠올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낯선 여자의 모습이 자꾸만 되살아났다. 모든 일을 모조리 잊어버린 다음에도, 이상하게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 여자의 일만은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P159)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하지만 산더미 같은 레코드를 집 안에 끌어안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점점 짐스럽게 느껴졌다. 그곳에 있는 것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때로는 숨이 찰 지경이었다. 한밤중에 눈을 뜨고 나서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할 때도 있었다. 기억은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억은 거기에, 꼭 걸맞은 무게를 지닌 채로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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