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내일을 어느정도 알 수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능력 같은게 있어서 알 수 있는건 아니죠. 그냥 알 수 있습니다. 당신도 내일의 당신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 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숱하게 많은 시간들을 비슷비슷하게 살아왔기 때문이겠죠.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절로 떠지는 눈, 억지로 일으키는 몸뚱이.
주섬주섬 대충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가
목덜미를 훑고 가는 한기에 소스라 치게 놀라고는
다시 들어와 목도리를 챙겨 나갑니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마감을 하고 퇴근을 했습니다.
놀랍도록 어제와 같은 하루.
다른 거라고는 갈아입은 빤스 한장이 전부네요.
10년이나 해 온 이 일을 시작 할 때만 하더라도
3년..아니 5년..그래 그쯤만 죽어라 고생하면
그 후엔 장미빛 미래가 펼쳐질 테니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예상을 했는가 생각하면 실소가 터져 나옵니다.
이놈아 이놈아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단다~
열심히 살았지만 열심히만 살았기에 굽이굽이 들이치는 크고 작은
난관을 넘길 때마다 내게는 무기력을 동반한 체념과 대상을 알 수 없던
그러나 이제는 그게 나 자신이었다는 걸 알게 된 분노가 쌓이고 있었습니다.
왜 이것밖에 못 해
왜 그것밖에 안 돼
멀쩡한 사지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반푼이 처럼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혐오가 시야를 가리고
앞으로 나아갈 두 다리를 붙들고는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내일을 기대하지 않은 껍데기의 오늘이 어떨까요
몸을 뉘일 집세를 내기 위해서
매달 내는 공과금을 내기 위해서
굴러가는 차에 기름은 넣어야 하니까
살아있는 몸뚱이에 음식도 넣어야 하고
또 머더라 그래 아프면 병원 가서 고쳐야 하니까 보험료도 내고
열정이 가득했을 때 저지른 일에 대한 이자도 내야 하고
그래도 자식이니까 기본은 해야겠기에
사는데는 꽤 많은 유지비가 들어가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뭐 그렇게 다채롭고 형형색색으로 빛날 수는 당연히 없는 거겠죠.
그래 결심했어!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나의 인생을 즐기기로! 좀 더 활기차고 밝은 미래를 꿈꾸면서!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되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가자!
그런다고 당장 사람이 밝아지고 온 우주가 미친듯이 나의 염원에 반응해서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거..우리는 다 알죠. 그거 뻥이 좀 많이 섞여 있다는 거. 아 물론 긍정적으로 살면
좋은거고 간절히 원하면 어떻게든 이루려고 노력할 테니까 간절함이 없는 것 보다 나을테지만.
나는 이제 그저
큰 종이에 작은 사인펜 하나로 콕 하고 점을 찍은듯이
그런 흔적을 내 마음속에 새기기로 했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로
꽤 열심히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주욱 돌아 봤을 때
뿌듯함에 겨울 수 있는 짧은 환희의 순간을 누리기 위해서요.
그냥 흘려 보내는 하루가 아니라 확실히 나의 것이 된 하루.
돈값도 충분히 했으니 남한테도 좋은거고
허투루 살지 않았으니 내일의 나에게 좋은 양분이 될 테고
명분이 있는 점을 한 개 제대로 찍었고
이 점들을 이어서 한 줄의 긴 선을 한 번 만들어 보자.
좋았다 오늘.
기대된다 내일.
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