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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Oct 06. 2022

공든탑이 없다면 망한탑이라도 무너뜨리자

내가 대학준비를 하던 시절엔 대부분, 그러니까 꿈이 있거나 목표가 있고 시험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제외한 모두가 점수에 맞춰 대학을 고르고 학과를 골랐다. 격정의 90년대 IMF를 겪은, 공무원 열풍의 시초이자 세기말의 광기였다고 봐도 무방한 미친 짓을 선생들은 종용했고 무지몽매한 우리는(3년간 밤 10시~12시까지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꿈도 찾지 못한) 그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그릇된 성취감에 도치돼 현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 무렵엔 제법 글 쓰는 재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역시도 조금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조금 더 나은 네임밸류의 대학을 가기위해 내게 배정된 과는 무역학과였다. 입학을 하고 채 3개월도 되기 전에 ㅈ됐음을 감지했지만 전과라던가 복수전공 같은건 알아볼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내년이면 군대로 끌려갈 처지.. 어딜 가도 뺀찌 당하지 않는 '어른'의 자격을 마음껏 누리며 술과 담배나 처먹고 다니기 바빴다. 


2년2개월의 '수감' 생활을 겪으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은 인지했고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도 있으나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난 뭘 해도 다 될 것 같으니 일단 제대나 하고 보자는 식으로 달력이나 찢고 살기 바빴다. (새끼야 하다못해 몸이라도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그러나 돌아온 세상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난데 없는 취업난을 시작으로 공무원 열풍이니 미국발 금융위기니 하는 사회적 이슈로 인해서 열심히로는 부족한 세상, 노력과 재능을 쏟아부어야 1인분이 가능한 세상으로 변모된 것이다. 흥미도 없어, 재능도 없어, 열정도 없는 무역학 전공 시간을 쓸데없는 공상과 허탈한 낙서로 전전긍긍하며 그러나 졸업은 해야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없는 살림에 학자금까지 끌어다 강매한 졸업장을 무슨 낯짝으로 어디에 들이밀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그 때 과감히 다 내던지고 지금 하는 일을 시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젊음이 곧 재산이고 무기라는 쌍팔년도에도 고루하다 할 낭만으로 무장해서 이 일 저 일 손 대다가 어정쩡한 어른이 되어버리고 만 불쌍한 인생. 그래, 좋다 이거야! 그 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딱! 일주일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책 한권 펴놓고서 내가 뭘 잘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성찰했다면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일에 들어간 내 시간과 돈과 땀이 아까워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썩은 동아줄인걸 알면서도 놓지 못해 그저 열심히 살면 저절로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헛 된 꿈으로 꿈같은 2,30대를 개꿈처럼 날려버린 멍청한 인간!


그게 나야 빠 둠 빠 두비두밥~ 둠 빠 둠 빠 두비두..에라이..


어쩌면 그 시절에 하다못해 학과라도 적성에 맞는 과를 선택했다면 지금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라는 망상을 안주삼아 술잔만 기울이니 몸도 망가져 버리니 하다하다 이제는 아..작년에 어깨만 다치지 않았어도 계속 운동을 했을테고 그러면 몸뚱이는 온전했을 텐데 하며 술을 마신다. ㅋㅋㅋㅋ


내 인생이 잘 나가는 회귀물 판타지 만화도 아니니 시간을 되돌릴 순 없을테고..그렇다고 망한채로 살기에는 남은 인생이 그리 짧지도 않다. 그러니 뭐라도 좀 해야 겠어서 이제껏 쌓아온 걸 와르르 무너뜨려 보려 했는데 잘 만들어진 게 없다. 적절하게 살아온 인생이라면 이맘 때 대출은 좀 껴서 산 집 한채, 마음착한 마누라와 초등학생 아이 한 둘은 있어야 겠지만 뭐..있다 없어진 것도 아니니 그닥 간절하지도 않고 대충 어지럽혀진 지난 시간, 망해버린 시간들만 한번 무너뜨려 보는거다. 


흔들거리는 탑을 힘겹게 한켜 한켜 쌓아가느니 처음부터 제대로 쌓는게 더 빠르고 안전할 거란 믿음 아니, 확신을 가지고.


그 첫 번째 목표는?!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절대로 혼술 하지 않겠다. 


두둥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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