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수 있는게 이 노래 밖에 없다.'
가난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시리게 고백하는 노래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 때는 절절한 낭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많았으니 인기도 있었겠지. 지금은 글쎄..나이를 먹어서인지 노래의 주인공이 맞이할 결말이 그닥 낭만적이진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아, 어쩜 우리는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적이지 않은 엔딩은 진실된 남자의 호소력 짙은 고백에 흠뻑 빠진 여주인공은 미처 가사속의 진실과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우리 함께 이 역경의 시간을 이겨내 보아요. 서로 사랑하기에 그마저도 행복이라 여겨요. 그저 함께 있을 수 있는 지금 이순간이 영원하기를.."
허구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라 여겼지만 겹겹이 쌓이는 시간과 경험들 속에 파뭍혀 살다 보니 새삼 내가 멍청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내가 지금 나 혼자 좋자고 이러는게 아니잖아. 이런거 하나도 이해 못해줘?'
구태여 회상을 해보자면 당시 3년을 만나던 사람과의 미래를 위해서 뭔가 변화를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작은 카페를 운영하던 당시의 수입으로 이 여자의 미소와 앞으로의 나날들을 잘 꾸려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조금 더 나은 경제적 여건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으로 굳어졌고 택한 것이 인테리어 일이었다. 조금 관심도 있었고..그러나 손재주가 있지도, 서울에 별다른 인맥이나 집안의 도움따위를 바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부족한 것들을 메우기 위해서는 남들 쉴 때 일하는 것.
상황이 변함에 따라 관계에 대한 몰입도 역시 변하기 마련이니 이전보다 소원해 질 수 밖에 없었고 당연하게도 그 사람은 불안해 했고 당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과 결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 변명했다. 쉽게 호전되지 않는 상황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흔들리는 멘탈이 여자에겐 너무 잘 보였을 것이다. 성공성공! 돈돈돈! 이유를 모르지 않았기에 조용히 기다리던 그이도 결국 버티질 못한거지.
그렇게 우리는 이별엔딩을 맞았다. 그녀에겐 행복한, 나에게는 두고두고 곱씹는 후회와 불행으로 점철되버린 그러나 한 편으로 다행스럽다 생각되는 맞춤이별이었다.
사랑은 때로 남자라는 족속에게 분수에 맞지 않는 야망을 품게 만들어 버리나 보다.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도 그걸 소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해 버린다. 무모한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소수를 제외한다면 십중팔구 불행에 쳐해질 그 섣부른 꿈들이 거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사랑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것들에게서 낙오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줄 수 있는 마음의 크기는 주고 싶은 마음의 크기보다 작기 마련인지라 더 많이 움켜쥐기 위해 애 쓴다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주객은 전도되고 왜 이리 악착같이 무언가를 얻는 것에 집착한다. 그저 더 빛나고 아름다운 것들을 욕망한다. 욕망은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그가 그들이었을 때 지금보다 더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했음을 망각해 버린다.
대다수의 욕망(사랑의 방식)이 그러하니 너와 나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란 생각은 스무살이 되던 날 나는 이제 어른이고 저 감옥같은 학교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세상을 주유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착각과 비슷하다. 그 때도 지금도 나는 비루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는 그런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줄 수 있는게 노래 한 구절 뿐이라 해도 기꺼이 곁에 있어주겠노라. 그리고 우리 함께( 함께! 함께!밑줄!!!!) 힘든 일들도 이겨내 보자는 그 말을 믿었어야 했다. 똑똑한 사람이었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랑에 빠졌는데 내 복을 내가 걷어찼다. 그놈의 남자남자 남자라는 개똥같은 자존심 때문에!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 떄문에..
내가 그이를 사랑한 것이 모두가 이야기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던 것 처럼
그이가 내 곁에 머물렀던 것 역시 내가 생각하는 조건 때문은 아니었음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주고 싶은 마음 모두를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밀어진 그 작은 것들이 우리가 헤어져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음을
내가 그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과 그 마음을 지켜나가려 한다는 결심은
이미 다 건네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 때 알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