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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Feb 11. 2024

성공이 마려웠던 이유

고등학교 친구들은 최소 10년은 만나질 않았다.


평생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라는 말이 있는데 동의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랜 시간 친구들을 만나지 않은 건 쪽팔림 때문이었을까. 번듯하게 성공해서 잘 사는 모습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 앞에 나서기가 싫었다. 자의식 과잉이겠지. 친구는 그저 친구이고 친구 사이에 성공의 척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나 만큼은 그런 범주에 속하는 인간이 아닐지도.


 성공이 마려웠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했고 10년 전에 실내 건축일을 시작 했을 무렵에 나는 어떤, 일과 사람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이 사람들과 이 일을 꾸준히 해서 자리 잡으면 대박이 날 것이다. 그리고 무지에 가까운 나의 노하우가 계속 생긴다면 그 때는 정말 성공의 맛을 볼 것이다!


슬프게도.


 아직 끝난 게 아닐 수 있다. 나는 그 동안 너무 나 이외의 다른 요인들에 의지하고 살았다. 도전이 무서워졌다. 수 차례의 실패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고베에도 멘탈은 가루가 되어 녹아 버렸고 그 때마다 나는 날아가는 정신을 부여잡는 데만 수 개월이 걸릴 만큼 약한 존재였음을 자각해 버렸다. 유쾌하고 자신감 넘쳤던 나는 온데 간데 없이 패배감에 짓눌려 버린 노가다 꾼 1명이 남았을 뿐이었다.


 10년 전엔 다들 나를 추앙했다. 대단하다고 했다. 멋있다고 했다. 성공할 거라고 했다. 나역시 그렇게 여겼다. 나는 젊었고 대단했고 멋졌으며 또한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때라도 다시 생각했어야 하는 건데...니까짓게 뭘 하느냐며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공장에나 들어가서 속 편하게 사는게 너답다고 했던 아버지의 말씀이 사무치는 것은 왜일까..아니야,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나는 아직 젊고 나는 아직 인생이 무너질 만큼의 실패를 겪지 않았기에 금방 도약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흑흑흑흑흑흑...오십견이 와서 어깨는 아프고 올라가지도 않고 얼굴엔 잡티가 자꾸 생기고 밤엔 자꾸 화장실을 가고 싶고 머리는 검은 부분보다 하얀 부분이 많고 뱃살을 빠지지 않고 눈은 자꾸 감기고 쉬는 날이면 죽어가는 동태새끼마냥 처진 눈과 배를 바닥에 깔고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나마 해는 넘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술이나 퍼마시고 한다는 말이.


"일 해야 하니까 빨리 마시고 일찍 자는거지. 난 알콜 중독이 아니야."


친구들 앞에서 잘 나 보이고 싶었고 부모님 앞에 당당하고 싶었고 친척들 사이에서 자수성가한 훌륭한 조카로 소문 나고 싶었다.  어떤 경우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시간적, 경제적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공이 마려웠다..


지금은..지금은 뭐랄까.

그냥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평화로운 아침을 시작하고 느슨하고 느릿한 하루를 건너 붉그스름한 저녁노을을 원 없이 즐기고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를 만큼 까무룩 잠들고 마는 나날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헉!

이게 나이가 들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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